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파트너의 혼란에 민주당 ‘딜레마’

통합진보당이 19대 총선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을 둘러싸고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소리 없는 총성이 계속되고 있다. 당권파는 비당권파에서 부실한 진상보고서를 근거로 무책임한 정치공세를 하고 있다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고, 이에 맞서 비당권파는 경선 과정에서 민주주의 기본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돼 경선관리에 심각한 하자가 발생했다며 부정의혹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며 야권연대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민주당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
보수, 도덕성 거론하며 ‘연대 부정적 측면’ 공세 강화
민주 일각 “통합진보당과 관계 재정립해야” 목소리 나와
안철수 지지세력 등과 손잡는 폭넓은 야권연대 주장도

진보당 당권파와 비당권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고, 이정희 공동대표를 축으로 하는 당권파는 진상조사위원회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일방적으로 부실조사의 결과를 발표한 만큼 책임을 져야 하며 보고서에 대한 철저한 재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통합진보 ‘곤혹’

물론 비당권파의 유시민 공동대표 등은 경선 과정에서 직접·비밀선거의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당 선관위가 현장투표소 후보자별 득표수와 온라인선거의 후보자별 지역위원회 득표 현황을 공개하지 않아 신뢰를 떨어트리고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권파의 핵심인 비례대표 2번 이석기 당선자의 거취 문제도 연일 태풍의 눈으로 작용하며 또 다른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상황이 됐다.
통합진보당의 부정 선거 파문이 이처럼 연일 확대되며 심지어 분당 위기론조차 고개를 들며 혼돈을 거듭하자 야권 연대의 큰 축인 민주통합당의 고민도 심각해지고 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 사태가 하루빨리 정상화되기를 기대하고 있고, 반면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 등 보수 진영은 이번 사태의 도덕성 문제를 집중 거론하며 야권연대의 부정적 측면에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민의 정치 혐오가 진보당을 넘어 야권연대, 나아가 전체 정치권으로 확산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에 대해 “그렇게 빨리 수습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한마디로 착잡하고 난감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국민이 바라는 방향으로 수습을 해야 한다”며 “통합진보당이 단일화 대상이고 오직 잘되기만 바라고 있고, 우리 당내에서도 좀 얘기들을 조심하라고 지시를 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야권연대 흠집내기”?

그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통합진보당 분들이 국민의 눈높이를 보고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봐서 지혜롭게 해결했어야 했음에도 상당히 어려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국민은 지난 총선에서 야권 단일화를 통해서 선거를 하고 대선도 그렇게 준비하고 있어서 책임이 민주당에도 있지 않느냐고 해서 곤혹스럽고, 통합진보당이 슬기롭게 빨리 진행해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 위원장은 또 ‘진보당 내 종북세력’과 관련 “색깔론”이라고 일축한 뒤 “우리 당은 거기에 놀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통합진보당 문제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동지, 동료로서 예의"라며 통합민주당이 비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이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고 나서는 것은 진정한 동지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했다.
정 고문은 "동지들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누군가는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뛰어다녀야 한다"며 "진보가 잘못되고 진보적 가치가 그릇된 것이 아니라 과정상 시행착오일 뿐"이라며 통합진보당 문제를 해명했다.
그는 또 "통합진보당 문제로 유권자들이 성급하게 정치 혐오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큰 흐름으로 보아 발전하기 위한 산통"이라고 호소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도 “외부 개입이나 강제력으로 해소해서도, 해소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사태 관망을 밝혔다. 이와 관련 노회찬 진보당 대변인은 “야권연대를 바라지 않는 세력이 흠집을 내려고 한다”며 “제대로 된 진보정당으로 거듭나면 야권연대가 강화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권연대, 정치적 득실 복잡

하지만 부정 경선 파문이 예상외로 커지면서 야권연대에 대한 정치적 득실 계산이 복잡해지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여론 비판이 거세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야권연대를 이루고 있는 동반자이기 때문에 불똥이 튈 수 있으며 함께 동반 추락하는 모습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여기다 주한미군 철수와 종속적 한미동맹 해체 등 통합진보당의 지나치게 진보적인 정책 방향이 부각되고 있는 것도 민주당으로서는 부담이며 총선 당시 야권연대를 성사시키기 위해 정책 합의 과정에서 상당부분 통합진보당 쪽의 의견을 수용한 부분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기도 했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이번 일을 계기로 통합진보당과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이미 도덕적 기반을 상실해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 것이며 연대를 계속하면 중도세력을 끌어안아야 할 대선 전략에 문제가 생긴다는 내용이다. 여기다 당 일각에서는 사안별로 선택적 연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안팎에서는 통합진보당이 현재로선 안고 갈수도 버릴 수도 없는 계륵 같은 존재라면서도 강한 수구 보수세력과 상대하려면 야권연대는 어떤 경우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뚜렷한 해법 없이 사태 추이만을 지켜보고 형국이다.
진보성향의 재야원로들 역시 통합진보당에 대해 강력한 쇄신책을 주문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야권연대는 안철수 지지세력과도 손잡는 폭넓은 연대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진보 원로그룹인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는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해 성명을 내고 “뒤늦게 드러난 당내 경선 과정의 문제점도 그렇지만 이를 처리하는 과정이 드러낸 당내 폐습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원탁회의는 “지금은 진상 규명의 정도가 미흡하다거나 누가 얼마나 억울한가를 따지기 전에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며 “국민들이 하나를 내려놓는 반성을 요구할 때 통합진보당 스스로 둘 셋을 내던지는 희생을 감내하며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어야 한다”고 밝혔다. 원탁회의는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드러난 민주당의 나태하고 안이한 태세가 극복되지 않고서는 수권세력으로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요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야당들이 총선 패배에 대해 원인분석과 대안도 내놓지 못한 채 총선 당시 선거연대의 재생조차 가능할지 의심스럽다는 우려다. 원탁회의는 특히 안철수 지지세력과의 폭넓은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12월 대선에서의 연대는 기존 정당들뿐 아니라 아직 정당 구조에 포섭되지 않은 ‘안철수 지지세력’까지 끌어안는 연대여야 한다”고 제시했다.

진보진영의 위기감

이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대선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보진영 상황이 악화됐음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출범한 원탁회의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 박재승·백승헌 변호사, 이창복 전 의원과 이학영 민주당 당선자(전 YMCA 사무총장) 등 재야원로그룹들과 이해찬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문성근 민주당 대표 권한대행 등도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원탁회의는 총선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간의 야권연대를 막후 조율하는 역할을 했으며 민주당이 친노세력, 시민사회세력 주축의 ‘혁신과 통합’ 등과 손잡고 현 민주통합당을 창당할 때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은 민주당과 진보당의 야권연대에 공세의 폭을 강화하며 분주한 모습이다. 이인제 자유선진당 비상대책위원회는 “민주당은 진보당의 종북 노선의 실체를 알고 연대했는지 밝혀야 한다”며 “알게 됐다면 지금이라도 손을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일 새누리당 대변인도 “민주당은 진보당과 ‘연대는 유지한다’고 했는데, 당권파와 계속 손을 잡겠다는 것인지 입장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김낙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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