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인 경영으로 ‘1등 LG’ 역설

LG 구본무 회장은 ‘약속’을 잘 지키기로 유명하다. 그룹 회장이지만 근무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외부 사람과 만날 때에도 항상 15분쯤 일찍 나가 상대방을 기다리는 편이다. 또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신의 승용차가 갓길 운행을 하거나 적당히 위반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LG의 한 임원은 “구 회장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구 회장의 ‘1등 주의’에는 ‘정도(正道) 경영’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기업의 목표가 이윤 추구이지만, 원칙과 룰을 준수하는 윤리성을 갖추어야 일류기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구 회장은 작년 말 임원세미나에서도 “1등 LG는 반드시 ‘정도경영’의 기반 위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 건전하고 깨끗한 기업이 존경 받는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올 초 사장단 간담회에서는 “상황이 불투명할수록 정도경영을 더욱 충실히 견지해야 한다. 어렵다고 해서 미봉책이나 편법을 동원하는 도덕적 해이 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LG그룹이 95년부터 정도경영의 기치를 내걸어 가장 먼저 결실을 본 부문은 협력업체와의 관계였다. LG는 그동안 잡음과 뒷돈이 오가던 협력사와의 거래를 투명화하기 위해 계열사별로 윤리 규범을 만들고 인터넷 조달 시스템을 구축했다. 어음 결제를 폐지하고 내부 감사제도도 강화했다. “투명한 거래를 정착시켜야 경쟁력 있는 업체들이 스스로 찾아온다”는 구 회장의 철학에 따른 것이었다. 국내 대기업으로는 처음 도입한 ‘지주회사’ 체제도 정도경영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그 동안 LG그룹은 ‘구씨·허씨의 연합체’ 형태로 운영되어오다 보니 삼성 등 다른 대그룹에 비해 의사결정 과정이 느리고 불투명하다는 일부의 비판을 들어왔다. 더구나 대주주 지분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보니, 대주주와 계열사 간에 불투명한 주식 거래가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구 회장은 지주회사 출범과 함께 LG전자·LG화학 등 주력 계열사의 대표 이사직에서 사퇴, ‘전문 경영인을 중심으로 한 책임경영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는 최근에도 “지주회사 체제하에서 나의 역할은 전문 경영인들을 잘 독려해서 이익을 많이 내도록 하는 것이며, 그래야 지주회사의 배당도 많아진다”고 말했다. LG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구조조정본부를 없앴다. 대신 정도경영TF(태스크포스)팀을 발족, 자회사의 불공정 행위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주주 감시기능을 강화했다. 정도경영TF팀은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자(子)회사의 감사위원회가 요청한 현안만 검토할 수 있도록 해, 경영층이나 대주주들의 불합리한 영향력 행사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 시장(市場)에서도 이런 LG의 노력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참여연대 경제 개혁센터 김상조 소장은 이에 대해 “LG가 지주회사 전환으로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LG의 지주회사 전환에는) 소유와 지배 구조를 단순화해 기업을 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렁한 LG에 악바리정신을 “누구나 인정하는 ‘1등 LG’, 이것이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다. 고객이 신뢰하는 기업, 경쟁사들이 두려워하면서도 배우고 싶어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2002년 신년사에서) 구본무 LG 회장은 작년 시무식에서 ‘1등 LG’란 화두를 던졌다. 10분 남짓한 새해 신년사에서 무려 13차례나 ‘1등 LG’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도전정신과 끈질긴 승부근성을 강조한 것이 ‘1등 LG’의 시발이다. 그는 이후 계열사 생산현장과 연구소를 방문하거나 각종 사내외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1등 LG’를 역설했다. “올해는 LG의 미래를 책임질 대표사업을 제대로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 R&D(연구개발)에서도 확실한 ‘1등 LG’를 달성해야 한다.”(2003년 2월 LG전자 디지털TV연구소 방문에서) 구 회장이 ‘1등 LG’를 부쩍 강조하는 것은, 1등 기업이 아니고서는 10년·20년 뒤 살아 남기 힘들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2000년 말 IMT-2000(차세대 이동통신) 사업권 획득 실패에 이어 ‘LG그룹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악성 루머에까지 시달리면서, ‘1등 프리미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2001년에는 기업의 내부 역량을 축적하는 ‘내실경영’을 강조했고,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1등 LG’를 주창한 것이다. 그는 당시 “지금은 1등이 아닌 기업은 인정해 주지 않는 시대다. 경영 환경이 어려울수록 1등 기업은 오히려 진가를 발휘하며, 1등의 프리미엄이 나날이 커진다”고 말했다. 물론 여기에는 에어컨·전자레인지·LCD(액정표시장치)·PDP(플라스마 디스플레이) 같은 첨단 전자제품에서 국내 최초로 미국식품의약국(FDD)의 신약 승인을 받은 항균제까지, LG도 세계 1등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실제로 ‘1등 주의’ 선언 이후 LG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평이다. 구 회장은 우선 현장 경영과 R&D 투자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지난 상반기에만 디지털TV 연구소·정보전자소재 사업장 등 10차례가 넘게 생산현장과 연구소를 방문했다. 또 유례 없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올해 R&D 분야에 작년보다 24% 증가한 2조6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 미래의 승부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계열사 CEO·직원들도 훨씬 공격적인 경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71인치짜리 초대형 PDP TV(벽걸이 TV)를 개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는 2005년까지 미국 시장에서만 3억달러의 마케팅 비용을 투자, LG브랜드 고급화 전략에도 힘을 쏟고 있다. 과거 LG는 내수 시장쟁탈전에서 경쟁 업체들이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기 급급해 기업 이미지가 ‘물렁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하지만 요즘 LG는 상대방 약점을 파고들어 선제 공격과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악바리’로 변해가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