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 같던 인사청문회 현장

 

▲ 이동흡(62)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애국국민운동대연합 주최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지명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각종 비리를 상징하는 쓰레기 더미를 터트려 청소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국회는 오는 21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되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62)가 지난 21일부터 이틀 동안 실시된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버텨냈다. 비리 의혹에 대한 본인의 공식 해명자료만 자그만치 20건, 새누리당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와중 민주통합당은 인사 청문회에서 공금 유용 문제라는 칼을 빼들어 격돌했지만 이동흡은 조목조목 반박하며 공세를 거뜬히 견뎌내며 공직후보자 명패를 거머쥐었다.

대한민국 모든 이슈 위에 올라탄 이동흡은 이제 ‘국회 동의’라는 산을 넘으려 하고 있다. 

조현상 기자

인사청문회 현장스케치, 이동흡은 꿋꿋했다
살얼음판 같았던 인사청문회 자리,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특정업무경비 유용 의혹 등 각종 비리 의혹을 놓고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졌다. 일찍이 민주당 측이 공언해온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일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의연함을 보였다. 

모든 의혹은 이 후보자가 헌법재판관 시절 파생되었으며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특정업무경비로 매달 지급된 4백만 원, 모두 2억 5천만 원을 개인 통장에 넣고 유용한 의혹이었다. 박범계 민주통합당 의원은 “후보자님께서 집으로 가져가시는 월 4천만 원, 2억 5천만 원은 횡령이 아닐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이 후보자는 “좌우간 저는 헌재가 정해준 기준대로 그렇게 사용했습니다”라며 헌재 기준대로 재판 관련 업무에만 썼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이어 잦은 출장에 가족을 동반하고, 항공권 좌석 등급을 낮춰 차액을 챙겼다는, 이른바 ‘항공권 깡’ 의혹이 뒤따랐다. 서영교 민주통합당 의원이 “독일에서 이코노미로 초청했는데 난 이코노미 못타, 바꿔죠. 헌법재판관 정도 되시면 사비로 바꾸든지 아니면 이코노미로 타시든지”라고 묻자 이 후보자는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잘못이 없기 때문에 정식 출장을 허가 받아서 간 것입니다”라며 규정상 헌재 재판관은 비즈니스 석을 이용하게돼 있다고 주장했고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사퇴하겠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이 “소위 말해서 항공권 깡이라고 해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는데...”라며 거들었고 곧바로 이 후보자는 “사실이면 바로 사퇴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한 것이다.

이어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분당에서 왜 전철로 타면 안됩니까?”라며 승용차 홀짝제가 시행되자 헌재에 관용차 한 대를 더 요구한 것은 부적절했다며 화두를 꺼내자 이 후보자는 “분당에서 여기서 너무 멀어서...다른 재판관은 서울 사시는데”라고 말끝을 흐리고는 해당 사안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김 의원은 “야유, 그렇게 얘기하지 마십시오”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 후보는 이어 새누리당 의원에게 정치자금 10만 원을 불법 후원한 사실에 대해서는 사과했으며 넉달간 위장전입한 사실은 인정했다. 

특히 여야 의원들은 이 후보자가 헌법재판관 시절 내린 판결에 대해서 한 목소리로 질타하고 나서자 친일재산 환수와 일본군 위안부의 배상청구가 일부 위헌이라는 반대 의견을 냈던 것 관련 “저의 진의가 위안부 할머니나 애국자에게 잘못 전달된 부분은 유감이다. 절대 친일이나 위안부 아픔을 모르는 재판관은 아니다”고 대답했으며 유신헌법 제53조와 긴급조치 1·2·9호의 헌법소원 사건의 선고를 일부러 미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제가 마무리하려고 노력했는데 평의에는 못 넣고, 떠나기 전에 완성해서 평의에 올려놨다”고 해명했다.

5·16 쿠데타가 ‘군사반란’인지 ‘혁명’인지를 묻자 한참을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씀드리기 그렇다”고 답했다가 “5·16 쿠데타라고 학교에서 배웠다. 그건 바뀔 수 있겠나”라고 답했다.

▲ 민주통합당 박홍근 의원이 2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에게 투기목적의 위장전입 의혹 관련 질문을 하고 있다.

민주당 호언장담했지만...
민주당은 인사청문회 전 “이 후보자가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문회 대상이 아니라 검찰 고발 대상”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미 제기된 의혹만으로도 부적격이기 때문에 인사청문회에 들어가기 전에 사퇴해야 된다는 것이다. 강경한 민주당 입장으로 인해 이 후보가 인사청문회를 원만하게 치르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인사청문회 직전까지의 주변 반응이었다. 특히 법조계 관계자는 “이틀간 진행되는 청문회에서 수많은 의혹에 흔들림 없이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비관한 바 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이 후보자의 대처는 의연했다. 지난 20일 민주당은 “자진 사퇴하지 않고 청문회가 진행된다면 판도라의 상자인 특정업무경비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특정업무경비는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르면 수사·감사·예산·조사 등 특정업무 수행에 소요되는 실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현금이다. 이는 특히 업무추진비 용도로는 쓸 수 없으며, 증빙이 있어야 하지만 이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으로 취임한 2006년, 헌재는 이 돈을 사용하고 법재판활동비·재판부운영비라고만 적었다가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

헌재의 2013년 특정업무경비는 10억여원, 주로 소장이 집행하며 헌법재판관들도 1인당 2000만원 정도씩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자의 경우 씀씀이가 커서 헌법재판관 재임 6년 동안 수억원을 쓴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동흡은 “잘못 없다, 안했다, 관행이다”로 모든 의혹을 피해갔다.

민주당의 이러한 공세는 이 후보자의 헌재에서 근무 당시의 성향에 대해서도 번번이 빗나갔다. 이 후보자는 헌재 역사상 가장 많은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으로 손꼽힌다. 헌법재판의 의의는 다수인 입법부가 만든 법이나 대통령이 시행한 정책을 소수의 입장에서 심판하는 것이지만 이 후보자는 상당수 재판에서 합헌 의견을 냄으로써 다수의 이익을 대변했다. 반면 소수 의견을 낸 사항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수사를 위한 ‘BBK특검법’에 대한 위헌 의견, 한나라당이 국회의장의 사학법 처리가 부당하다며 제기한 권한쟁의에 대한 인용 의견 등으로 편향이 지나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학계에서조차 그동안 일부 사례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보면 더 큰 문제가 발견된다며 “몇몇 사례보다는 결정을 하는 성향을 보라”고 말해왔다.

지난 2010년 12월 대법원이 법률에 대한 헌재의 위헌 심사권을 가로채 유신헌법의 긴급조치가 위헌이라고 판결하자 당시 이강국 소장이 집중연구를 지시한 바 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주심으로 있었으며 소장의 계속되는 재촉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9월 퇴임 때까지 평의에 붙이지 않았다. 때문에 이 후보자가 대선을 앞두고 박 당선인을 의식해 사건을 지연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소장 후보 임명은 그에 대한 보답이라는 것이 주변인들이 쉬쉬하며 전하는 말이다. 이에 이 후보자는 앞서 밝힌대로 “제가 마무리하려고 노력했는데 평의에는 못 넣고, 떠나기 전에 완성해서 평의에 올려놨다”고 해명했으며 헌법재판관 시절 낸 ‘친일 성향’의 의견 등에 대해서는 “저의 진의가 위안부 할머니나 애국자에게 잘못 전달된 부분은 유감이다. 절대 친일이나 위안부 아픔을 모르는 재판관은 아니다”라며 일각에서는 칼날을 갈았던 민주당 측 의원들을 당황하게 했다는 후문이다. 

인사청문회, 헌재 역사상 유례없는 의혹들의 집중포화 맞은 이동흡
이동흡의 대처법 “잘못 없다, 안했다, 관행이다”
칼 갈은 민주당 측 당황했다는 후문도...

이동흡을 둘러싼 그 많은 의혹의 근원
이동흡이 인사청문회를 무사통과한 것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 법조계 관계자가 이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이 후보자의 약점은 의혹이 많다는 게 아니라 (헌재와 법원 내 인사들의) 제보가 많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 후보자에 대해서 동료들의 제보가 끊이지 않음에도 해명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 후보자의 행적을 공개하거나 제보한 사람은 대부분 같은 법원에 근무했거나 헌재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 이 후보자가 업무추진비 관련 “업무추진비를 주말에 연구관들과 썼다”고 주장하자 헌재 연구관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최근 논란이 과거 함께 근무했던 판사와 연구관 등 내부에서 나온 얘기라며 “품성과 자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과거 어느 후보가 이렇게 문제가 많았느냐”며 주변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을 들춰냈다.

이러한 점은 해명을 거듭하면서 곧바로 도덕성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 후보자는 최근 제기된 의혹 가운데 부인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전 자신의 개인 짐을 헌재에 두고 나오면서 “어차피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짐을 두고 온 것은 맞지만, 도서관 측에서 권유했고 돌아온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도서관 측 역시 헌재 연구관처럼 “이 후보자 외에 짐을 맡긴 재판관도 없고, 다른 재판관에게 그런 제안을 한 적도 없다”고 정면 반박했다. 헌법연구관들도 “이 후보자가 도서과장에게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 후보자가 개인 비리 관련한 큰 의혹은 빗겨날지라도 신임을 받지 못하는 도덕적 결여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뿐만 아니라 헌재 전체에 부정적 이미지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이미 헌재는 이 후보자의 논란으로 말미암아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오죽하면 헌재 사상 유례없는 의혹이라는 말이 헌재 내부에서도 흘러나올까.

이러는 와중에 소임을 다해온 이강국 소장은 인사청문회가 열린 지난 21일 퇴임했다. 민주당이 이 후보자의 후보자 철회를 놓고 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헌재 소장 임명이 늦어져 공백으로 인한 헌재 기능 약화 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그와 동시에 이 후보는 ‘국회 동의’라는 험난한 산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헌재소장에 대한 인사동의는 전자투표가 아닌 종이찬반투표를 통해 진행된다. 그동안 관례에 따르면 투표 진행 시간은 최소한 1시간30분으로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날치기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고 반면 민주당은 국회 부동의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놓여있다. 민주당 측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후보 철회를 할 수 있도록 임명권자를 박근혜 당선인이 아닌 이명박 대통령으로 확정해 박 당선인에게 퇴로를 터준다는 카드를 매만지고 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 조차 이 후보자의 자격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리라 보고 있으며 동시에 민주당은 이 후보자의 동의를 놓고 정면충돌까지 각오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이름 석자 이동흡,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 위에 올라탄 이 후보자는 이제 ‘국회 동의’라는 산을 넘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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