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감청에 뜨고 있는 ‘비화(秘話)폰

이상호 ‘X파일’ 도청 파문으로 ‘비화(秘話)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게다가 정보통신부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휴대폰에 대한 도ㆍ감청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공식 밝히면서, ‘비화폰’ 출시 허가여부 논란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는 것. 비화폰은 음성통화(음성디지털신호)를 암호화해 기지국으로 보내고 다시 상대방의 휴대폰으로 암호화된 음성신호를 보내 통화하는 휴대폰을 일컫는다. 신호를 암호화하기 때문에 도청이나 감청을 차단할 수 있다. 현재 사용되는 휴대폰은 CDMA방식으로 보안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별도로 비화 기술을 접목할 필요가 없어왔다. 그 자체로 도청과 감청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휴대폰 도청가능성을 부인하던 기존 입장에서 도·감청가능성 시인으로 말을 바꿔 비난을 받고 있는 정보통신부가 96년부터 비화폰을 개발해 온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과연 비화폰을 누가 썼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17일 국회 과기정위는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을 출석시켜 불법 도.감청 현황을 집중이 추궁했다. 이날의 주요한 내용은 도.감청 파문에 대한 것으로 특히 여야 의원들은 진 장관이 휴대전화 도청 가능성을 인정한 점을 들어 진 장관을 비롯한 역대 장관들의 ‘국회 위증’ 문제를 거론하며, 휴대폰 도.감청 현황과 불법 도청의 근본적 방지대책 마련 등에 대해 집중적인 공세를 폈다. ◆ 진 장관, ‘마스터키 담보돼야 비화폰 승인’ 급기야 한나라당 의원들은 진 장관의 위증에 대한 사과 및 사퇴까지 주장하며 진 장관을 몰아세웠고, 열린위리당 의원들은 주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과 휴대폰 감청의 법제화 등 제도적 방안 마련에 질문을 초점을 맞췄다. 열린우리당 홍창선 의원은 “정보기관의 설립목적에 비추어 감청의 필요성을 일정부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가기관의 권력남용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적절한 감시 및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낙순 의원은 “일반인 모두가 피해 대상자라고 생각을 하는 게 문제”라며 “국민들이 안정감을 가질 수 있도록 비화폰을 승인해 줄 수 없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은 “진 장관은 CDMA관련 도.감청은 불가능하다고 지속적으로 말해 왔다. 불법 도.감청과 관련해 왜 거짓말을 해 왔느냐”며 “거짓말해 온 부분에 대해 적어도 사과해야 하지 않느냐”고 진 장관의 국회 위증에 대한 공세를 펴기도 했다. 같은 당 진 영 의원은 “영장을 가지고 통신사업자 안에 들어가 합법 감청을 하면서 다른 전화번호를 도청하는, 합법을 가장한 불법 도청이 가장 우려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이 있느냐”면서 “이 부분에 대한 보완 없이 합법적 감청만 강조하면 불법을 조장하는 꼴이 된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김석준 의원은 참여정부 최장수 장관인 진 장관에 대한 사퇴를 정면으로 요구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김 의원은 "진 장관은 세계적인 인재인데, 자칫 공직에 잘못 나와서 국가적으로 손실된 수많은 인재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본인을 아끼는 마음에서, 본인이 책임짐으로 인해 IT(정보기술) 강국을 이끌었던 수많은 기술자들을 보호할 의도는 없느냐. 억울하더라도 사직할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진 장관은 "전반적인 정보통신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제가 할 일이 있다"며 거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진 장관은 위증 여부와 관련해서는 "어제 보고드린 것과 2003년 국감에서 말씀드린 것 모두,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거나 어렵다는 것으로 기조가 달라진 것이 없다"며 "아는 범위 내에서 충실히 답변했다"고 반박했다. CDMA 기술을 사용하는 휴대폰의 도청 가능성에 대해 진 장관은 "전파상에서 오는 CDMA 구간에서 도청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유선구간(도.감청)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받은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진 장관은 비화폰 승인과 관련해서는 "(모든 통화에 접근가능한) 마스터키가 담보돼 있는 상황이 전제된다면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답했다. ◆ ‘비화폰’ 마스터키 관리는 누가? 이처럼 "(비화폰을 사용하더라도)테러 등을 대비해 (암호를 풀 수 있는)마스터 키는 국가가 보관해야 하고,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이렇게 시행하고 있다"고 말하는 진장관. 더욱이 석호익 정책홍보관리실장은 "우리나라는 누가 마스터키를 보관해야할지 등에 대한 규정이 없어 비화폰 허용 여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는 비화폰이 상용화되더라도 국가 안보를 위해 통화 내용을 풀 수 있는 대비책은 있어야한다는 것으로, 이런 선결조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비화폰 상용화가 어렵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테러 등의 범죄에 대비해야하는 국가기관은 비화폰의 마스터키를 요구할 수 있다"며 "국내에서도 비화폰이 상용화되려면 이같은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화폰의 통화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를 해독할 수 있는 마스터키가 존재해야 하며, 이는 국정원이나 정통부 등 국가기관이 보관하고 있어야한다는 게 정부의 논리. 이에 따라 당분간 비화폰의 상용화는 기술적으로 이미 상용단계에 진입했음에도 불구, 출시는 향후 정부의 정책에 따라 구체화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한편, 비화폰은 국내에서 팬택계열이 지난 2003년 2월 처음으로 개발해 선보였으나, 정통부의 형식승인을 받지 못해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앞서 지난 2002년 한나라당에 10여대가 전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을 모았었다. ◆ 정부, ‘비화폰’ 구입 지시 이처럼 기업만이 ‘비화폰’을 개발한 것은 아니었다. 17일 서상기 의원(한나라당)의원 정통부가 1996년부터 비화폰을 개발, 지난 2002년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 의원에 따르면 정통부는 당시 산하기관이었던 한국통신(현 KT)의 의뢰를 받아 지난 96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산하 국가보안기술연구소에 비화폰 개발을 의뢰한 것. 개발을 의뢰받은 국보연은 지난 2002년 12월 삼성전자 휴대폰에 부착하는 방식의 음성통화 부분을 완료했다. 특히 서 의원은 국보연이 참여정부 들어서도 계속 멀티미디어 서비스 부분에 대해 비화폰을 개발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정부가 ‘휴대전화 도·감청 가능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정보통신부는 2003년 10월 8일 비공개로 진행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 국정감사에서 국가지도무선망 구축을 위해 휴대전화 비화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2001년 11월 광역지자체에 비화폰 구입 예산을 편성토록 지시했던 것. 이에 대해 정통부 관계자는 “그동안 정통부의 입장은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이론적 기술적으로 휴대전화 도·감청이 100%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었다”며 “국가적인 필요성에 따라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개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통부가 겉으론 도청가능성을 부인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도청에 대비한 비화폰을 개발한 것은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는 지적이다. ◆ ‘비화폰’ 누가누가 사용했나? 이와 함께 비화폰을 누가 사용했는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도.감청에 민감한 야당의원들은 갖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사 출신으로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 제1차장을 지낸 정형근 의원은 누구보다 도·감청 실태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한 언론에 따르면 실제로 정 의원은 휴대전화를 10여대 가지고 다니며 한 달에 2~3개는 전화번호와 기기를 바꾼다고 한다. 기자들도 그와 통화하려면 보좌관에게 연락을 한 다음, 전화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출신 의원들도 남다른 대응을 보인다. 과기정위에서 휴대전화 도·감청 문제로 관련 정부 기관을 애먹이는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도 휴대전화가 2개다. 그런데 과학기술정보통신위 소속인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휴대전화가 1개뿐이다. 그러나 박 의원은 휴대전화 통화를 짧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요한 얘기는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야당의원들은 도.감청에 누구보다 민감하다. 야당 당직자들은 휴대전화를 보통 2~3개씩 들고 다닌다. 그래서 바지 주머니가 언제나 불룩하다. 선거철에는 특히 심해진다. 이때는 휴대전화를 3∼4개씩, 심지어 6개까지 들고 다니기도 한다. 더욱이 ‘비화폰’이 실제로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 언론에 따르면 이회창 전 총재는 대선 때인 2002년 3~4월부터 비화폰을 사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용하던 휴대전화도 공개됐다. 이를 개발한 곳은 팬택&큐리텔(구 현대큐리텔). 이 업체에서 비화폰 10대를 한나라당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팬택&큐리텔은 당시 100대 정도의 비화폰을 만들었으며, 이를 한나라당, 민주당(20대), 청와대 등 정치권에 총 50대, 재벌총수 등 기업 쪽에 50대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1년 후인 2003년 2월 3일 ‘팬택앤큐리텔은 비화폰을 개발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시 송문섭 팬택앤큐리텔 사장은 “이 비화 휴대전화는 1년 전에 이미 개발이 완료된 것”이라며 “당시 출시되지는 못했지만 일부 정치인이 이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송 사장은 이미 이때 정치권에서 비화폰을 사용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결국 팬택앤큐리텔은 얼마든지 가능한 도·감청을 막기 위해 비화폰을 개발한 것이다. 팬택&큐리텔은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탑재해서 한 번 더 암호화해 유선구간에서도 도·감청을 어렵게 했다. 이것이 바로 이회창 전 총재에게 전달된 ‘비화폰’이다. 팬택&큐리텔은 상용화에 앞서 실험용으로 이를 정치권 등에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팬택앤큐리텔은 비화폰이 가능하다는 것만 증명하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하지 못했다. 비용을 들여 비화폰을 개발하고 상업화를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는 가격, 기존 휴대폰으로도 도청이 어렵고 비화폰 가격이 너무 높아 수요가 많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휴대폰 업체들이 통신 보안을 요하는 분야에 일부 수요를 고려해 비화폰을 판매하기 시작하면 그 동안 현실적으로 휴대폰은 도청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업체 주장과 배치되기 때문에 비화폰 개발을 놓고 고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와 함께 범죄자들이 부정적인 목적을 위해 비화폰을 사용하면 국가 안보와 수사를 위한 합법적인 감청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비화폰의 개발과 판매를 별로 반기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삼성과 LG, 팬택앤큐리텔 등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는 이미 비화폰 개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는 듯 하다. 업계 관계자는 "사회적 분위기와 수요가 동시에 충족돼야 비화폰의 상용화가 가능 할 것"이라며 "하지만 현재로서는 도청 사건이 있었다 해도 쉽게 비화폰을 만들어 판매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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