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사업 일부철수…다른 서비스업종에도 영향, 글쎄?

신라호텔, ‘아티제’ 사업 철수…연이어 롯데그룹도 동참
소상공인 서비스업종 진출한 재벌가들 반응 소극적…‘눈치보기’

해외 브랜드 수입 독점, 가족 계열사 이용 손쉽게 매장 열어
손쉬운 돈벌이 치중 기업가 윤리의식 잃어가는 재벌가‘문제’

재벌가 2~3세가 빵집·커피숍 등 식음료 사업에 진출하거나 라면·물티슈까지 수입해 팔기 시작하며 골목상권을 잠식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이어졌고 급기야 지난 25일 이명박 대통령은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지적하며 경고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비난여론에도 아랑곳 하지 않던 재벌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난 26일 신라호텔은 커피·베이커리 카페인 ‘아티제’ 사업을 철수한다고 밝혔고 이어 롯데까지 사업 철회를 선언하며 서민업종의 대표인 빵사업에서 대기업들이 저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기업이 침범하고 있는 사업영역은 날로 광범위해져 중소상인들의 한숨만 늘고있다. 이번 재계 자녀들의 빵사업 철수가 다른 재벌 사이에 어떤 파장을 불러 올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재벌가 2~3세들이 본업을 벗어나 소상공인들의 기회를 박탈하며 재벌 계열사에 입점 시키거나 수입품을 손쉽게 들여와 부당하게 물건을 유통시키는 일이 빈번하자 곳곳에서 문제제기가 일었다. 이에 제동은 건 것은 청와대였다. 설 연휴가 끝난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흉년이 들 때면 부자 만석꾼들이 소작농들의 땅을 사서 넓혔지만 경주 최 씨는 흉년기간에 어떤 경우도 땅을 사지 말라는 가훈을 지켜 존경을 받았다”며 대기업들이 서민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현 상황을 지적했다. 이는 재벌딸들의 빵사업을 겨냥한 쓴소리로 해석됐고 이 대통령의 발언 다음날 가장 먼저 삼성이 소상공인 업종 사업철수 의사를 밝히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삼성 첫 테이프 끊다

지난 26일 신라호텔은 이부진 사장이 2004년 오픈해 지금까지 운영 중인 아티제를 전격 철수한다고 밝혔다. 아티제는 2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매출 241억원을 기록, 신라호텔 전 매출의 1.4%를 차지한다. 이와 더불어 2007년 홈플러스와 함께 설립한 ‘아티제 블랑제리’ 지분도 처분하기로 했다. 홈플러스가 81%, 호텔신라가 19%지분을 투자한 상황으로 홈플러스 매장에서 숍인숍 형태의 제빵브랜드로 운영됐다. 블리스 관계자는 “이같은 결정은 동반성장을 위한 정부 정책과 소상공인 보호라는 국민 여론에 적극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티제 사업철수 발표에 이어 지난 31일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외손녀 장선윤 블리스사장은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베이커리 브랜드 ‘포숑’에서 손을 떼겠다고 보고했다. 장 사장은 2010년 롯데호텔 고문직을 그만둔 후 그해 11월, 빵 제조와 유통, 와인 수입, 식당 등을 목적으로 블리스를 차렸고 고려당이 롯데백화점에서 운영하던 포숑 사업권을 획득했다. 장 대표가 70%, 롯데쇼핑이 30%의 지분을 가져 ‘가족 사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포숑은 지난해 5월 롯데백화점 본점 등 대형 점포에 12개 점포로 입점했지만 현재 7개 매장으로 축소돼 운영되고 있다. 5개 매장은 특혜 논란에 대한 비판 여론을 고려해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 2일 두산그룹도 계열사인 SRS코리아를 통해 운영하던 커피전문점 ‘페스티나 렌떼’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다. SRS코리아는 두산의 계열사인 DIP 홀딩스의 자회사다. 커피사업외에도 KFC, 버거킹 등 외식사업체를 운영 중이다. 또한 현대자동차그룹은 구내 카페 ‘오젠’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다.

재벌가 자녀들의 빵사업 철수는 다른 서비스업종에 발을 담근 재벌가들에게도 파장이 일었다. 먼저 눈치 빠른 범LG그룹 계열의 식품기업 아워홈이 대세를 따랐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아들인 구자학 회장 일가가 운영하는 회사인 아워홈은 급식·식자재 유통업체로 B2C에서 순대와 청국장 소매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밝힌 것. 아워홈은 작년 동반성장위원회로부터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 철수 권고를 받았지만 시기를 늦추며 사업을 유지하다 지금이 적절한 때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같은 날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외손녀사위인 양성욱 브이앤라이프(V&Life) 대표는 지난달 20일 이사직에서 사임함과 동시에 진행 중이던 물티슈 사업을 접었다. 최근 브이앤라이프는 독일 물티슈 제조업체인 알바드(Albaad)사의 아기용 물티슈 ‘포이달(Feudal)’을 직수입해 국내에 유통하고자 시도했다. 브이앤라이프가 양 대표의 100% 개인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철회하기까지는 양 대표가 롯데그룹 오너3세인 장선윤씨의 남편이라는 꼬리표에 대한 여론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의식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밖에 대명그룹도 2009년 퓨전 떡볶이점인 ‘베거백’ 사업을 축소 운영하고 해외 사업으로 눈을 돌려 육성한다고 발표했다.

소상공인 영역 침범 심각

한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러한 국내 소식을 접한 후 문제를 지적했다. 재벌가의 중소기업 사업영역 침범이 빵집에만 맞춰져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골목 상권 침해 논란을 빚어온 빵집·커피숍 사업 철수가 일반 음식점이나 분식집 등 서민업종에 진출한 대기업의 연쇄 철수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재벌가 2~3세들이 참여한 서비스업 분야는 분식업, 제빵업, 세탁업, 외식업 등 문어발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2001년부터 10년간 그룹 총수일가가 20%이상 출자해 세운 회사는 모두 127개, 이중 84%가 서비스 업종에 진출했다.

▲매일유업은 수제 샌드위치 전문점 ‘부첼라’ ▲농심은 일본식 카레 전문 레스토랑 ‘코코이찌방야’ ▲FNC코오롱은 슈크림 전문점 ‘비어드파파’를 가두점으로 운영중이며 ▲ CJ그룹은 비비밥 전문점 ‘비비고’ ▲애경그룹은 일본 라면 체인점 ‘이퓨도’ ▲SPC그룹은 베이커리전문점 ‘파리바게뜨’ ▲롯데그룹은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 ▲삼천리는 계열사 SL&C를 통해 중식업 ‘차이797’ ▲귀뚜라미가 카페 레스토랑인 ‘닥터로빈’ ▲대성은 한식업 ‘디큐브한싯저작거리’를 설립했다.

이처럼 재벌가들이 분야를 막론하고 영세업자들의 사업 영역까지 손을 뻗는 현상은 기업의 상생관계의 붕괴를 불러온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실제로 지난 30일 한국외식업중앙회가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폐업하는 영세식당 수는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2009년 2만9000여곳에서 2010년 4만7000여곳으로 폐업수가 늘었고 지난해에는 5만개 이상의 식당이 문을 닫은 것으로 추산됐다.

자영업자 제과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폐업하는 제과점의 수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면서 2000년 전국 약1만7000여곳이었던 점포수는 지난해 말4500~5000여곳으로 크게 줄었다. 즉 11년 만에 무려 70%넘게 감소한 것이다. 특히 동네빵집들이 몰락하는 데에는 대기업과 재벌가들의 불공정 거래 행태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례로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리치몬드제과점 홍대점은 지난 31일 영업을 마지막으로 폐점했다. 리치몬드제과점은 30여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제과명장의 빵집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리치몬드제과점 관계자에 따르면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건물주에 높은 임대료를 제시했고, 리치몬드제과점은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임대료로 문을 닫게 됐다. 즉 자영제과점이 입점한 건물주와 유명 프렌차이즈 사업자들이 서로 짜고 임대계약의 해지를 유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리치몬드제과점 자리엔 다른 대기업의 프랜차이즈가 들어설 예정이다.

실종된 기업가정신, 본보기 보여야

이처럼 재벌들이 서비스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기존에 형성돼 있는 안정적인 유통망을 이용해 손쉽게 시장을 구축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재벌가 2~3세들의 행태는 혁신과 도전으로 대변되는 기업가 정신이 실종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족의 품에 머물러 손쉬운 돈벌이에만 치중해 블루오션을 개척하거나, 해외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한 가치창출을 이끌어 내는 기업가로서의 본보기를 잃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대기업 2~3세들은 해외 브랜드 수입을 모두 독점하고 있으며 해외 중저가 제품을 국내에서 명품으로 둔갑시켜 폭리를 취하다 적발된 사례도 일었다.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 운영하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코치, 돌체앤가바나 등을 수입했고, 효성은 메르세데스 벤츠와 도요타, 구본걸 회장은 LG패션을 통해 막스마라와 블루마린, GS리테일은 미스터도넛을 수입해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해외 브랜드를 수입해 오면 가족 계열사 라인을 통해 손쉽게 매장을 열어 이득을 취한다. 하지만 중소 업체들이 백화점에 입점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걸쳐 타 기업과 쟁쟁한 경쟁을 뚫어야 간신히 기회를 얻을 수 있다.

10년간 그룹 총수일가가 세운 서비스 회사들은 다른 계열사에 비해 수익률이 두 배 이상 높았으며 부채비율은 훨씬 적었다. 이는 재벌가들이 손쉽게 서비스 업종에 손을 뗄 수 없는 이유다. 그동안 영세업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던 재벌가들은 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바로 수긍하는 모습을 보여 이 또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선 대기업이 또다른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니냐며 비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번 삼성과 LG의 골목상권 철수는 대ㆍ중소기업간 실질적인 동반성장에 모범이 되는 의미있는 사례가 될 것”이라며 “다른 대기업에게도 귀감이 되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는 분야로 확대되어 소상공인 및 서민의 생활 안정과 양극화 해소에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내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성장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빵집 사업 철수가 일시적인 쇼맨십으로 끝나기 보다는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공존·공생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최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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