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지난해 내부거래율 또 증가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도입 등 정부의 ‘대기업 옥죄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현대차그룹 일부 계열사들의 내부거래율은 여전히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규제는 상관없다는 듯 한 행보다. 해당 계열사들은 정의선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곳으로 현대차의 ‘일감 몰아주기’ 대표 사례로 지목돼왔다. 이에 일각에서는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정부규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증여세 도입 등 ‘대기업 옥죄기’에도 나 몰라라(?)
정의선 대주주인 계열사들 내부거래율 계속 증가
“경영권 승계 위한 자금 마련 차원?” 비판 여론
현대글로비스 상장 등 정의선 막대한 차익 챙겨

지난달 30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제재를 강화 하겠다”며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정부의 규제의지를 다시 내비쳤다.

정부규제에도
내부거래율 늘어

지난해부터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며 본격적으로 재계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도입도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부노력 중 하나였다. 이에 업계 안팎에서는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국내 대표 대기업 중 하나이기 때문.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 현대엠코, 현대오토에버, 현대위스코, 이노션 등의 계열사 5곳의 내부거래율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오히려 전년 대비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기까지 했다.

해당 계열사들의 2011년 내부거래율은 △현대글로비스 82.3% (국내기준 총매출액 4조1427억원, 국내 계열사거래 3조4104억원) △현대엠코 59% (1조7356억원, 1조240억원) △현대오토에버 88.9% (6272억원, 5581억원) △현대위스코 78.5% (4441억원, 3488억원) △이노션 56.3% (2915억원, 1640억원)이었다.

반면, 2010년은 △현대글로비스 50% (총매출액 5조8340억원, 계열사거래 2조6818억원) △현대엠코 47.5% (1조2416억원, 5893억원) △현대오토에버 85.4% (5632억원, 4808억원) △현대위스코 70.8% (3829억원, 2710억원) △이노션 47.7% (2879억원, 1374억원)이었다. 지난해 정부규제가 심했던 것과는 무관하게 내부거래율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내부거래율이 증가한 계열사들의 대주주가 정의선 부회장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현대차그룹을 향한 비난은 가중되고 있다. 정 부회장의 후계구도와 관련해 현대차그룹이 ‘일감 몰아주기’라는 꼼수를 버리지 못했다는 지적인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계열사를 빠른 시간 내 안정적으로 성장시키고, 배당수익까지 발생시켜 총수일가의 자금 확보를 돕는 방법으로 꼽힌다.

현대차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율이) 그렇게 나왔으면 그게 사실이지 않겠느냐”고 말한 뒤 ‘앞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줄일 구체적인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줄여나가자는 입장”이라고 대답했다.

현대차 지배구조는

정 부회장은 현대차에서는 부회장으로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엔지비, 현대오토에버 등에서는 등기이사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룹 내 입지를 넓히고 있다. 그룹 계열사 지분 또한 다수 확보했지만, 정작 주력 계열사 지분은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의 차기오너로 자리매김하기에 지분이 미약하다는 점은 정 부회장에게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의 순환출자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차의 최대주주는 현대모비스(20.78%)이고, 그 다음이 정몽구 회장(5.17%)이다. 기아차는 현대자동차가 33.99%, 정의선 부회장이 1.75%를, 현대모비스는 기아자동차가 16.88%, 정몽구 회장이 6.96%, 현대제철이 5.66%, 현대글로비스가 0.67%를 차지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 지분은 6,445주로 현저히 낮고, 현대차의 최대주주 현대모비스의 지분은 전혀 없다. 정 부회장은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보유한 현대제철의 지분도 없는데, 그나마 현대글로비스의 최대주주(31.88%)로 현대모비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또 현재 정 부회장이 보유한 지분은 현대글로비스를 포함해 현대엠코(25.06%), 현대오토에버(20.10%), 현대위스코(57.87%), 이노션(40%) 등으로 그룹 내 지배권 행사와는 거리가 멀다. 즉, 정 부회장에게 현대차그룹을 장악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분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물론, 정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해 현대차그룹의 주력 계열사 지분을 넘겨받을 수도 있다. 기아차와 현대제철이 가지고 있는 현대모비스의 지분 22.54%를 현대글로비스가 매입하면, 정 부회장에게 현대차그룹을 장악할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현재 현대차그룹의 지분구조상 힘들다는 게 업계 지배적인 시각이다. 현대글로비스가 천문학적인 액수를 감당하면서,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챙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현대차그룹 내 정몽구 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정 부회장에게 바로 증여하는 방법과 해비치사회공헌문화재단을 통해 상속세를 절감시켜 증여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정몽구 회장의 지분가치만 수조원에 달해 막대한 증여·상속세가 예상, 사실상 실행가능성이 없다.

현대모비스 지분 ‘절실’

결국 그룹 지배권 행사에 현대모비스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상 정 부회장은 현대모비스의 지분확보를 위해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 부회장이 첫 번째로 해야 될 일은 뭘까. 충분한 자금 확보다. 재계에서는 대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의 가치를 키우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현대차그룹도 동일하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정 부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들은 그간 내부거래율이 높아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아왔다. 2009년부터 계산했을 때, 평균적으로 현대글로비스 60.6%, 현대엠코 57.6%, 현대오토에버 84.7%, 현대위스코 71.6%, 이노션 50%였다. 이는 내부거래율이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법에서 기준으로 한 정상거래율 30%를 훌쩍 넘은 것으로, 정 부회장의 실탄 확보를 위해 그룹 차원의 ‘일감 몰아주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실제 정 부회장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지분승계를 대비한 실탄 또한 두둑하게 챙겨왔던 것으로 보인다. 몇 차례 지분매각을 통해 차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2004년 현대글로비스의 지분 20%를 Whilh. Whilhelmsen ASA에 매각해 850억원, 2005년 본텍의 지분 30%를 지멘스에 매각해 570억원의 수익을 얻은 바 있다. 또한 정 부회장은 상장차익까지 거뒀다. 2006년 현대글로비스가 상장되면서 막대한 수혜를 누린 것.

정 부회장은 2001년 비상장사였던 현대글로비스에 29억9300만원을 투자했다. 한 주당 500원이었던 주식은 5일 현재 205,000원으로 그 가치가 410배 증가했다. 이는 곧 정 부회장이 약 30억을 투자해 2조4507억원을 벌어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의 달인이라 불릴 만한 수익률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 부회장이 얻은 배당금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에만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179억원, 현대엠코 125억원, 이노션 36억원 등의 배당이익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정 부회장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보유자금을 늘려왔다. 그룹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써 향후 정 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의 주력계열사 지분을 사들이는데 재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생은 없나?

한편, 지난 1월 현대차그룹과 삼성, LG, SK 등은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자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정부의 압박이 가해진 뒤 발표한 사항이긴 하지만,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상생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였다. 그러나 몇 달 지나지 않아 2011년 계열사 내부거래율이 전년 대비 증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대차그룹의 이미지는 실추된 상태다.

이처럼 정부의 강력한 압박 속에서도 정 부회장의 실탄을 마련하기 위한 ‘일감 몰아주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도 이런 움직임이 계속 이어질지 여부에 대한 재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정 부회장이 현대차그룹에 입사한지 20년이 돼 가는데도 아직도 그룹 지배권을 공고히 하게 만들 지분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

이와 관련, 재계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이 아직 정정하다고는 하나 현재 만 74세로 고령에 속한다. 정 부회장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인데 현대차그룹은 이를 원활히 하기위한 지배구조가 아직도 정립되지 않았다. 정 부회장이 자금 확보를 위해 더욱 서두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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