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관계 청산, 동서 화합 국민대토론회

김영삼(YS)·김대중(DJ) 두 전직 대통령의 공과를 재조명해 지역 및 민족 통합의 발판으로 삼자는 목소리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여야 의원들이 두 전직 대통령의 화해를 위한 '중재'에 나섰다. 민주화운동 30년 동지이자 정치적 경쟁자인 두 전대통령이 이끈 두 정권이 갈등관계를 청산하고 동서 화합을 이루자는 취지로 민족대통합을 위한 국회의원연구모임(회장 정의화)은 1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민족통합, 국민통합, 지역통합을 위한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했다. ◆ YS- 직관과 단행의 지도자, DJ- 논리와 축적의 지도자" 이날 토론회는 여야 의원연구모임에서 주최를 했지만, 이 모임의 정회원 12명 중 10명이 한나라당 의원이고 회장도 한나라당내 지역화합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의화 의원이라, 한나라당의 'DJ 끌어안기', 이른바 서진정책의 일환으로 여겨지고 있다. 타당 소속으론 김영춘 우리당 의원과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이밖에도 유인태 우리당 의원과, 김형오 한나라당 전사무총장 등 양김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정치인들도 토론회에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 이날 행사에 토론자로 참석한 민주당 이낙연 원내대표는 YS와 DJ간의 숨겨진 일화를 소개하며 두 사람의 화해를 통한 동서화합과 국민통합 노력을 촉구했다. 이 원내대표가 이날 소개한 일화는 YS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때 당시 국민회의 총재였던 DJ로부터 들은 얘기다. 때는 87년 6월항쟁의 발단이 됐던 '호헌조치'가 발표됐던 4월. 당시 YS와 DJ가 만나 대책을 논의하던 중 DJ가 YS에게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백만인 서명운동을 하자"고 제안하자 'YS다운' 반응이 나왔다. YS의 반응에 DJ는 "우리나라 인구가 몇 명인데 천만명의 서명을 받는단 말이냐"고 '논리'를 들이대며 의문을 나타냈고 YS는 "누가 세어 보느냐"고 반격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양김은 '직선제 개헌 1천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이는 6월항쟁으로까지 이어져 '직선제 개헌'(6·29 선언)을 얻어냈다. 이 원내대표는 "물론 당시 서명운동에 참여한 국민이 몇 명이었는지는 아무도 세어보지 않았다"고 첨언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 일화에 대해 "기자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선생께서 보시기에 YS 대통령이 선생님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느냐'고 묻자 김 전 대통령이 '있다'며 말해준 비화"라고 소개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그분의 그런 장점은 내가 도저히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씀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스타일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일화다. 이 원내대표는 "YS가 직관과 단행의 지도자라면 DJ는 논리와 축적의 지도자"라며 "YS와 DJ는 같은 시기에 같은 투쟁을 하면서 성장했고 그래서 한계도 비슷하고 상대가 갖지 않은 특별한 장점도 지녔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 원내대표는 YS의 공으로는 '하나회' 해체를 통한 군인의 정치개입 차단과 금융실명제 실시를, DJ의 공으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위기 극복과 남북정상회담 등을 꼽았다. ◆ 어긋한 YS-DJ YS와 DJ는 5공 시절 독재정권 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위해 협력해왔었다. 그러나 87년 13대 대선 당시 후보단일화를 놓고 의견이 맞서 결별한 뒤부터는 협력이 아닌 경쟁관계로 맞붙게 되었다. 특히 지난 98년 DJ 집권 이후 YS ‘문민정부’ 비리청산이 시작되면서 YS 차남인 현철씨 등 YS 측근들이 재판대에 서는 등 두 사람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아직까지 감정의 앙금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두 사람은 지난 98년 7월31일 청와대 만찬에서 만난 이후 지난 2003년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장에서와 올해 2월25일 서울에서 있은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출판기념회에서 만남을 가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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