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첨단기술 해외 유출 심각

국가경쟁력과 직결된 우리 첨단 기술이 줄줄이 새나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첨단 산업 분야에서 기술 유출 사고가 급증하고 있어, 이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향후 막대한 국부의 손실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기술 유출은 반도체 제조공정, TFT-LCD 컬러 필터, 초음파 진단기 등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우리의 첨단기술 등 전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가정보원 산업기술보호센터에 따르면 1998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7년 반 동안 적발된 기술유출 기도 사례는 모두 82건으로 만약 이들 기술이 유출됐을 경우 예상 피해액만 7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또한 연도별 기술유출 기도 사례는 2003년 이전에는 매년 10건 이하였으나 2004년 26건, 2005년 6월까지 16건 등으로 최근 들어 급증 추세를 보였다. 이에 따른 피해규모는 ‘98년부터 2003년까지 6년간 26조원이었으나 2004년 이후 51조원으로 증가했으며 생계형 기술 유출에서 점차 대형·지능화 돼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야별로는 정보통신 27건, 전기전자 32건, 기계 10건, 생명공학 5건, 기타 8건 등으로 국내의 첨단 기술이 유출이 심각한 실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를 막기 위한 ‘첨단 산업 기술 유출방지에 관한법률’ 제정은 산업계와 과학기술계는 논란으로 아직 불투명한 상태, 업계관계자들은 조속한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며 거듭 촉구하고 있다. ◆ 중소기업도 기술유출 심각 광주지검 특수부는 지난달 28일 자신이 근무하는 벤처기업의 첨단 광산업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려 한 직원 등 5명을 적발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대 교수 B씨가 이들에게 기술을 복제, 반출토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 대기업 첨단 기술뿐 아니라 중소기업마저도 기술유출피해로 얼룩지고 있는 것이다. 이 업체 대표이사로 일하기도 했던 B씨는 지난해 7월부터 직원들에게 양산제품 설계자료 등 첨단 기술을 복제, 반출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얼마 전 국내 유명 반도체 제조업체인 A사 간부는 조세면제국인 케이만군도에 반도체 업체를 설립했다. 자신이 다니던 기업에서 플래시 메모리 기술을 유출해 현지 공장을 세우려 했던 것. 이 간부는 같은 회사 출신 연구원 6명과 함께 케이만군도의 지방정부와 연계, 기술을 빼돌리려다 지난달 중순 적발됐다. 지난해 11월에는 대만의 경쟁업체로부터 고액 연봉을 제시받은 국내 TFT-LCD 제조 업체 B사 직원 4명이 관련 기술을 디스켓에 담아 대만 업체로 빼돌리기 위해 출국하려다 검거됐다. 앞서 지난해 9월에는 국내 C사 반도체 제품개발본부에서 근무하던 D씨가 해외 경쟁업체인 E사로의 전직을 앞두고 반도체 검사 장비를 운용하는 핵심 프로그램 330여개를 자신의 홈페이지로 전송한 뒤 해외로 유출하려다 적발됐다. 이밖에도 1998년 2월 삼성전자에서 발생한 반도체기술 대만 유출(피해액 6조원), 2001년 6월 LG 초고속정보통신망 기술의 중국 유출(5조원), 2003년 6월 현대LCD의 휴대폰 컬러모듈기술의 중국 TRULY사 유출(4조3000억원) 사건 등이 발생했었다. 삼성SDI 주성엔지니어링 등에서도 기술유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이처럼 기술 유출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IT 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세계 각국이 국내 기술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핵심기술인력에 대한 이직이 잦아진 것도 한 요인이다. 해외 경쟁 업체가 고액 연봉과 각종 인센티브를 내세우며 핵심인력을 스카우트하고 있어 이 과정에서 기술이 경쟁업체나 해외로 넘어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12조원 가량 기술유출피해 될 뻔! 특히 우리나라의 첨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중국으로의 기술유출 사례도 눈에 뛴다. 2년간 연인원 200명의 연구원이 6245억원을 들여 개발한 최첨단 반도체 기술이 중국으로 고스란히 유출될 뻔한 사건이 있었다. 이번 사건은 하이닉스의 부장으로 퇴직한 김모씨(46)의 제의에 윤모씨(37) 등 엔지니어 6명이 가담해 발생한 것으로 유출됐을 경우 피해금액만도 최소 4000억원에서 최대 12조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어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5∼6월 우모씨 등 A사에 근무하던 핵심 엔지니어 5명과 반도체공장 건설준비팀을 구성, 이들에게 퇴사 때 반도체 제조공장 설계자료와 제조공정 기술 관련자료 일체를 복제해 반출토록 지시했다. 연봉 7000만∼1억원에다 스톡옵션을 받기로 한 우씨 등은 낸드 플래시 90∼120㎚(나노미터) 기술의 개발현황 및 세부 공정자료, 양산방법 등 핵심자료들을 CD, 메모리카드 등에 담아 빼내다 지난달 국가정보원의 제보를 받은 검찰에 의해 덜미를 잡혔다. 이외에도 하이닉스반도체 제품개발본부에 근무하던 연구원은 해외 경쟁사인 I사에 전직하는 조건으로 512메가 DDR램 등 웨이퍼 검사장비를 운용하기 위한 관련기술 프로그램 330여개를 지난해 4월부터 6개월간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 계정으로 빼돌리다 적발된 바 있다. 또 지난해 하이닉스반도체 연구원이 초집적 메모리 반도체 핵심기술을 미국 업체에 넘기려 한 혐의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문제는 이처럼 우리나라의 경쟁 상대인 중국이 국내 기업에 대한 핵심기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중에서 중국 기업들이 자동차, 반도체, LCD 등 우리나라의 첨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한 기술 이전을 시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 기술유출 막기 위한 법제정 논란 이러한 기술유출피해는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막기 위한 ‘첨단 산업 기술 유출방지에 관한법률’ 제정은 산업계와 과학기술계의 대립 속에서 겉돌고 있다. 정부는 다음달 열리는 정기국회에 관련 법안을 상정, 빠르면 12월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지만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국회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 등 국회의원 34명은 지난해 11월 기술유출방지법 제정을 발의했으나 “기존 법률로도 충분하다”는 과학기술인들의 반발 등으로 논란만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었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기술유출방지법을 제정하려는 이유에 대해 “기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이 민간기업 비밀 누설만을 처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법안은 따라서 국가 핵심기술을 보유한 연구기관이나 정부지원 아래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해외매각·기술이전 등을 할 경우 산자부장관의 승인을 거치고, 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경우 산자부장관에게 사전에 통지토록 의무화했다. 연구개발직 종사자들에 대한 전직 제한은 물론 퇴사 후에도 일정기간 경쟁업체에 취업을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인들은 ▲첨단·핵심기술의 기준이 모호한데다 ▲정상적인 기술거래와 유출의 차이점을 쉽게 구별할 수 없고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법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인권유린 등의 독소조항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또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법안에 의해 기술보호위원회를 새로 설치할 경우 관련업무가 중복될 소지가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업계관계자들은 국내 산업의 기반을 지탱하고 있는 첨단 핵심 기술이 향후 국부(國富)는 물론 국가경쟁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이를 막기 위한 법률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하는 모습이다. 한 관계자는 “일본도 2003년 기술유출 방지 지침을 만들고 지난달 형사처벌 대상을 확대하는 등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했다”며 “우리도 이에 걸맞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주장하고 있다. 과거 우리 기업들이 기술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주력해왔다면, 이제는 기술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시급한 대처방안을 고려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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