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전 회장 ‘수렴청정’ 의혹 일파만파

태광그룹 이 前 회장, 횡령 및 조세포탈 실형 선고
이 전 회장 등 경영진 “책임 지겠다” 일선서 퇴장

이달 주주총회서 심재혁 등 새 이사진 선임 예정
좋은기업硏, 이 전 회장 ‘장막 뒤 경영’ 의혹 제기

▲ 태광산업 전경

태광그룹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의 새 이사진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최근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이 거액의 회삿돈을 횡령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징역 4년6개월에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에 이 전 회장 및 경영진들은 횡령 혐의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에 따라 경영공백을 메울 새 이사진이 이달 열릴 정기 주주총회서 선임될 예정이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이들 새 이사진을 두고 “이 전 회장의 친인척이거나 이 전 회장의 영향력을 대신해 줄 만한 인물들”이라며 이 전 회장의 ‘수렴청정’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간 모자의 회삿돈 횡령 문제로 도마 위에 올랐던 태광그룹에 측근 인사까지 맞물린 위기상황에서 앞으로의 태광그룹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27일 공시를 통해 “당사의 전 임직원 등의 횡령 및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판결 등본이 발급돼 사실확인이 됐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횡령, 조세포탈로 사실 확인된 금액은 총 230억5300만원으로 이 중 자기자본은 1.2%밖에 되질 않는다.
사실확인 내용은 무자료 거래로 인한 횡령(이선애, 이호진, 이성배) 205억8500만원, 허위 회계처리를 통한 횡령(이선애, 이호진, 박명석) 13억4000만원, 설비부품 대금 횡령(이선애, 오용일, 이성배) 3000만원, 조세포탈(이선애, 이호진, 태광산업) 10억9700만원이다.
태광산업측은 “이번 횡령 및 조세포탈 혐의에 대한 판결과 관련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며 “횡령 및 조세포탈에 대한 내용은 서울서부지방법원의 판결에 의한 것이며, 지난달 24일 항소장을 제출했고 그에 따른 판결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밝혔다.

‘회삿돈’ 횡령해 개인 용도로 활용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지난달 21일 거액의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로 징역 4년6개월,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다. 또한 비자금을 실질적으로 조성·관리해 온 이 전 회장의 어머니 이선애 전 상무에도 징역 4년에 벌금 20억원을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종호)는 “피고인들의 유죄 범행은 장부조직 등 다수인이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 전 회장은 1673억원의 부당이익을 취득해 차명계좌를 비롯한 주식·채권·부동산 등을 통해 불법 비자금을 조성하고 무자료 거래, 회계 부정처리 등으로 회사 돈 400억원을 횡령해 골프연습장을 헐값에 매도하는 등 그룹 측에 975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지난해 1월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횡령 208억원과 배임 582억원을 유죄로 인정하고 나머지 태광산업에 비상장 주식을 매각한 부분 등 일부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앞서 검찰은 이 전 회장에 대해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주주들에게 1400억원대의 손해를 입히고 횡령한 돈을 자신의 유산증자와 세금납부, 보험금 납부 등에 사용했다”면서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경영권 승계에 활용한 것은 물론 책임마저 회피하고 있다”며 징역 7년에 추징금 70억원을 구형한 바 있다.
이에 당시 흥국생명해직복직투쟁위원회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생명보험업종본부 등은 지난달 13일 오전 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벌가의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며 “자신과 자식들의 대를 잇는 부귀영화를 위해 수천에 이르는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던 부패 타락한 경영진에 솜방망이 처벌로 그쳤던 법원의 잘못된 관행에 종지부를 찍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처벌해 줄 것”을 촉구했다.

▲ 흥국생명해직복직투쟁위원회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생명보험업종 본부 등이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패 타락한 경영진에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처벌해 줄 것”을 촉구했다.

태광산업·대한화섬
새 이사진 윤곽 드러나

그간 이 전 회장은 태광산업·대한화섬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티브로드 홀딩스 등 그룹내 모든 법적 지위와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흥국생명해복투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등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 전 회장은 병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를 수차례 연장할 정도였는데, 지금까지 8개사에 직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 자체가 모순이자 태광그룹이 이 전 회장의 절대왕국임을 입증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 전 회장과 오용일 부회장 등 회장단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다만 태광산업 지분 16만8530주(15.14%)외에도 큐릭스홀딩스, 티브로드홀주주로서의 지위는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태광그룹은 지난달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호진 회장과 오용일 부회장 등 회장단이 그룹 문제로 재판을 받는 등 국민들께 심려를 끼치고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경영공백이 생긴 태광그룹은 이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로운 회장단을 신규 선임할 계획이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오는 23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심재혁 레드캡투어 사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태광산업은 태광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사실상 심재혁 사내이사가 태광그룹의 경영 전반을 총괄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심재혁 신임 사내이사는 연세대학교 상학과를 졸업한 뒤 1989년 LG정유 업무담당 이사로 입사, LG그룹 회장실 홍보담당과 LG텔레콤(현 LG U+) 부사장, 인터컨티넨탈 호텔 대표이사, 레드캡투어 대표이사 등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또한 태광산업은 사내이사와 사외이사에 각각 이동국씨와 신용학씨를 선임할 예정이며, 대한화섬 또한 공시를 통해 사내이사에 김기유씨와 배진구씨를 내정한다고 밝혔다.

“새 이사진 문제 많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이달 주주총회에서 새로 선임될 경영진들이 이 전 회장의 친인척이거나 사실상 이 전 회장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기 위한 인물들로 구성돼 이 전 회장이 ‘수렴청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는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주총에서 신규로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면면을 보면 이호진 전 회장은 여전히 태광산업 등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기 위한 인사를 단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CGCG에 따르면 태광산업의 대표이사로 선임 예정인 심재혁 사내이사 후보는 이 전 회장의 부인 신유미씨의 외삼촌으로, 그룹이 내세운 전문경영인 체제 확립이라는 발표와는 상반된 인물이다.
또한 CGCG는 “태광산업의 사내이사 후보인 이동국씨와 대한화섬의 사내이사 후보인 김기유씨는 모두 이 전 회장 및 가족들이 100% 지분을 보유한 개인회사의 대표이사”라면서 “대한화섬의 사내이사 후보인 배진구씨 역시 대한화섬 및 태광산업의 감사를 지낸 인물로 이 전 회장을 위한 부당지원 등에 대해 문제제기 하지 않았던 인물”이라고 보고 있다. 더욱이 이동국 에스티임 대표이사도 이 전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어 ‘수렴청정’이라는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CGCG는 “사내이사 후보뿐만 아니라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할 사외이사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며 “태광산업의 사외이사 후보인 신용학씨는 과거 태광산업의 상무였다”고 덧붙였다. CGCG는 이번 주총에서 신용학씨가 선임된다면 사외이사 3명 중 2명이 태광산업 또는 계열사의 임원이었던 인물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태광산업의 이사회는 사외이사를 포함해 거의 전원이 이 전 회장의 영향력 하에 있는 인물로 다시 구성된다는 주장이다.
한편 위기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전문경영진이 절실한 태광그룹이 측근 인사로 또다시 비판 여론에 휩싸인 가운데, 현재 태광산업 및 대한화섬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전향적이고 획기적인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실천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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