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는 정부 간섭 덕에 '상생협의'는 산으로…소비자 혼란가중

지식경제위원회(이하 지경위)는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 등 대규모 점포의 영업시간 제한 강화 및 의무 휴업일수 증가 등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 개정안’을 지난 16일에 의결했다. 이에 따라 중소상인과 대형마트간의 갑론을박이 뜨거운 가운데, 상생은커녕 자기 배 불리기에 급급한 업계 간 다툼의 불똥이 일반 소비자에게 튀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대형마트 아프냐? 납품업체도 아프다

지경위 상임위를 통과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국회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달 말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자정에서 오전 8시까지로 규정되어 있는 현행 영업 금지시간을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로 변경해 총 4시간을 늘리고, 의무휴업일도 현행 2일 이내에서 3일 이내로 확대시킨다는 내용이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기초자치단체의 제량에 따라 조례로 휴업일수를 정하게 돼 기초자치단체간의 눈치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개정안 통과에 대해 대형유통업체 관계자들은 “다 된 밥에 재 뿌린 격”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대형유통업계 측은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열어 중소상인들과 협의를 시작하며 상생의 길에 대해 자율적인 출점 자제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단 하루 만에 이를 갈아엎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어 이미 유통산업발전협의회에서 중소도시 출점 자제, 자율 휴무, 상생협력 기금 마련 등에 대한 자율적인 협의가 이뤄진 점을 지목하며 개정법법안이 통과되면 이 같은 상생 시도를 중단하고 법적 투쟁을 시작할 것이라는 의견도 내비쳤다.

대형마트 업계는 “이번 유통법 추가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자율규제 선언이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고 법적 다툼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유통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업체들 역시 도미노처럼 피해가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 또한 제기됐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회장 이승한)는 유통법 시행 시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업체들이 연간 5조3370억원의 매출 손실을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지난 20일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 허창수)와 공동으로 대형마트 7개사, 기업형슈퍼마켓(SSM) 5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러한 피해규모가 나왔다”고 밝혔다.

한국체인스토어 협회는 유통법 개정안대로 매월 3일을 의무휴업하고 매일 오후 10시에서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하지 않을 경우 대형유통업체는 연간 23%인 8조1,000억원의 매출이 감소하고 농어민들도 판매기회 손실 등으로 연간 1조6,545억원의 피해를 볼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어 중소 납품협력업체가 3조1,329억원, 대형마트내에 입점한 임대 상인들은 5,496억원의 매출손실을 감수하게 된다고 전했다.

특히 이러한 피해가 지역 생계형 근로자의 일자리 감소로 인한 소비위축 등의 사회 전반적인 부작용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중소상인, 승자는 말이 없다

전국상인연합회(회장 진병호)는 19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유통산업발전협의회에 더이상 참여하지 않겠다”며 “대형 유통업체들의 자율규제 내용은 상생의 의미가 없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항의 수위를 높여왔었다. 하지만 이번 유통법의 개정안에 대해서는 유유히 침묵하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배부른 승자의 여유로운 모습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국상인연합회는 국회 지경위를 통과한 유통법 개정안에 대해서 노골적인 지지를 선언했다. 연합회측은 “그동안 우리가 지적한 부분을 보완 강화한 규제 내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올해 안으로 본회의를 통과해 빠른 시일 내에 시행될 수 있도록 국회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전했다.

한편 연합회측은 의무휴업 일수나 요일을 지자체 조례로 정하도록 한 것은, 현재 대형마트와 지자체가 행정소송을 거듭하는 사태를 되풀이 하게 만드는 등 불필요한 분쟁의 여지를 남겨놓는 것에대해 한 목소리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전국중소상인연합회 울산지부 고남순 사무국장은 “정부가 일괄적으로 휴무일을 지정해 상위법에 명시하고, 대형마트 허가제와 중소기업적합업종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전국적인 혼란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허가제를 의무제로 변경하기를 의안했다.

이어 울산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 관계자는 “영업시간 제한 확대 등 일부 긍정적인 진전은 있었지만 의무휴업 확대가 미흡하며, 기존 출점 강행 점포에 대한 대책도 없어 추가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라며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까지 대형마트가 의무휴무일을 위반할 경우 당일 매출 모두를 과태료로 지불하는 ‘과태료 징벌제’를 포함시키는 등 법 개정 강화에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전국상인연합회가 유통산업발전협의회에 사실상 불참 의사를 내비친데다 이번주 내로 유통법 개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될 경우 유통산업발전협의회는 의미없는 기관으로 전락할 분석했다. 이에따라 전국상인연합회는 협의보다 강력한 법적규제를 마련하기 위해 사활을 다 할것으로 풀이된다.

장볼 곳 증발로 애꿎은 직장인들만 피해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형마트는 오후 10시부터 자정까지 영업을 못하고, 그리고 가장 많은 고객들이 찾는 일요일 중 3회를 쉬어야 하기 때문에 고객들의 불편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송파에 사는 김모씨(32)는 ‘유통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맞벌이 2년차 부부로 서로 잦은 야근에 쫓기는 터라 밤 10시쯤 퇴근해 집 앞의 대형마트에 들러 장을 보는 게 김 씨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밤늦은 시간이면 주변 가게들은 다 문을 닫는데 대형마트는 11시 이상까지 영업을 해서 간편하게 장을 봐 왔다”며 “대기업들의 골목상권을 침해에 대해 정부가 검열하는 것은 찬성하나 무턱대고 영업시간을 줄이는 건 그 시간대를 주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고객들의 편의를 생각하지 않은 결정인 거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대형마트는 실제로 영업 종료 시간이 다가와도 물건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영업 종료를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고객들은 하나라도 더 사려고 뛰어 다닌다”며 “야간 장보기 광경을 흔히 접할 수 있는 건 올빼미족이 많은 한국 문화의 전반적인 특성인 만큼 자정까지의 영업은 꼭 필요하다”고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어 “실제로 마트 영업이 종료되기 직전의 시간대는 손님이 몰리는 피크타임이다”라며 영업시간 단축으로 올 고객들의 항의를 우려했다. 게다가 대형마트 이용자의 40%로 예상되는 맞벌이부부가 밤 10시 이후 마트를 이용할 수 없게 되면 소비자의 불편과 피해 규모가 매우 큰 것은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개정안이 통과 되더라도 대형마트를 이용하지 못하는 고객들의 발길이 과연 골목상권으로 향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업계 전문가들은 “대형마트를 주로 찾는 고객들이 물품의 다양성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듯이 소품종을 판매하는 골목상권보다는 인터넷쇼핑을 대체로 찾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대형마트의 휴일 강제휴무 등이 실행되면서 인터넷쇼핑몰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한 것으로 나타나 이를 뒷바침 해준다. 지난 9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유통업 매출 동향을 보면 연초부터 8월까지 대형마트의 매출은 작년과 비교해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홈쇼핑은 10%, 온라인쇼핑몰은 9.3% 증가했다. 

홈플러스 VS 중소상인 화해모드

홈플러스에 따르면 최근 합정점, 남현점, 세교점 등이 유통산업발전협의회 출점 자제 협의를 어긴 게 아니냐는 지적을 수용해 신규 출점 점포들은 유통산업발전협의회 합의를 거쳐 출점할 계획이다.

마포구 합정점은 2007년 건축허가를 받고 2011년 1월 대규모점포개설등록을 마쳤지만 주변 중소상인들이 석 달째 천막농성을 벌이는 등 강도높은 반대에 부딪혀 오픈이 잠정 보류되고 있는 상태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합정점 개점이 늦어지면서 손실이 계속 불어나고 있는 사실을 호소하고 정부 당국과 상인들의 적극적인 문제 해결 노력을 촉구하는 취지에서 공문을 보냈다”면서 “상인들과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관악구 남현점은 2008년 6월 부지를 매입하고 지자체가 등록을 받아주는 조건으로 대규모점포개설등록신청을 했다. 지하 5층~지상 3층 규모로 현재 공사가 30% 완성된 상태다. 남현점의 개발 시행사인 STS가 지난 16일 1,360억 원 규모의 자산을 코람코자산운용 선매각한다고 발표해 지속적인 신규출점을 위한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자산을 매각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일었었다. 

오산시 세교점은 2010년 10월 부지를 매입 후 2011년 10월 건축허가를 받아 현재 80% 가량 공사를 마쳤다. 이 지역은 신도시 택지개발지구로서 지난 15일 상생합의 발표문의 출점자제 예외지역으로 인정되면서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전국에 100여 점포를 거느린 홈플러스는 글로벌 기업인 영국계 유통회사 테스코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 내 경영권은 이승한 회장에게 위임해 놓은 상태다. 지점을 늘리며 골목상권과 잦은 갈등을 일으키자 이승한 회장의 리더십이 한계에 다다른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기도 했다. 홈플러스가 중소 상인들과의 진정성 있는 자발적인 상생합의로 유통산업발전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