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여, 꿈꾸는 시간을 갖자”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보여주기식 기록, 이른바 ‘스펙’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토익 900점에 학점평균 4.0 이상 그리고 어학연수와 인턴경험 등은 취업여부를 가르는 절취선이 됐다. 최근 불고 있는 ‘스토리’ 열풍도 스펙 쌓기의 연장선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남들이 다하는 것들을 다해보고 짜 맞추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
사회가 원하는 것에 나를 맞춰가다 보니 사회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때 쯤 많은 젊은이들은 허무함을 느끼고 만다. 진정한 꿈을 찾기 위해 혹은 스펙을 마저 쌓기 위해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동분서주하다 그대로 졸업할 수 없어 등 떠밀리듯이 휴학을 택하기도 한다.
이렇게 불확실한 미래와 일률적인 사회기준에 숨막혀하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꿈꾸는 시간을 갖자”고 주장하는 청년들이 있다. ㈜한국갭이어의 김남호, 박진수, 안시준, 이성원씨다. 사회적기업진흥원 주관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의 창업팀으로 선정되는 등 정부산하 기관에서도 비전을 인정받은 ‘핫’한 그들! ㈜한국갭이어는 젊은이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설정과 고민을 돕는 프로그램 사업을 진행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본지에서는 ㈜한국갭이어의 안시준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

갭이어, 잠시 학업중단하고 다양한 체험하는 시간
“젊음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돕는 사회적기업”

갭이어(Gap Year)는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창조’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여행, 봉사, 진로탐색, 인턴, 창업 등의 활동을 체험하고 향후 자신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라 거듭 호기심을 보이자 안 대표는 “많은 분들이 그러신다”며 웃었다.

안 대표도 세계무전여행을 하기 전까지는 ‘갭이어’에 대해 잘 몰랐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한국갭이어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든 건, 여행 중 만난 한국 한생들과 대화를 나누며 결심한 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행 중 만났던 한국 학생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안쓰러워요. 제가 만난 친구들 중에는 이민에 대해 고려하는 친구들도 꽤 많았어요. 현실에 대해 다들 불안해하더라고요. 여행을 마치고 나면 한국의 젊은이들이 꿈꿀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안 대표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지난해 봉사활동, 워킹홀리데이, 농업·국제협력 등 각 분야에서 활약 중인 네 명의 청년들과 뜻을 함께 했다. 독특한 이력, 소위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은 물론 ‘스토리’까지 갖춘 인물들로, 프로필만 봤을 때는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하는 호기심이 컸다.

“1월 18일이 저희 ㈜한국갭이어의 설립일이예요. 저희는 땅바닥에서 뜻을 모았어요. 그리고 미술학원 창고를 얻었는데, 청소를 해도 계속 먼지투성이고 깨끗해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도 아무것도 없었던 저희한테 그 공간은 정말 큰 자산이었죠. 아이디어를 모으고 기획하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네 명의 청년들은 사무실은 물론 집에서까지 매순간 함께하며 두 달이라는 시간을 치열하게 보냈다. 그리고 비전을 인정받는 기회가 왔다. 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관하고 사회복지법인 열매나눔재단이 지원하는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참여하는 것. ㈜한국갭이어는 40시간의 교육, 면접심사, 사업계획서 심사 등을 통해 14개의 창업팀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안 대표에 따르면 ㈜한국갭이어는 총 3~4단계로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다. 구체적인 건 “저희가 나중에 차근차근 진행해야 되는 거라 지금은 알려드릴 수가 없어요. 죄송해요”라고 말하는 안 대표. 그러면서 1단계 활동은 이미 실현 중이라고 소개했다. 제주 올레길 걷기 프로그램 ‘걷고, 생각하고, 꿈꿔라!’ 캠프를 통해 문화를 소개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이어 ‘갭이어’라는 제도의 필요성 여부, 시행 가능성까지 여러 질문에 대해서 연달아 하니 안 대표는 “보이지 않는 거라 추상적으로 얘기가 돼서 안타까워요”라고 말했다.

“토익이나 자격증 같은 건 보이는 거고 갭이어는 보이지 않는 거죠. 그렇지만 갭이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많이들 아시잖아요. 제가 경험을 통해 ‘좋다’고 느껴서 그렇게 믿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저 뿐만 아니라 다른 경험자들도 좋다고 하고 있고, 문헌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지금 우리나라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여행이나 휴가를 가는 것은 사치라고들 생각하고 있는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진로를 설정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해요. 젊은이들이 꿈 없이 획일적으로 대기업만 지향하는 것은 결국 국가에게도 손해예요.”

또 안 대표는 선진국들의 예를 들며 우리나라에서도 ‘갭이어’가 널리 퍼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특히 아일랜드의 경우 트랜지션 이어(Transition Year, 갭이어와 같은 개념)를 도입하는 것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3곳에서만 이를 받아들였지만, 3년 만에 적어도 안 대표가 가본 곳에서는 다 시행하게 됐다고.

“결국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도입이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전부 도입해야 된다는 얘기는 당연히 아닙니다. 100만명 중에는 분명히 ‘갭이어’를 하고 싶은 5만명이 있어요. 이들이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일 뿐이예요. 그리고 갭이어는 자생적으로 생기고 있다고 봐요. 지금까지 스펙열풍, 스토리열풍 등 한 시대에서 히트치는 게 있었잖아요. 갭이어도 언젠가는 그러지 않을까요?”

이어 안 대표는 ‘휴학, 취업준비와 다를 게 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꿈’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힌 뒤 정부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꿈꾸는 시간을 갖는데 정부의 지원이 하나도 없는 건 안타깝다는 것. 그는 청와대 G20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대학교와 연계해 학점을 인정받는 정책’을 제안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젊은이들이 꿈꿀 때 정부가 defense(방어) 해줄 수 있을 정도만 지원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며 수익과 관련된 질문을 조심스레 던졌다. 사회적 기업 특성 상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수반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안 대표로부터 단호하고도 경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 저희 직원들이 강연을 하면서 수익을 충원하고 있어요. 그리고 투자를 하고 그런 식이죠. 세상에 참 좋은 분들 많더라구요. 많이들 걱정해주셔서 강연 자리 소개해주시던데요? 또 수익과 본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사회적 기업의 딜레마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현재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이 서로의 제어장치이기도 하고, 저희는 서로 ‘믿음’도 있는 만큼, 잘해나갈 자신도 있어요.”

박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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