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형 대통령제 둘러싼 제로섬 싸움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대선을 60여일 앞둔 지난 22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치러진 분권형 개헌추진 국민 연합 창립대회에 이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달 25일, 헌법 개정 추진을 위한 조직을 출범시키면서 발기인대회의 강연자로 나서 여야 대선후보를 향해 대통령의 권력 분산을 위한 개헌의 공약화를 촉구하고 나선지 한 달만의 일이다.

 

날개 단 이재오

완전국민경선제 도입 무산으로 당 대선후보 경선에 불참했던 이 의원은 그 동안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에 모든 정치력을 모으겠다”며 독자노선을 취할 뜻을 비쳐왔다.

지난 8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분권형 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개헌론에 불을 당긴 이 의원은 9월 14일에는 광주·전남 유권자 연합에 모습을 드러내 분권형 대통령제의 필요성을 피력했으며 15일에는 이군현 의원, 최병국, 안경률, 백성운, 이춘식, 강승규, 진수희, 안형환, 정미경, 김효재 전 의원 등 친이계 및 친이재오계 전·현직 의원이 함께 산행을 하며 개헌 주자로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왔다.

이 의원은 이날 창립대회에서 “개헌이 나라 발전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며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각 대선주자들에게 제안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분권형 개헌추진 국민 연합의 개헌 요지는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이며, 대통령은 외교 국방 통일에 전념하고, 총리는 내치(內治)를 맡으며, 총리 인선은 국민의 대의 기구인 국회에서 뽑도록 하는 제도로 대선 후보들이 취임 1년 안에 실시 공약하라는, 분명히 헌법에 명시하자는데 있다.

25일 정식 출범한 분권형 개헌 추진 국민연합(이하 국민연합)은 발기인이 10만 명이 넘었으며 전국적으로 분권형 개헌에 대한 300만 서명운동을 벌여 이달 말까지 청와대와 국회에 청원을 하고 그 과정에서 각 대선 후보들에게도 청원서를 전달하겠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이때 대선판도가 바뀔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행사 측에서 제공한 자료에는 ‘어느 후보가 당대의 최고의 고수 이재오와 개헌 연대를 할 것인가!?’라는 한 투고자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며 이 의원의 행보를 적 날 하게 구체화했으며 여야 정치원로 17인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촉구한 직후 이뤄진 이 날 창립행사에서 이 의원이 직접 대선 후보들과 접촉할 뜻을 전함으로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여야 정치원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촉구

창립대회 닷새전인 지난 17일에 여야를 망라하는 정계원로 17명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선후보들에게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촉구하며 대선쟁점화에 나섰다.

김원기, 김형오, 박관용, 임채정 전 국회의장을 비롯 고건, 이수성, 이한동,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권노갑, 김덕룡, 김상현, 목요상, 이기택, 이부영, 이우재, 이종찬, 정대철 등 당 대표급 정치인들이 대거 참여한 본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차기 대통령 취임 1년 안에 개헌을 완료하고 19대 대선은 2016년 총선과 동시에 실시하며,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차기 대통령의 중임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내용을 발표하며 여야전당과 각 대선후보가 이를 수용해 차기 대통령 핵심과제 혹은 의제로 다룰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들 정계원로가 직접적으로 각 대선후보를 언급한 것과는 별개로 각 후보측은 이미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구조에 대한 입장차가 정리되어 있는 상황이라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8월 SBS 시사토론에 출연해 “부패도 더 심하고 정책의 연속성이라든가 여러 가지를 생각할 때 4년 중임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며 유보한 반면 그 동안 분권형 대통령제에 가장 적극적인 발언을 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임기 초반부터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다소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의 권력 분산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이지만, 개헌보다는 대통령의 권력을 국회에 이양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 정책에 반영해왔다.

이처럼 대선 후보들의 입장이 조심스러운 까닭은 개헌 논의가 파급력이 큰 정치 사안일 뿐만 아니라 이해득실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대통령 권력 집중이 꼭 권력구조를 바꿔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국민들의 혼란을 야기 시킬 수 있다며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러한 후보들의 입장 차이와 학계 일각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개헌론이 대선정국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 이재오 의원이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정계원로들의 각 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제안을 했음에도 현시점에서 뚜렷한 개헌 의지를 보이지 않음으로 개헌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이 의원에게 흘러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300만명 서명? 300만표?

창립대회에 참석한 한 시민은 “국민연합이 추진 중인 개헌 지지서명 300만 명은 실제로 대선판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300만 표를 뜻한다”며 자신은 이 의원이 대선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물론 그 동안 개혁의 기수로 일관된 행보를 보인 이 의원은 표면적으로 진정성을 갖추고 있다. 이 날 창립대회도 친이재오계로 분류되는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을 제외하고는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되었다. 발기인 대회 때 정몽준 의원을 비롯한 다수의 의원들이 참석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는 주변의 정치적 해석을 일축하고 국민여론에 힘을 싣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의원이 직접 300만 서명을 대선 후보에게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300만 명 지지서명이 300만 표로 이 의원의 영향력에 직결될 것은 분명하다.

 

이재오는 어디로 가나?

그렇다면 이 의원은 누구에게로 갈까?

일단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날 연설에서 유신시절 분권형 대통령제가 시행됐었더라면 운을 뗐을 만큼 이 의원과 박근혜 후보는 골이 깊다.

장수장학회 관련 기자 회견 직후 이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창립대회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후보를 도와주실 겁니까?"란 연합뉴스 기자의 질문에는 "정권재창출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라의 미래"라며 박근혜 후보와 거리를 뒀다.

일각에서는 만약 이재오가 박근혜와 함께 하려 했다면 당 차원에서 진행했을 것이라며 그 동안 둘 사이의 관계를 비추어봤을 때 외부에서 거사를 진행하는 것을 들어 박근혜와의 연대는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국정 지지율 낮아 여당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하는 박근혜 후보로서는 달갑지 않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개헌 운동이 친이계와 친이재오계가 주축이 된 만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도 다소 거리가 있다. 개헌 의지에 대해서는 이 의원과 가장 근접한 후보로 꼽히지만 최근 민주당 박지원 원내 대표가 “기회가 되면 공론화시켜 후보가 공약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진행된다면 당 차원에서 진행할 것은 밝힌 바 있어 둘의 연대가 성사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재오와 안철수

그렇다면 일부 소장파에 의해 이재오, 안철수 지원설 의혹이 제기 된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어떨까? 이 의원 쪽에서는 답변할 가치도 없다며 일축한 상태이지만 이 의원 자신이 대선에 나오지 않는 한 세 후보 중에 하나와 연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창립대회가 열린 같은 시각 안철수는 자신의 캠프에서 진행된 노동계 지지선언식에 참석했으며 아직까지는 둘 사이의 뚜렷한 연관성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최근 민주노총 인사 34인을 비롯 손호창 민주당 의원, 김성식 전 새누리당 의원이 합류하는 등 안철수 캠프가 정권교체 및 정치개혁의 진원지로서 열려있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아직까지는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있는 안철수 후보지만 연대가 성사될 경우 여야는 물론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안철수 식 정치개혁이라는 상징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안 단일화와 함께 막바지 대선판도에 굵직한 이슈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파급력이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 후보 쪽이나 문재인 후보 쪽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이며 말 그대로 여야정당을 향한 이재오의 난이 되는 것이다.

대선판을 향한 이재오의 행보가 어떤 파란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조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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