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3천억원대 피해… ‘단속 및 처벌 강화 절실’

최근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이나 스팸문자가 갈수록 수법이 진화되고 있어 이에 따른 피해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보이스피싱’이란 전화를 통해 불법으로 개인 정보를 유출해내 범죄에 활용하는 범죄 행위다. 중국 등에서 걸려온 국제전화를 국내 금융기관 번호로 속여 송금을 유도하든지 납치나 유괴 등 범죄에 사용해 주의가 요망된다.

공인인증서 재발급 이용한 금융사기 잇따라

지난 9월 13일 수원남부경찰서는 주로 노인을 상대로 보이스피싱 사기를 벌인 혐의로 조선족 박모(20) 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씨는 지난 13일 오전 8시 59분 경 수원 인계동 현금인출기에서 보이스피싱에 속아 계좌 이체한 허모(56) 씨의 돈 490만 원 가운데 100만 원을 인출해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앞서 박 씨는 지난 9월 12일에도 다른 피해자가 보낸 2,000만 원을 인출해 중국으로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박 씨의 집에서 타인 명의로 된 카드 16장과 통장 50여점을 압수했다. 경찰은 박 씨가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인출책 역할을 맡아온 것으로 보고 여죄와 공범 여부를 캐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은행을 사칭하는 내용의 스팸 문자를 무차별로 보내 200여 명으로부터 10억여원을 받아 가로챈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경찰에 붙잡혀 세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난 9월 13일 서울 양천경찰서는 은행 사칭 피싱사이트를 이용해 200여 명으로부터 10억여원을 받아 중국으로 보내고 수수료를 챙긴 혐의(사기)로 퀵서비스업체 대표 임모(57) 씨 등 두 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임 씨 등은 지난 9월 6일 은행을 사칭해 “보안승급이 필요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이 문자에 속은 조모(61) 씨 등이 대포통장(타인명의 통장)에 입금한 1억여원을 인출해 중국에 송금했다. 일당은 이렇게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총 129차례에 걸쳐 10억여원을 가로채 중국에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송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임 씨 등은 주로 오전 이른 시간에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돈을 송금했다. 또한 이들 일당은 송금을 할 때 수수료 명목으로 5%씩 모두 5,000여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경찰은 “새벽 시간이라 하더라도 ‘공인인증서가 발급됐다’는 문자를 받으면 당장 해당 은행 콜센터에 지급 정지 요청을 해야 치명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아울러 최근에는 ‘KB국민은행’을 사칭한 인터넷 보이스피싱 및 피싱사이트가 성행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지난 9월 17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최근 보이스 피싱 및 피싱 관련 사이트를 통해 고객정보를 불법으로 얻은 뒤 인터넷뱅킹을 통해 고객명의의 공인인증서를 재발급 받아 예금을 인출해 가는 금융사기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이 신종금융사기는 지난주부터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KB국민은행입니다. 고객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으니 보안승급바랍니다”라는 문자와 함께 피싱사이트 주소를 함께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메시지의 발신자 번호가 KB국민은행 대표전화인 1588-9999와 비슷한 1599-9999로 되어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처럼 신종 보이스피싱 및 피싱사이트가 기승을 부리자 KB국민은행은 오는 9월 25일부터 전자금융사기 예방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KB국민은행은 9월 25일부터 시범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 뒤 성과가 있을 경우 전면 시행할 계획이다. KB국민은행 측은 우선 신청자를 대상으로 서비스에 들어갈 방침이다.

이번에 서비스를 실시할 대상은 공인인증서 (재)발급 및 타행(기관) 발급 공인인증서 등록 및 인터넷뱅킹 등을 통한 300만 원 이상(1일 누적기준) 이체 거래 분야다. 이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지정된 PC에서만 거래가 가능하며 미지정된 PC는 조회만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와 아울러 고객이 신청한 채널(인터넷 등)과 다른 채널(전화 등)을 통해 금융기관이 본인여부를 확인하는 방법과 본인인증번호(1회용 비밀번호) 등으로만 거래가 가능하도록 해 피해를 막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자세한 사항은 KB국민은행 고객상담센터(1588-9999)로 문의하면 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현재 이런 사례가 많아 문의하는 전화가 쇄도 하고 있으며 대개 발신번호를 조작해서 보내기 때문에 고객들이 많이 혼동한다”면서 “국민은행은 보안승급을 하라는 것을 절대 보내지 않고 있으며 주민등록번호ㆍ성명·ㆍ주소ㆍ비밀번호ㆍ보안카드번호 등을 알려달라고 하지도 않는다”며 “속지 않을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국민은행 인터넷 사이트 주소는 www.kbstar.com, www.kbcard.com (카드)만 사용한다”며 “나머지는 전부 가짜 사이트이니 피해를 입으신 분들은 바로 신고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 사칭하는 보이스피싱 가장 많아

이렇게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가 하루가 다르게 기승을 부리자 정부 차원의 대책에 시동이 걸렸다. 지난 9월 16일 국민권익위원회는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110 정부민원안내 콜센터에 접수된 보이스피싱 상담 분석 결과를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보이스피싱이 사칭하는 기관으로는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상담 내역을 보면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을 사칭한 경우가 전체의 25.5%로 가장 많았으며 ▲은행 사칭 16.1% ▲공공기관 6.7% ▲우체국·택배 5.2% ▲자녀 납치 5.0% 순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상담 건수와 비교해보면 각각 수사기관 사칭은 19.7%에서 25.5%로, 공공기관 사칭은 1.7%에서 6.7%로 늘었다. 하지만 은행을 사칭하는 경우는 16.1%에서 9.2%로, 우체국·택배는 8.8%에서 5.2%로, 자녀납치는 9.9%에서 5.0%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최근 3개월 동안 보이스피싱에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발신번호로는 ▲서울지방검찰청(02-6953-6844) ▲경찰청 금융범죄과(050-7788-5003) ▲대검찰청(02-3484-9688) ▲법무부(02-6304-0058) 등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수사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의 경우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파악하고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아울러 실제 은행 인터넷 사이트와 흡사한 가짜 피싱 사이트로 유도해 개인정보를 빼내거나 국민연금공단 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사칭해 환급금을 돌려준다고 속인 다음 개인정보를 빼내는 극히 악질적인 경우도 있었다.

한편 이 기간에 있었던 보이스피싱 상담전화는 총 1만2,27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주어 8% 줄었다. 피해액도 24억5,000만 원에서 13억 원으로 약 47% 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승을 부리며 식을 줄 모르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경찰청은 지난 1월부터 특별단속을 벌여오고 있으며 지난 8월말까지 보이스피싱 사범 8,645명을 검거했다. 특히 최근 지능화된 보이스피싱의 사례로는 전화보다는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개인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하는 방식이 선호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 보이스피실 범죄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자료가 또 공개되기도 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보이스피싱 피해가 무려 3,000억 원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강기윤 의원(새누리당)에게 경찰청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08~2011년)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2만8,873건이었으며, 피해액은 3,070억 원으로 나타나 산술적으로 건당 평균 1,000만 원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도 7월까지 4,207건의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하여 피해규모만 자그마치 46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검거된 피의자를 국적별로 살펴보면, 94.5%인 4만3773명이 한국 국적이었으며 ▲중국 2,100명 ▲대만 430명 등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강기윤 의원은 “보이스피싱 수법이 날로 다양해지고 지능화되고 있는 데다,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 가족관계 등 개인 신상정보를 빼내어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가 많아 쉽게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경찰 당국의 강력한 단속과 처벌 강화를 주문했다.

지난 9월 18일에는 보이스피싱 방지를 위한 통신사업자의 조치의무, 이용자보호업무 평가제도 도입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정부입법으로 국회에 제출했지만 18대 국회 임기종료로 폐기된 법률안과 동일한 내용의 법률안이다. 여기에는 보이스피싱 방지, 이용자보호업무 평가제도 도입 등 민생안정과 관련한 중요 사항을 포함하고 있어 19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재입법절차를 밟아왔다.

이번 개정안은 이용자보호 강화를 위한 사항뿐 아니라 기간통신사업 허가신청 절차 개선, 전기통신설비 공동구축 활성화 및 현행법 운용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개선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통신사업자가 해외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대해 “국제전화입니다” 등의 문구를 발신창에 표시하거나 음성으로 안내하도록 했다. 또한 국제전화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전화번호로 표시되거나 공공기관·금융기관 등을 사칭하는 통화는 차단하도록 했다.

현재까지는 통신회사 약관에 근거해 유선전화나 이동전화 화면에 ‘001’ 등의 식별번호를 보여주어 이 전화가 외국에서 걸려왔는지 확인해 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KTㆍSK텔레콤ㆍLG유플러스뿐 아니라 인터넷전화사업자도 식별번호 서비스를 해야 한다. 또한 식별번호 문자서비스 외에도 음성으로 알려주는 것도 추진된다.

통신정책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통신사 약관에만 머물러 있었지만 앞으로는 통신사가 해야 할 의무로 규정되었다”며 “보이스피싱 방지에 소홀할 경우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되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 법안으로 인해 통신사를 대상으로 한 이용자보호업무 평가제도도 도입된다. 이에 따라 빠르면 내년부터는 어떤 통신사가 민원 서비스를 가장 잘 실시하는지 알 수 있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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