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있고, 윗선은 없었다(?)

경찰, 삼성 소속 직원 5명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
선불폰, 렌터카 등을 이용한 조직적 미행 의혹 제기돼
삼성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법원 기각으로 무산
미행 관련 윗선 밝히는데 실패, 검찰 조사에 이목 집중

CJ그룹이 이재현 회장의 미행한 혐의로 삼성 계열사 소속 직원들을 고발한 것과 관련한 경찰 조사가 끝났다. 경찰은 총 5명의 삼성 소속 직원이 선불폰 등을 이용해 이 회장을 미행한 사실을 밝혀냈으나 관심을 모았던 윗선은 밝혀내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이번 사건과 관련한 공은 이제 검찰로 넘어갔다. 재계에서는 일단 직원 5명이 조직적으로 이 회장을 미행했으나 윗선을 없다고 1차 결론이 난 것과 관련해 믿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지난 9일 삼성 계열사 소속 직원들의 이재현 CJ그룹 회장 미행 사건과 관련에 대해 총 5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고 밝혔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 중부경찰서는 특히 삼성물산 감사팀 직원 4명과 삼성전자 감사팀 직원 1명 등 총 5명을 입건했다.

선불폰 사용 왜

경찰에 따르면 삼성물산 감사팀 소속 이모(44)부장은 등 5명은 선불폰을 미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종로 세운상가에서 선불폰을 구입했으며 이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불폰이란 주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휴대폰으로 요금을 선불로 결제하고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불폰은 발신자 추적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범죄나 스팸, 보이스피싱 등에 이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선불폰을 이용해 미행이 이뤄진 하루 평균 약 40여통의 전화를 주고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선불폰의 발신 기지국을 추적하고 이 회장의 동선 등과 비교했다.
경찰은 또 삼성물산 감사팀 소식 직원 4명이 렌터카를 이용한 것으로 배경으로 이들이 조직적으로 이 회장을 미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2인 1조 형태로 렌터카와 회사법인 차량을 이용했다. 이 차량으로 이 회장 집 주변 및 출퇴근 동선 등을 뒤를 밝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그러나 삼성 소속 직원들의 조직적인 미행 행각을 밝혀내기는 했으나 주목을 받았던 윗선은 들춰내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부실수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경찰 안팎에서는 그러나 현실적으로 윗선을 밝혀내기는 어려워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경찰이 윗선을 밝히기 위해 압수수색 등을 시도했으나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선불폰을 사용한 삼성 직원들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 위한 영장을 법원에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선불폰 5대 중 1대의 기지국이 항상 서초동 삼성타운 주변인 것으로 미루어 이를 보고받는 ‘위선’일 것이라고 추정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이 같은 경찰의 요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수사에 관한 강제처분은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며 “ 이 사건의 경우 압수수색의 필요성과 상당성에 대한 소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또 연루된 삼성 관계자들 외 삼성물산 감사팀 소속 상무 등 2명을 참고인으로 조사했으나 관련자들은 미행사실 전반에 대해 부인해 윗선을 밝혀내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재계 한 관계자는 “경찰이 삼성그룹 차원에서 이재현 회장을 미행하도록 한 것을 밝혀내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며 “선불폰과 렌터카를 이용한 조직적 미행사실을 확인한 것도 큰 성과”라고 내다났다.

CJ그룹 “삼성, 지금이라도 사과해야”

이 관계자의 분석은 수사초기 상황과 깊은 연관이 있다. CJ그룹 측은 고발 당시 미행으로 인해 이재현 회장의 업무에 방해를 받았다며 업무방해혐의로 신원불상의 인물을 경찰에 고발했다.
법조계와 재계 일각에서는 그러나 이들의 미행이 과연 이 회장의 업무를 방해했는지 여부를 두고 경찰의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미행한 가담한 직원들이 이 회장 집 주변을 배회하면서 출입여부 감시 등으로 인해 이 회장이 경영회의 일정 등에 차질이 생긴 점을 감안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CJ그룹은 윗선이 밝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CJ그룹 관계자는 “경찰 조사를 통해 삼성의 조직적 미행이 이뤄졌다는 것이 밝혀진 만큼 지금이라도 성의 있는 해명과 사과,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며 “윗선이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삼성 계열사들이 ‘대포폰’을 사고 미행하는 것은 그룹 차원의 작업이고, 이는 윗선이 있었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향후 검찰에서 이번 미행사건이 누구의 지시로 이뤄졌는지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삼성, 계열사 차원의 문제로 선긋기?

그러나 삼성 측은 일단 계열사 소속 직원들의 행동으로 이번 사건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그룹 차원의 행위가 아닌 계열사 차원의 헤프닝으로 선을 긋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번 사건 초기부터 그룹 차원에서의 대응을 하지 않아 일종의 ‘거리두기’ 전략을 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한 대응은 그룹이 아닌 계열사인 삼성물산에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이 촉발된 직후인 지난 2월, 삼성 측은 “해당 계열사에서 대응하고 그룹 차원에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을 것이며 CJ그룹이 정식으로 고발한 만큼 수사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보인 뒤, “이재현 회장 집 바로 옆에 호텔신라 관련 부지가 있어 삼성물산 직원들이 사업성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찾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상속소송과 연관?

재계에서는 이번 미행사건의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상속소송을 제기한 것과 연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 전 회장은 이건희 회장은 상대로 지난 2월, 창업주 이병철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주식을 지급하라는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이 창업주의 딸인 이숙희 여사, 손자인 고 이재찬씨의 유가족도 비슷한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숙희 여사는 이건희 회장의 손윗 누나로 현재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부인이다. 아울러 이재찬씨는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의 차남으로 지난 2010년 3월 투신자살했다.
한편, 사건을 경찰로부터 이첩 받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이번 사건을 형사2부(김우현 부장검사)로 배당했다고 10일 밝혔다. 검찰은 경찰에서 넘겨 받는 자료를 검토한 뒤,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이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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