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회장-김 부회장 간 대북사업 주도권 갈등에서 증폭된 ‘사퇴압력’?

현대그룹인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을 주도해온 김윤규 부회장의 대북사업추진 과정에서 ‘개인비리’가 드러나면서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현재 그룹차원에서 내부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현대그룹은 이번 김 부회장의 비리를 계기로 대북사업에 투명성과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김 부회장의 개인 비리는 △금강산 옥류관 분점 등의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일부 절차상의 문제를 일으킨 것 △북한 사업소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불법으로 가지고 나오다가 북한 당국에 적발된 일 등 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김 부회장이 대북사업과정에서 개인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현대 그룹은 김 부회장의 대표이사직 해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현대그룹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 부회장간 대북사업 주도권 갈등에서 촉발된 ‘권력 축출’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어, 현대그룹의 내의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이 부담스러운 듯 현대그룹은 이번 감사를 통해 김 부회장의 비리 적발이 현 회장과 김 부회장 사이의 갈등으로 비쳐지는 것을 축소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현대 그룹은 8일 공식자료를 통해 “현대 아산에 대한 내부감사 결과 김윤규 부회장이 대북 사업 수행과정에서 개인 처신에 일부 문제가 포착됐다”면서 “추가적인 내부 감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만 밝히고 있을 뿐 함구하고 있다. 현 회장은 지난달 중순 그룹 경영전략팀 사장을 겸임하는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으로부터 감사결과를 보고 받고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국가예산을 지원받는 대북사업의 특성상 도덕성이 강조됨에도 김 부회장이 개인비리를 저질렀다는 것에 분개한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는 △금강산 옥류관 분점을 건설하면서 40억원의 공사비 중 8억원을 하도급업체에서 리베이트로 받아 이 돈을 이용해 친지 명의로 옥류관 지분 20%를 사들인 점 △북한 사업소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불법으로 갖고 나오다가 북한 당국에 적발된 점 등 김 부회장의 비리 혐의가 모두 포함됐다. 현 회장은 감사 결과를 보고받은 직후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부회장의 비리가 공개되자 현대그룹 측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상황을 가급적 ‘축소’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조심스러운 태도는 지나친 압박을 가할 경우 있을 수도 있는 김 부회장의 ‘돌출 행동’을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연스럽게 김 부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정부도 파악한 현대그룹의 감사보고서 내용을 보면 김 부회장이 계속 버티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또 자연스럽게 현 회장의 ‘친정(親政) 체제’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 현 회장과 김 부회장의 예견된 사태?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기 전 김 부회장과 현 회장과의 갈등설은 지난해부터 그룹 안팎에서 제기돼 왔다. 남편인 정몽헌 회장 사후 현대 회장을 맡게 된 현 회장은 자신이 대북사업을 주도해야 한다고 여긴 반면 김 부회장은 지금까지 자신이 대북사업을 주도해온 만큼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이 빚어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현 회장이 지난달 장녀 정지이씨를 대동하고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면담한 것도 대북사업의 정통성을 오너 일가가 직접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재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현 회장이 지난 3월 당시 고문이었던 윤만준 사장을 공동 대표이사로 앉힌 것도 김 부회장이 스스로 용퇴하기를 바라는 차원이었다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김 부회장이 사퇴를 준비중이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현 회장의 뜻에 따라 조만간 물러날 생각이었는데 개인처신 문제가 불거지자 불명예 퇴진하기보다는 이 문제를 해명한 뒤 거취를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룹 내부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고 최근 일부 보도로 시기가 당겨졌다는 분석도 나돌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김 부회장의 독단적 사업 운영과 좌충우돌식 행동 때문에 그룹뿐만 아니라 아산 내부에서도 김 부회장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던 것이 사실"이라며 특히 “김 부회장은 정몽헌 회장 자살 이후 책임론이 일었으나 '대북 유일 창구론'을 직간접적으로 주장해 현대차그룹, 중공업그룹 등 모든 '정 씨' 일가에서 반감을 사왔다”고 조심스레 언급했다. 현 회장이 가장 부담스러워한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김 부회장의 행동은 국정원과 통일부 등 대북사업 추진 연관 정부 부처와도 여러 번 마찰을 일으켜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팠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사장직에서 물러나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공동 대표로 선임된 것 자체가 이러한 여론을 반영한 인사였다는 해석이다. 윤만준 공동 대표(대표이사 사장)가 취임한 뒤로 현 회장 주재로 매달 한 차례 씩 열리는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도 김 부회장 대신 윤 사장이 참석했고 현대아 산 임원회의도 윤 사장이 주재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 일각의 추측, ‘김 부회장의 비리로 치부하게는 모호한 부분이다’ 이러한 추측이 무성한 가운데 현대그룹은 물론 현대아산은 김 부회장 비리 내용에 대해 철저하게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현대그룹이 파악한 비리는 이같은 금강산 사업 관련 이권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그룹 한 관계자는 “대북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절 김 부회장이 금강산관련 시설 지분 배분 문제에 관여한 점 등이 문제로 적발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김 부회장의 문제의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그룹이 어려움을 겪던 시절 김 부회장이 나서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로 반드시 개인적인 비리로 치부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밝혀 김 부회장의 감사조치는 권력게임의 물타기용 수사를 시사는 대목이다. 현재 김 부회장은 이에 대해 가타부타 의견 표명을 하지 않고 있고, 더욱이 지난 9일 오전 8시 30분쯤 계동 사옥에 잠시 출근했다가 곧바로 잠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듯 도덕성에 타격을 입게 된 김 부회장이 성격상 자진사퇴할 가능성도 점쳐 지고 있다. 김 부회장을 모셨던 한 인사는 "언론에 알려진 것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며 "그룹 차원에서 작심하고 밀어내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36년을 현대그룹에 몸바친 사람으로서 매우 통탄해 하고 있다"고 일각에서 보는 비판의 시각들을 질타했다. ◆ 김윤규 그는 누구인가?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은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을 사실상 총괄해 온 전문 경영인으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마지막 가신(家臣)’으로 통한다. 정 창업주가 작고하기 얼마 전까지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으로 자주 찾아가 점심을 함께하기도 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1969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1998년 현대그룹 남북경제협력사업단장으로 대북사업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현대건설과 현대아산 사장을 지냈다. 2000년에 현대그룹 내에서 발생한 이른바 ‘왕자의 난’ 때는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편에 서서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에 맞섰다. 정몽헌 회장과의 인연은 정 회장이 현대건설 회장으로 취임한 1996년에 현대건설 상무로 보좌하면서 시작됐다. 김 부회장은 현 정부 출범 후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불구속기소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지난해 5월 부처님오신날에 특별사면됐다. 이후 금강산 골프장 건설, 금강산 해수욕장 야영장 허가 등 현대그룹의 굵직한 대북사업을 지휘했다. 그는 올해 3월 부회장으로 승진했으나 윤만준(尹萬俊) 사장과 현대아산 대표이사직을 함께 맡는 등 그룹 내에서 서서히 위상이 약화되어 왔다. 한편 현대그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북사업의 불투명성과 도덕성 논란이 불거질 부분도 우려하고 있다. 김 부회장의 비리가 적발된 금강산 사업에는 2001년부터 정부 자금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혜 시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01년 6월 한국관광공사를 금강산 관광사업에 참여시키면서 정부의 남북협력기금을 대출해 줘 현대아산을 사실상 지원해 왔다. 관광공사는 2001년 6월 900억 원의 남북협력기금을 대출해 지난해 9월까지 이 자금을 모두 금강산 사업에 투자했다. 현대아산의 금강산 온천장(355억 원), 문화회관(300억 원)을 인수했고 식당 겸 판매시설인 온정각의 지분 60% 등을 사들였다. 2004년 9월부터는 추가로 27억2000만 원을 금강산 지역의 도로 정비에 쓰고 있다. 이 밖에도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중고교생 금강산 체험학습 경비로 28억5000만원이 남북협력기금에서 쓰였다. 이번 사태가 터지자 현대그룹은 ‘감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사안 파악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같은 사태에 대해 언론들의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그룹 내부 파워게임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물타기용' 수사가 아니냐는 해석에도 상당부분 무게가 쏠리고 있다. 투명성과 도덕성이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할 대북사업에 이같은 김 부회자의 비리는 분명 세밀한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겠지만 36년 간 한솥밥을 먹던 동료를 마녀 사냥식 여론재판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급기야 사태가 확산되자 현대그룹은 "김 부회장 문제는 어찌 보면 사소한 일"이라고까지 했다. 이처럼 현대 그룹의 내분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내부 분란, 권력게임으로 색이 바래가는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을 우리 국민들과 북한이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볼게 될지 우려감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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