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해이·사후처리 미흡 도마위

공공부문 외주화·사내하청 문제 참사 부추켜
하청업체 노동자 안전과 건강 뒷전…악순환

인천 공항철도 사고 둘러싼 시비 격화
작업일지 공개 등 과실여부 증명 따져야

▲ 한국철도공사 본사

지난 9일 0시 30분 인천 공항철도 계양역에서 철로 보수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5명이 열차에 치여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인천국제공항철도 열차는 코레일공항철도 계양역에서 검암역 방향 1.2km 지점에서선로 동결 방지 작업 중이던 근로자 8명을 덮쳤다. 이로 인해 백인기 씨와 추성태 씨 등 5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이용훈 씨가 크게 다쳐 병원에서 현재 치료 중이다.


지난 12월 13일 인천국제공항철도 열차 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은 작업반장 등 사고 관련자 4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인천 계양경찰서는 맡은 업무를 소홀히 해 선로 위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들이 열차에 치여 숨지거나 다치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로 코레일테크 소속 작업반장 A씨 등 4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안전 불감증이 낳은 비극

A씨는 관제센터의 승인 없이 선로에 진입한 뒤 동행한 근로자들에게 작업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고 있다. 함께 구속영장이 신청된 기관사 B씨는 선로 위 근로자들을 발견하고도 경적을 울리지 않는 등 기관사 안전수칙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작업 시작 전에 하게 돼 있는 근로자 안전교육을 사고 당일 하지 않은 코레일테크 소속 안전책임자 C씨와 안전교육 시행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이 회사 인천사업소장 D씨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경찰은 회사 내규상 안전 수칙 등을 검토하면서 명확한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해 관리 감독 관계자 등을 불러 조사하고 있다. A씨가 막차가 통과한 줄 알고 근로자들과 선로에 진입했는지 여부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코레일테크와 유족들은 이날 빈소가 마련된 인천시 서구 신세계장례식장에서 장례절차와 보상 문제를 놓고 처음으로 합의를 시도했으나 보상 수준 등에 대한 입장 차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 유족은 “사고 경위를 포함해 아직 조사가 명확하게 된 게 없어서 책임을 묻고 뭔가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장례 절차와 보상을 놓고 앞으로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고(故) 이화춘(59)씨의 시신이 마지막으로 입관하면서 시신 5구에 대한 입관을 마쳤다. 유족은 14일 계양경찰서를 방문해 수사 진행 과정에 대한 중간 브리핑을 들을 예정이다.
국토해양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지난 12월 12일부터 사고 경위 조사에 착수했으며 코레일공항철도는 이에 따라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공항철도 선로 작업 사망사고를 둘러싼 과실 논란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당초 코레일테크 측이 밝힌 해명과 유가족 측의 주장이 전혀 상반된 결과를 내놓고 있다.
지난 12월 10일 코레일테크 측은 기자회견에서 “사고가 발생하기 전 4일간은 현장 책임자가 참석했으나, 사고가 난 9일에는 현장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반면 유가족측은 숨진 A씨의 수첩에 당시 근무상황이 기록돼 있었으며 수첩에는 야간근무로 투입된 뒤 5일 동안 한 번도 현장 책임자가 현장에 입회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주용역 금지가 최선책

이에 대해 유족 측 관계자는 “A씨의 수첩에는 작업자의 이름과 현장 책임자의 감독 여부 등을 담은 작업일지가 적혀 있으나 이 수첩 내용에는 현장 책임자가 관리 감독을 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한 코레일 측의 해명도 명쾌하지 않다. 지난 12월 12일 코레일테크 박흥수 대표이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시 사고 발생 전 4일 동안 현장 책임자가 관리 감독을 했다는 발언은 업무 지침에 따른 해석이었다”며 “직접 작업일지를 확인한 일은 없었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어 박 대표는 “회사 보고체계를 통한 현장 관리자의 근무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보고 받은 바 없다”고 덧붙였다. 코레일테크 관계자도 “현재 작업 일지 등은 계약상 코레일 인천공항철도측의 허락 없이 우리가 공개할 수는 없다”며 “현재 작업일지는 경찰에 제출된 상태여서 작업일지 내용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코레일테크 작업 내규에는 현장 관리자는 반드시 현장에서 작업을 관리 감독하도록 돼 있다. 철도 선로 내의 작업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레일테크의 ‘선로작업안전시행내규’ 제8조(작업책임자의 지정)에는 사업 책임자는 작업을 명할 때는 작업의 종류 및 작업량에 따라 작업책임자를 지정, 작업의 지휘를 담당시키도록 되어 있다.
또 제9조(작업책임자의 임무)에는 작업책임자 ‘작업 전에 작업자에게 작업내용, 주의사항 등 안전교육 시행’, ‘작업 전 작업협의(전차선 단전상태 포함) 및 작업완료 후 완료보고’ ‘열차감시원 배치 및 안전표지설치(선로작업표, 작업알림판, 서행신호기등)’ ‘작업장 주변 시설물, 장비, 공구 등의 위험성 확인 및 제거’ ‘작업종료 후 성능확인 점검 시행’ ‘작업종료 후 작업 전구간 안전점검(열차장애 여부) 및 최초 통과열차 안전 확인’ ‘작업완료 후 작업구간 통과 열차의 속도제한이 필요할 때 종합 관제실에 속도제한 요청’ 등의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유족 측은 “만약 작업 기간 중 이 같은 절차가 생략됐다면 현장 책임자의 과실 책임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익명을 요구한 유가족 측 관계자는 “사고 발생하기 4일전까지는 현장 책임자가 감독을 했다는 코레일테크 측의 해명에 의혹이 제기됐다”며 “회사 측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명확한 해명과 함께 작업일지 등을 공개해 과실 여부를 증명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항철도 책임 촉구 목소리

아울러 이 때문에 5명의 하청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코레일공항철도 사고와 관련해 공항철도의 책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항철도 측의 파행적인 경영방식과 원하청제도의 문제점이 비극을 낳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공항철도 측은 노동자들이 작업 예정 시간보다 일찍 선로에 들어간 것이 참사의 원인이라며 노동자의 안전 불감증을 지적하고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12월 5일부터 선로 보수, 유지 업무를 해 왔으며 사고 전날까지 막차가 지나간 다음에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때문에 정광호 한국노총 대변인은 “결국 사고노동자들이 막차 시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라며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열차운행이 끝나기 전에 작업을 시작했던 이유가 원청, 혹은 하청업체에의 작업 지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노동계에서는 이번 사건의 본질적인 책임주체로 원청인 공항철도를 지목하고 있다. 원하청 관계에서의 지휘관계, 노동자의 안전보호대책 마련 미흡, 경영파행으로 인한 외주화 증가 등이 이번 사건의 핵심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정 대변인은 지난 12월 13일 SBS라디오 ‘김소원의 SBS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의 사업장에서 일하며 원청의 지휘감독 하에 철처히 놓여있다”며 “그럼에도 사내하청업체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는 (공항철도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작업 당시, 야광반사판 등의 보호장구를 갖추지 못한 상태로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사내하청업체를 관리해야 할 공항철도 측의 안전관리 소홀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정광호 대변인은 “안전관리 소홀에 대한 비판은 무조건 피할 수 없으며 공항철도에 도의적 책임은 물론이고 민형사상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선로 유지보수 ‘외주화’ 문제

이미 공공부문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외주화와 그로 인한 사내하청 문제 역시 이번 참사를 부추기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철도의 핵심 업무인 선로의 유지 보수 작업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외주화되면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사고를 일으키며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정광호 대변인은 “역, 관제시설, 운전자, 선로작업자가 서로 긴밀하게 소통하지 않으면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선로유지보수 업무를 이런 유기적인 구조 속에서 빼내 외주도급을 해 결국 통합적인 운영시스템이 무너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이번 사고는 노동자와 승객의 목숨을 담보로 해서 수익성을 추구하는 파행적인 경영방식이 어떤 비극을 낳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원하청 구조 문제 역시 노동자들의 안전 소홀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청업체는 원청인 공항철도와 기간제로 하도급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하청업체들이 재계약을 하려면 원청 기업의 무리한 작업요구에 무조건 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입찰 과정에서 하청업체들은 단가를 계속 낮출 수밖에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청은 이윤을 내기 위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뒷전으로 미루는 악순환이 거듭 되풀이 되고 있다.
정광호 대변인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원청사업자가 사내 하청회사, 그리고 노동자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어떤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상시적인 업무에 대해 외주용역을 금지해야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주장했다.
 

 

 

고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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