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유가 중장기 대책과 국민에게 에너지 절약만 호소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지속하면서 국내 및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고유가 충격은 우선 물가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0.5%에 달해 3개월 사이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인 것은 이를 반영한 것. 영국도 연간 인플레이션율이 지난달 8년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미국 뉴욕증시가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으며 국내 증시도 약세를 면치 못하는 등 각국 증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러한 고유가 행진은 장기침체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국내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할 수 밖에 없다. 기업들의 생산원가를 높여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그나마 우리 경제의 버팀목 구실을 하는 수출마저 위축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에너지 위기가 더 깊어지기 전에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정부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소비구조 개편 등 중장기 대책과 국민에게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는 단기 대책 외에는 이렇다 할 방안이 없어 속앓이만 하고 있는 것. 유가대책의 일환으로 도입한 석유조기경보지수는 급변하는 상황을 제대로 반영치 못해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두바이유 가격 55달러선 밑으로 내려가기는 어려워 중동산 두바이유는 국내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만큼 가격 변동에 따라 국내경제가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두바이유 가격에 대해 당초 정부는 올해 배럴당 35달러선을 예상했으나 이미 20달러 이상을 초과했다. 연평균 가격은 ▷2003년 배럴당 26.79달러 ▷2004년 33.64달러에서 ▷2005년(1월~8월) 60달러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미 65달러를 넘어선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시장에서는 ‘70달러’까지 거론되고 있어 세계경제가 출렁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거침없는 상승세는 좀처럼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1일 열린 국제유가전문가협의회에서는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55달러 안팎에서 크게 내려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어 국내 에너지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대책 없는 정부, 조기경보지수 있으나마나 산업자원부 석유공사 에너지경제연구원 한국은행 삼성경제연구소 등 민·관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유가전문가협의회는 최근 유가 급등이 이란 핵문제 등 중동의 정정불안에 기인한 것으로 사우디의 왕위 계승과 관련한 갈등 심화, 이라크 치안 불안 등 지정학적 불안요인이 해소되기 어려워 하반기에도 고유가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정부는 유가대책과 관련해 석유 비축, 해외 에너지 개발투자, 에너지 소비구조 변화 등 중장기 대책 외에는 아직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 당정협의를 통해 백화점 은행 주유소 찜질방 등 에너지 다소비업종의 자율 절약을 유도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승용차 운행 제한, 할인점 영업시간 제한 등 강제적인 에너지대책 역시 국민과 기업의 반발은 물론 내수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선뜻 시행하지 못하고 ‘국민정서’에만 호소하는 분위기다. 소비자 부담 완화를 위한 유류세 인하도 소비억제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또한 최근 ‘석유시장 조기경보지수’를 활용해 단계별 에너지 절약 및 수급관리대책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 달 단위로 지수를 산출, 급변하는 유가 상황에 신축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 산자부 관계자는 “경보지수는 국제유가뿐만 아니라 석유 수급과 중동 정세 등 18개 변수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바로바로 나오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며 “이번 지수는 유가에 비해 수급이 크게 나쁘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주의에서 경계 단계로 진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산자부는 수급 불균형 속에 유가가 1~2개월 새 배럴당 10달러 이상 급등하는 등 조기경보지수가 경계 단계로 진입할 경우 국무회의를 거쳐 가로등·옥외간판 등 야간 조명기구 사용 시간을 강제 단축하고 이후에도 유가 급등세가 지속될 경우 승용차 강제 10부제, 유흥업소·야간 골프연습장·할인점 등의 영업시간을 줄인다는 계획이지만 더욱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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