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99%다’ 구호 앞세워...우리나라에도 상륙

최근 미국 젊은 층을 중심으로 월스트리트 자본주의에 반발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9월 17일 청년 실업자 수십 명이 주코티 공원에 텐트를 치면서 시작된 이번 시위는 수천 명의 노조원들이 가세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처럼 미국 월스트리트의 과도한 이익 추구와 소득 불평등에 항의하는 반(反) 월가 시위가 미국 전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확산될 전망이다.

2011년 9월 17일.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가 월스트리트 근처의 작은 공원에 30여 명의 청년 실업자들이 모여 월가를 비판하는 구호를 외쳐댔다. 이들은 월가 금융사들의 최고 경영자들이 미국을 경제파탄의 위기에 빠뜨렸고 그 때문에 국가적 실업률이 높아져 자신들이 직장을 잃는 등 어려움을 당했는데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수백만 달러 이상의 퇴직금을 챙겨 떠나는 행태들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열심히 일했지만 잘 곳이 없다’

처음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타고 이들의 외침이 퍼져나갔다. 한 달 후 ‘We are the 99%’라는 구호를 앞세워 미국 최고 부유층 1%를 겨냥한 시위에 수많은 사람이 동참했다. 시위 소식은 국경을 넘어 전세계로 전해졌고, 마침내 10월 15일 80여개국 900여개 도시에서 동시집회가 열리는 세계적인 사건으로 발전했다.
현재 뉴욕 월스트리트 시위대 규모는 현재 2만 명 정도로 이들은 가재도구, 매트리tm, 싱크대 등 가재도구를 다리와 도로 주변에 설치하고 노숙을 하고 있다. 적어도 수개 월간 월스트리트를 점유해 탐욕스러운 월가의 정체를 밝히겠다는 취지다.
이들의 슬로건을 보면 ‘우리가 99% 일반 시민이다’ ‘윤리가 있는가?’ ‘열심히 일했지만 잘 곳이 없다’ 등 경기 침체로 고통 받는 미국 일반 소시민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이들은 “탐욕으로 더럽혀진 기존 질서를 바꾸어야 한다”는 모호한 슬로건을 중심으로 집결하고 있어 정치권과 기득권 세력들의 대처도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날개를 타고 미국 전역으로 확산된 점령 시위는 이제 ‘좌파의 티파티 운동’이란 말이 거론될 만큼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이들 시위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던 무정부주의자들까지 합류했지만, 미국의 주류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조직들의 지지를 받고 있어 쉽게 무시할 수준도 아니다. 또한 진보적 할리우드 스타나 좌파 지식인들의 지지 성명이 나오고 있어 정치권의 대처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번 시위는 미국의 정치지형을 뒤흔들 수 있는 파괴력 잠재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론과 겹쳐 미국에서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미국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은 점령 시위대가 강력한 결집력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개혁정책에 제동을 걸어온 보수적 유권자 단체 '티파티'에 견줄 만한 진보의 개혁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점령 시위의 위상이 미국의 정치지형을 뒤흔들 수 있는 변수로까지 부상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반자본주의’ 운동이라는 규정도 내려지고 있어, 21세기 미국에서 자칫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유행처럼 마르크스의 원저를 교양처럼 읽는 젊은 층들이 많아진 것도 이번 시위의 한 배경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에도 ‘금융가 점령 시위’ 일어나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움직임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뉴욕 금융가부터 시작됐던 시위가 이제 런던, 로마, 홍콩, 서울까지 확산되고 있다. 더욱이 지난 10월 15일은 불공평한 금융가에 맞서는 시민들의 ‘분노의 날’로 정해져, 세계 82개국 950개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로마에서는 시위가 점차 폭력 양상으로 바뀌어 시위로 인한 혼란이 일어났다. 두건을 쓴 화난 시위자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차를 불태우고 은행 물건들을 파손시켰다. MSNBC는 “이는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일어난 가장 격렬한 시위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시위가 이 같은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일부 사람들은 변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평화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일본 도쿄에서는 노소를 불문하고 시위자들이 평화롭게 시위했다.
영국의 증권거래소에 텐트를 치고 밤샘 시위에 동참한 영국의 벤 워커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다음에는 탐욕적인 금융가에 맞서고자 어떤 국제적인 연대가 생겨날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런던에서 있었던 시위에는 4천명이 참여했다.

금융자본이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리는 투기경영 방식집착
금융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는 미국월가와 다를바 없어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0월 12일 금융소비자 권리 찾기 연석회의와 금융소비자협회, 투기자본감시센터는 12일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5일 오후 2시 ‘여의도 금융가 점거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연석회의 등은 성명서를 통해 “금융의 정의를 되찾기 위해 금융소비자권리찾기연석회의, 투기자본감시센터, 금융소비자협회 등 시민사회 단체들은 금융자본 규제, 금융정책 및 관료 책임 규명, 금융 피해자 구제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시민단체는 “월스트리트에서는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에 분노한 미국 시민의 점거 투쟁이 한창이다”며 “금융자본이 단기간 고수익을 창출하고자 투기 경영을 해 피해자를 양산하는 상황은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또한 “금융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정의라며 금융자본의 탐욕 자체를 규제함과 더불어 이들과 결탁해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을 저지르고 사욕을 채우는 금융 관료를 엄벌하고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금융회사들이 고수익 창출에만 몰두하지 말고 자본 중계와 같은 금융의 합리적 순기능에만 충실하도록 금융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금융자본이 더는 금융기관을 사유화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투기자본감시센터, 금융소비자협회, 참여연대 주도로 구성된 금융소비자권리찾기 연석회의는 실제로 10월 15일 오후 1시에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정문에서 월스트리트가 식 금융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와 금융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개혁을 촉구하는 시위를 감행했다.

정치집회로 바뀐 모습 아쉬움으로 남아

또한 3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99%의 행동준비팀’의 주도로 ‘1%에 맞서는 99%, 분노하는 99% 광장을 점령하라. Occupy 서울 국제 공동 행동의 날’ 집회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날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여의도 집회는 30여 명의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과 외국인 유학생 등 6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투기자본 반대, 론스타 처벌 등 글로벌 투기자본의 폐해를 지적하고 금융공공성 회복에 금융감독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하는 시위가 차분히 벌어졌다.
이날 시위 장소에는 KT노조와 부동산 피해자들 등이 일부 함께 참가했지만 집회 행사의 진행과 주관은 금융소비자협회와 투기자본감시센터로 구성된 주최 측에 의해 비교적 질서 있고 차분하게 진행됐다.
그런데 오후 6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진 시위에는 투기자본 문제, 반자본주의, 한미 FTA 반대, 이명박 정권 타도 등 갖가지 주제와 입장들이 일시에 쏟아져 나와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주최 측 행사진행본부에서 월가 금융자본에 대한 성토와 한국 금융시스템의 공공성 회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와중에 200여 명의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조직원들이 빨간 색 유니폼을 입고 한미 FTA 반대를 외치며 가두행진을 시도하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저축은행, 대형 건설사, LH공사 등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서민들이 시위에 열중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99%의 행동준비팀 관계자는 “한미FTA 반대, 건설피해자, 금융 개혁 등의 목소리 모두 미국을 대표로 하는 월가 식 자본주의에 의해 한국에서 발생한 99%의 사람들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모두 연대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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