어렵사리 6년만에 계획된 남북당국회담이 목전에서 무산됐다. 파국으로 치닫는 남북대치 국면에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가 컸던 점을 고려하면 암울한 소식임에 틀림없다. 남북당국회담 무산의 원인과 향후 남북관계를 전망했다.

 

▲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된 가운데 12일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입구에서 군 장병들이 바리케이트를 옮기고 있다.

 

수석대표 급입장 철회하면 재개
판문점 남북연락채널 또 다시 불통
한중정상회담 이전 상황타개 가능성도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됨에 따라 남북간의 냉각국면이 초래됐다. 그러나 북측의 일방적인 불참 통보로 무산된 남북당국회담은 북한이 우리 수석대표의 을 문제 삼은 입장을 철회할 경우 다시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당국은 북한이 입장 변화를 보여 와야 한다면서 현재의 대표단과 북한의 대표단이 변한 게 없다면 언제든지 회담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우리 정부가 수석대표로 내세운 통일부 차관과 북한이 내세운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국장 간의 남북당국회담은 북한이 수용할 경우 언제든지 열릴 수 있다는 수용의지를 시사했다. 통일부는 또 북한에 수정제의 질문에 아니다고 명확히 했고, 실무회담과 같은 추가적인 회담 제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분간 남북 양측의 한랭전선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북한이 지난 11일 저녁 대표단 파견 보류를 남측에 통보한데 이어 12일에는 판문점 연락관 채널 가동을 중단하는 가시적 행동에 들어갔다. 지난 311일 북한의 일방적인 단절 통보로 끊겼던 남북 연락채널이 당국회담을 계기로 3개월여 만에 가동됐다가 다시 불통의 비운을 맞이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측의 이 같은 행동과 함께 회담 무산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는 선전선동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상황을 타개하려는 북한의 노력도 나타날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상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과거에 비해 남북대화에 굉장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당국회담 장소로 기피해온 판문점을 실무접촉 장소로 수용한 점도 눈 여겨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현재의 국면을 우회하는 회담 제의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의 중국 방문과 시진핑 국가주석 면담을 계기로 대화에 물꼬가 본격화됐다는 점과 이달 말로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 이전에 상황타개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대화의 필요성을 요구했고, 북한 입장에서도 이러한 중국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대북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장관급이라는 고위회담이 수석대표 격의 문제로 무산된 만큼 북한이 실무회담으로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결국 해당분야에서 실무자들이 중심이 되는 실무회담을 통해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문제 등을 풀어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통일부 성의있는 모습을 보여야
정부 책임론잘못 지적해줘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남북당국회담 무산과 관련, “새로운 남북관계로 가기 위한 하나의 진통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회담이 무산돼서 국민께서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못했다앞으로 북한도 새로운 남북관계로 가려면 성의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 장관은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된 것이냐 보류된 것이냐는 질문에 무산된 것이라고 밝혀 빠른 시일 내에 개최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남북당국회담을 통해 남북간 현안을 협의·해결하는 노력을 할 것이며 그런 노력에 북한이 호응해 와야 한다언제든지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남북당국회담에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참석을 반드시 고집하지 않고 있음을 내비친 대목이다. 이는 특정인을 고집하기보다 권한과 책임 있는 인사가 나올 것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한 관계자는 잘못된 부분은 잘못된 것으로 구분하고, 그것을 바르게 지적해줄 때 발전적이고 지속가능한 남북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회담이 열리지 못하는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을 충분히 구분할 수 있는 분들이 그것을 명확히 구분해주지 않고, 북한에 대해 그러한 잘못을 지적해주지 않고 양비론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청와대의 기류는 남북 당국회담 무산의 책임이 수석대표의 격()에 연연한 기싸움이라는 등 양비론의 구조로 몰고 가는 일부 지적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회담 무산에 대한 우리 정부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비판 여론을 조기차단하는 의지로 해석된다.
 
 
제대로 된 태도를 보여야
대화 기회로 활용했어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서울에서 열리기로 한 남북당국회담에 국민들과 국제사회의 기대를 저버리고 북한이 일방적인 대표단 파견을 보류한 것은 유감이라며 대북 전문가들은 조평통 서기국 국장을 회담에 걸맞은 지위로 판단을 하지 않음에도 통일부 차관을 문제 삼아 대표단 파견을 보류한 것은 북한이 남한을 동등한 대화상대로 생각하는지 의문이라며 북한당국을 지적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도 북한이 만나자고 하면 황송해 하면서 만나고, 회동 대가를 요구하면 감사하게 제공하며 쩔쩔 매던 시기가 있었는데 남북 회담을 파국으로 몰고 가게 된 계기가 됐다북한은 그동안 관행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재철 최고위원도 북한이 대화를 재개하기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조평통 국장을 내세우면서 장관에게 나오라고 하는 것은 웃기는 짓이다. 격이 맞아야 하는 것은 기본인데 기본을 지키지 않으며 대화를 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 짓이라고 비난했다.
 
심 최고위원은 또 북한이 억지 트집으로 회담을 깬 것은 처음부터 회담을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미중 대화를 앞둔 기만전술이다. 북한이 대화와 평화를 원한다면 기본자세를 갖추고 상식과 원칙에 맞는 제대로 된 태도를 보여야 한다며 북한당국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여당의 입장과 달리 야당은 정부의 실책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최근 최고위원회의에서 소득없이 자존심 겨루는 대화가 아니라 실사구시, 물실호기(勿失好機.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음)하는 회담을 주문했던 사실을 거듭 강조했고, 전병헌 원내대표는 남북 모두 자존심 버리고 회담 성사를 위한 접촉에 나서길 요구한다고 말했다.
 
통일부장관을 역임한 민주당 정동영 상임고문은 한 인터뷰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큰 흐름이 긴장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작은 데 연연해 대국을 그르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크다더 큰 책임은 우리 정부에 있다. 북한을 대화국면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도 미중 정상회담도 있었고 그 전에 북한과 중국 간 대화도 있었고 또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한국과 일본을 다녀가면서 분위기를 다 만들었던 건데 참 너무 안타깝다우리가 김양건 통전부장관을 고집하다가 결국 이런 화가 온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북한이 진실성을 갖고 대화하려고 하는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우리가 김 부장이 나오도록 강요한 것이 문제가 있었지 않나 본다고 말했다. 그는 김 부장은 장관급이 아니라 우리 정부에 구태여 대입시킨다면 부총리급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류길재 통일부 장관과 함께 장관급 회담 수석대표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우리 정부가 류 장관과 김 부장의 회담을 원한다면 차라리 총리급 회담으로 격상시켜 현안을 풀어나가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제안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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