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이면 온천까지 OK! ‘노인 문화’로 자리매김

경로우대증 소지하고 무료로 전철 이용, 온천 혜택 풍성
온양온천에 방문하는 노인들의 숫자 하루 대략 5,000명
하루 1만원 비용‘지역경제 도움’, 노부부들 데이트 즐겨
노인인구 500만 넘어, 놀이 및 휴식문화 조속히 마련돼야

기자가 영등포역에서 1호선 신창행 전철에 오른 시간은 아침 9시가 조금 넘었다. 그 시각 상행선은 매우 붐볐지만, 하행선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구로역을 지나자 승객들의 수가 눈에 띠게 줄었는데, 언제 탔는지도 모르게 노인들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 있었다.
승객들을 굳이 두 부류로 나누면, 노인층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기자가 발걸음을 옮김 곳은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세분의 노인들이 있는 좌석이었다.


처음에는 기자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 속으로 끼어 들어갔다. 그런데 그 분 중 한 분이 얼굴을 찌푸렸다. 전날 과음하신 모양이다. “이럴 때 사우나에서 땀을 쭉 빼고 나면 몸이 훨씬 가벼워지지”라며 가방 속에서 숙취 해소제를 여러 병 꺼내 기자한테도 한 병 마시라고 줬다. 옛날 직장 동료들하고 술 한잔했다는 박은근(73세, 마포구 상암동)씨는 “요즘은 이 맛에 산답니다. 두어 시간 열차타고 가서 사우나 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지”라며 너털웃음을 보였다.

어르신들의 즐거움은?

잠시 후 기자의 신분을 밝히고,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돈이 없어서 이렇게 못한 것은 아니지 뭔가 내세울 명분이 없어서 못했지”라며 공무원으로 퇴직하신 배호태(72세, 마포구 망원동)씨는 “하지만 지금은 명분이 있잖아 온양온천까지 전철이 공짜잖아. 그래서 가는 거지”라고 검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루 1만 원짜리 한 장이면 돼. 사우나하고, 막걸리 한잔에 점심을 먹으면 딱 되지”라고 말하는 강규이(73세, 마포구 성산동)씨는 아직도 작은 사업을 하고 있는데, “2~3일에 한번 정도 오는데, 한 달에 10만 원정도 들어가지. 이 정도는 우리도 써야하지 않겠어?”라고 반문하면서, 젊었을 때 고생담을 이어갔다.
이 분들은 50년 지기 친구들로 스스로 ‘마포토박이’라고 자랑하면서 술을 마신 다음날은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만나서 이 전철을 탄다고 했다. 할머니들의 반응에 대한 물음에 할머니들도 같이 갈 때도 있지만 집안일 때문에 자주 어울리지 못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런데 취재가 이루어지는 동안 이 전철 안에는 또 다른 희생자(?)가 있었다. 바로 학생들이었다. “이 시간에는 경로석이 모자라죠. 모두가 노인들인데 누가 자리를 양보하겠습니까? 졸지도 못해요. 깜박 졸고 있으면, 언제 오셨는지 모르게 앞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서있거든요. 양보 해야죠”라며 머리를 긁적이는 대학생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듬직해 보였다.
오산역을 지나면서 그 동안 내리기만 했던 승객들이 점차 타는 승객들이 많아졌다. 시골 시내버스와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할머니들이 많아졌다. 경로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좌석이 노인들로 메워졌다.
기자도 자리를 옮겨 다른 할머니들 틈바구니로 끼어 들어갔다. 처음에는 이상하듯이 쳐다보더니 금세 말동무가 되었다. 들고 있던 가방에는 뭔가로 가득 차있어 보였는데, 아침식사를 했냐고 물으시더니 주섬주섬 김밥을 꺼내 주었다.

‘어르신 우대’ 문구들

“우리는 먼저 먹었어. 요즘 젊은 사람들 아침 안먹쟎아 아침은 꼭 먹어야 돼”라며 음식을 챙겨주시는 박복례(70세, 동작구 대방동) 할머니는 “아파트경로당 노인들인데 일주일에 2번은 꼭 이 전철을 타고 여행을 간다”고 말했다. “여행은 무슨? 우리 목욕 가. 그냥 물속에서 애들처럼 놀다오지. 얼마나 재미있는데?”라고 옆에 계시던 김점순(76세, 동작구 대방동) 할머니께서 말을 거들었다. “얼마 전까지 손자들 보느라 집밖을 나오지 못했는데, 이제는 다 커서 이렇게 나올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라며 즐거워했다.
어느 덧 영등포역을 출발 35번째 역인 온양온천역에 2시간이 넘어 11시 반쯤 도착했다. 종착역이 아직 남았는데, 전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에 있다 나왔는지 승강장에는 노인들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거의 장사진이었다. 역사(驛舍)를 나와 눈에 가장 띤 것은 도로에 있는 큰 글씨였다. ‘노인보호구역’이다. 기자는 이 말을 처음 본 것이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며 어디론가 천천히 걸어가는 노인들의 발걸음이 가벼워보였다. 여기저기 보이는 간판 밑에는 대부분 ‘어르신들 우대’라는 문구가 크게 보였다. 마치 ‘노인천국’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걸어서 5분 정도에 있는 C온천탕을 찾았다. 주변에 15개 정도의 온천탕이 있는데 가격은 대부분 6,000원~7,000원이었는데, 경로우대증을 소지한 노인들에 한해서 3,700원~4,300원 정도였다. 하지만 입구에서 경로우대증을 내보인 노인들은 한분도 없었다. 얼굴이 신분증이요, 인생의 계급장이었다.
“다들 준비해 와요. 저희 온천에서는 단지 물만 사용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종업원 김 모(57세)씨는 “밀물처럼 몰려왔다 썰물처럼 빠져 나가요. 이 시간대에는 노인양반들 빼고는 아무도 없어요. 젊은 사람은 아예 이 시간대를 피해 오죠”라고 말하면서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보자고 손사래를 흔들었다. 기자는 들어가진 않았지만 탕 안에서 물이 차갑다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지배인 박 모씨는 “가끔 사우나에서 노인 분들이 쓰러지는 경우가 있어 고온사우나 자제를 권유하지만, 워낙 고집들이 세서 말을 잘 안들어요”라며 “할머니들은 빨래를 많이 해요. 못하게 하지만 이 분들 역시 말 안듣기는 마찬가지죠”라고 하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안계셨다면 경영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참 다행이죠”라고 덧붙였다.

안전사고 조심해야

경로우대증을 소지하고 전철을 이용, 이곳 온양온천에 오는 노인들의 숫자는 하루에 대략 5,0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온양온천역 관계자에 따르면, 하루에 이 역 이용객이 11,000명 정도인데 이 중 무임승차권을 가진 승객은 36% 정도이다. 이 숫자에 국철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 국철승객까지 포함하면 5,000명 정도로 보고 있다. 2008년 개통이후 이 숫자는 거의 비슷하게 이어지고 있어 지역경제에도 상당부분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을 방문하는 노인들의 하루 비용을 1만 원정도만 보더라도 적지 않은 비용이다. 역 관계자는 “이곳을 방문하는 노인들은 계절과 일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해요. 그래서 더욱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죠”라고 말하면서 재미있는 많은 일화도 들려줬다.
역사 안에는 ‘방문객 어르신 쉼터’도 마련하고 있어 장기와 바둑뿐 아니라 인터넷까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역관계자는 마지막으로 어르신들에게 안전을 이유로 에스컬레이터보다 엘리베이터를 사용 할 것을 부탁했다.
관광안내소의 조원상 씨는 “어르신들이 목욕 후에 약주를 많이 하시는데, 넘어지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안타깝다”고 하면서 이 분들을 안내해 줄 자원봉사자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오후 3시가 지나자 노인들이 다시 역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전에 온천을 갔던 그 분들이었다. 4시가 지나면서는 비닐봉지와 보자기에 뭔가를 싸가지고 오는 할머니들이 눈에 많이 띠었다. 여기에서 시장을 보고 올라가는 것이었다. 게다가 전통 5일장이 4일과 9일에 열리는데, 이 날은 장바구니가 훨씬 커진다고 조 씨가 귓뜸을 해주었다.
기자가 다시 서울행 전철을 탄 시각은 대략 오후 4시 30분 정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시는 노부부를 만났다. 여의도에 살고 있는 김정국(76세)씨는 “젊었을 때 못한 데이트를 이제 합니다. 3일에 한번은 꼭 오죠”라며 “저희 부부한텐 제일 중요한 일과입니다. 왕복 4시간 정도 전철을 타는데, 어떨땐 이 시간이 너무 짧을 때도 있어요. 꾸벅꾸벅 졸 때가 더 많지만 계절이 바뀌는 것을 빼놓지 않고 보니, 아! 이게 행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하면서 오숙임(72세)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천안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더 이상의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승객들이 많아서도 그랬지만 더 큰 이유는 온천을 다녀 온 노인들 대부분이 깊은 수면에 빠져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지하철 무임승차 13%

지난해 서울 메트로(1,2,3,4호선)의 무임수송인원은 전체 1,111,334,000명중 141,668,000명으로 13%를 차지했고, 서울도시공사(5,6,7,8호선)의 무임수송인원은 전체 631,877,000명 중 87,225,000명, 13.8%로 발표됐다. 물론 이 숫자에는 장애자와 국가유공자 등이 포함되었는데, 경로우대측면에서 볼 때 절대 적지 않은 숫자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1년도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전체의 11.3% 정도를 차지하고, 숫자로 보면 500만 명이 훌쩍 넘었다. 노인인구의 비율이 7% 이상일 경우 ‘고령사회’라고 칭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오는 2030년에는 전체 인구 중 1,181만 명까지 늘 것으로 전망했다. 예상치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2030년에는 노인인구가 24.3%까지 늘어나게 되는데, 4명 중 1명은 노인이다.
너무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어 이들이 즐길만한 놀이문화 또는 휴식문화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조속히 만들어져야 할 사회적 문제다. 그나마 하루에 1만 원정도의 비용을 들여 온천관광을 올 수 있는 노인들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노인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젊음이 영원히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평생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수도 많지 않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누구나 자기에게 닥칠 일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국내 독거노인들이다. 보건복지부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독거노인의 수가 106만 6,365명으로 전체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20%에 달한다. 이는 5년 전에 비해 약 24%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 경제생활이 어려워 보살핌이 필요한 75세 이상 고령은 절반 정도인 49만 여명이며, 이들의 절반 정도만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서 향후 독거노인 숫자 또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독거노인들을 위한 대책 마련을

독거노인의 80%는 여성으로 집계됐다. 전체 기초생활수급자(145만8,198명) 중 노인의 비율은 약 27%로 39만1,214명에 달한다. 하지만 자녀 등 부양자가 있어 수급자에 포함되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103만 명에 이른다. 복지부는 이들 중 대부분이 노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인 노인보다 3배나 더 많은 빈곤 노인들이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이들에겐 무료전철을 이용한 온천관광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이들에겐 다른 나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정부의 복지예산이 어느 쪽으로 많이 사용해야 좋은 국가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소외된 계층이 없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 취재에서 소문으로 들리고 또 음성적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노인들의 성문제를 발굴하고자 했지만, 그 부분은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창피하다며 말하기를 꺼려하여 구체적인 사례까지 발굴하진 못했다.
그렇지만 많은 분들이 “그런 것이 있지”라고 언급하여 실체적 존재는 분명히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노인들의 66.2%가 성생활을 하며, 이 중 36.5%가 성병감염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발표에 의하면, 지난 해 65세 이상 노인의 성병진료환자가 1만7,265명이었다고 밝혔다. 2006년 1,713명보다 연평균 12.7% 늘어난 수치다.
소위 ‘박카스 아줌마’라고 불리는 이들과의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음은 쉽게 넘길 일은 아니다.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탑골공원에서는 이미 음성적으로 성행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또 다르게 노인들이 모이는 온양온천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경춘선에 이에 대한 사전 성교육의 필요성이 시급하다고 본다.
이번 취재에서 느꼈던 가장 큰 점은 노인들이 비록 몸은 예전과 다르지만 마음은 우리와 같은 젊은이와 똑같다는 것이었다.

문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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