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쌓였던 불교계 내부 불만 ‘폭발’...정부와 대립각

[시사포커스=권현정 기자] 불교계가 드디어 현 정권에 등을 돌렸다. 예산안 강행처리 과정에서 템플스테이 지원 예산이 삭감되면서 이명박 정부와의 대화와 소통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템플스테이 지원 예산의 삭감이지만 그간 현 정부와 불교계와의 갈등은 계속돼왔다. 한나라당은 민감한 종교 문제로 당 안팎으로 비판여론이 비등하자 당황하는 눈치다.

실세들의 예산이 대거 확보된 데 비해 서민 복지 예산이 전액 삭감되거나 누락되고 불교 지원 예산도 크게 줄어 한나라당은 고흥길 정책위의장이 사퇴하고 후속대책을 세우는 등 사태 진화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당·청간의 관계 재정립’ 및 ‘지도부 인책론’ 등이 불거져 나오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 정부와의 전면전 선포


지난 13일 대한불교 조계종은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서를 통해 정부와 한나라당 규탄에 따른 배경 설명과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총무원 대변인인 원담 스님은 이날 “마치 불교계가 템플스테이 예산 축소만을 문제 삼는 것처럼 잘못 인식될 여지가 있어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충분히 배경 설명을 드리고 또 앞으로의 방향을 말씀드리고자 한다”며 현 정부 들어 그간 쌓여온 불교계 내부의 불만과 갈등의 원인을 설명했다.

템플스테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개최될 당시 부족한 숙박시설을 보충하기 위해 도입됐다. OECD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관광 상품 중 하나로 한나라당은 수차례 불교계와의 만남을 통해 템플스테이 예산을 약속해왔다.

지난 11월 여야 공동으로 개최된 ‘템플스테이 발전을 위한 세미나’에는 김무성 원대대표를 비롯한 정병국 문방위원장, 김형오 전 의장 등 한나라당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공개적으로 템플스테이 예산을 약속하기도 했다.

특히 봉은사 직영사찰 문제로 불심을 자극했던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지난 7월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을 예방하는 자리에서 템플스테이 예산 지원을 약속한 것도 반발의 불씨가 됐다.

정부는 2002년부터 템플스테이를 전략적 관광 상품으로 지정해 지원해 왔고 올해만 185억 원이 지원됐다. 내년도 예산안도 문화체육관광부는 템플스테이 예산을 109억 원으로 책정했다가 여야 합의를 통해 다시 올해 수준인 185억으로 재조정했다.

하지만 지난 8일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강행처리하면서 이와 관련한 예산을 122억5000만원으로 줄여 처리함으로써 불교계가 전면전에 나선 결정타가 됐다.

원담 스님은 13일 성명서를 통해 현 정권에 대한 규탄 배경을 ▶ 정부와 한나라당이 이제 국민과의 소통, 서민의 어려움을 보살피는 책무를 포기했기에 존중할 수 없다는 것 ▶ 대화와 토론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오로지 힘으로만 밀어붙이겠다는 정부와 한나라당의 오만에 인식의 변화가 없는 한 더 이상의 소통과 대화의 상대로 삼지 않겠다는 것 ▶ 정부와 여당은 민족 문화 선양을 종교에 대한 특혜를 주는 식으로 다루고 있어 이에 공정성을 담보해야 하는 정부 여당으로 간주할 수 없고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것 등 크게 세 가지로 축약해 설명했다.

총무원은 이와 관련해 “지금 우리사회는 연평도 포격이후 극심한 남북 긴장에 국민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경제적 격차로 인해 서민들의 생활이 극히 어려운 상황이다. 아울러 4대강 문제 등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으로 사회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총무원은 “우리사회의 당면 과제는 외면한 채 4대강 사업 강행이라는 목적으로 한나라당이 단독 처리한 예산안의 실태는 우리 서민들의 삶을 더욱 질곡으로 밀어 넣고 있다”고 말하며 “영유아 예방접종비, 산모신생아 도우미지원비, 보육시설 관련 예산,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지원 예산 등이 모두 삭감되었다.

이는 정부와 한나라당이 국민들의 삶과 미래를 위한 투자를 포기했다는 증거”라고 현 정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계종은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도 반대 입장을 천명하며 더 이상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총무원은 “어렵지만 함께 해법을 찾기로 동의하고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이었다”고 밝힌 뒤 “원희룡 사무총장은 합의 이전에는 국회 예산안 처리를 미루겠다고 약속했다. 협의 장소에서는 이런 약속을 해 놓고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관련 예산과 법안을 처리했다”며 현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해 조계종은 “향후 정부와 여당의 지원을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문화재를 관리해 나갈 계획”이라 밝혔다. 이와 함께 여권 인사들의 절 출입을 엄격히 차단하고 전국적으로 규탄 현수막을 사찰에 게시했다. 또 4대강 및 정부 규탄 법회를 전국적으로 여는 등 현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현 정권과 불교계 그간의 갈등


현 정권과 불교계 간의 갈등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4년 5월 이 대통령이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서울시 봉헌’ 발언을 시작으로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정부의 교통정보 시스템에 사찰표기가 누락되고 2008년 당시 어청수 경찰청장이 기독교 집회 포스터에 등장하는 등 정권 차원의 종교 편향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이어져 왔다.

지난 3월에는 명진 스님에 대한 안상수 원내대표의 ‘좌파 주지’ 발언이 문제가 되면서 봉은사 직영사찰 ‘외압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안 대표는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과의 만남에서 명진 스님을 ‘좌파 주지’로 규정하면서 교체를 건의해 문제가 됐다.

이에 명진 스님은 언론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폭로하고 정권 차원의 연계 가능성을 제기하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당시 명진 스님은 이와 관련해 “봉은사 직영 문제는 종단과 정치권력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이 개입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갈등의 원인은 현 정부 들어 종교 편향이 심화된 데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소망교회 장로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을 하게 되면서 같은 교회 출신의 인사들을 영입하면서 집권 초기에는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 내각’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또 정부와 대구시가 1200억 원을 투입해 조성하려던 대구 팔공산의 불교 테마공원이 좌절된 것과 KTX 울산역의 ‘통도사’ 역명 부기 삭제 등의 문제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더구나 ‘4대강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인근의 사찰과 문화재 훼손의 우려로 불교는 종단 내부의 많은 스님과 사찰이 4대강 사업에 반대 입장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에서 현 정부와 불교계 간의 간극은 클 수밖에 없다. 그간 총무원은 종교적 차원에서 국론분열을 염려해 공개적인 행동은 자제해 왔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3일 조계사에서 열렸던 기자회견에서 총무원은 “우리종단은 (종교편향 행위)몰지각 행위에 대해 직접 대응할 경우 우리 사회에 큰 혼란과 갈등이 빚어질 것으로 판단해 최대한 직접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면서 “우리종단은 이를 정책적․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관련 제도와 정책에 대한 연구 조사에 이미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불교 스스로의 힘으로 사찰과 문화재를 보전해 나가겠다”며 “종단은 이명박 정부의 남은 임기동안 더 이상의 템플스테이 예산지원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불교적 방식으로 소박하게 사찰에 오는 손님들을 맞이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당내에서조차 ‘MB 레임덕’ 지적


이번 예산안 파동이 심상치 않자 한나라당 내에서도 지도부에 대한 비판과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고흥길 정책위의장이 사퇴하면서 조기 진화에 나섰던 한나라당은 ‘꼬리 자르기’라는 반발에 부닥쳐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MB의 레임덕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연평도 사태 이후 이명박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군의 부실 대응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미 권력누수현상에 대한 분석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최초 지시 문제로 김태영 국방장관이 석연찮게 경질된 것도, 국정원과 청와대의 불협화음도 이 같은 현상의 일면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지난 14일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이번 예산안 파동과 관련해 ‘2012년 총선 참패와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이 본격화 될 수 있다는 우려에 ‘절실히 느끼고 있다’라고 답해 당내 위기감을 전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지난 13일 열렸던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예산안 파동과 관련해 과거 YS정권의 몰락을 거론하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제부터라도 이명박 정부가 성공을 하고 다시 96년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사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매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춘석 대변인은 지난 13일 브리핑을 통해 “최소한의 사죄도 없이 국회심의도 빠른 집행, 예산도 빠른 집행, 무조건 4대강 속도전을 향해 내달리는 대통령께 엄중히 경고한다”면서 “국민과 야당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대통령의 일방적 속도전은 반드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속도전을 내세운 대통령은 레임덕도 속도전만큼 빨리 올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말하며 조기 레임덕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불교 수난시대


그 동안 4대강 논란으로 현 정부는 불교와 천주교 등 끊임없이 종교계와 갈등을 겪어왔다. 최근 어물쩍 봉합된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 문제도 명진 스님이 4대강과 정부 정책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표적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5월에는 경북 지보사의 문수스님이 4대강 공사 강행에 반대해 분신을 시도, 입적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기에 4대강 개발에 따른 천주교와의 갈등도 계속 불거지고 있어 상황은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다.

지난 3월 천주교 주교회의는 4대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이후 시국선언과 반대집회 등으로 꾸준히 반대의 목소리를 키워왔다.

이 와중에 지난 8일 정진석 추기경이 “주교단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내부 논란이 이는 등 천주교는 한동안 내홍을 겪었다. 당시 사제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 추기경의 발언을 문제 삼아 추기경의 용퇴를 촉구했다.

이 외에도 지난 15일 밤 부산 범어사 천왕문 화재 사건이 방화에 의해 발생된 것에 대해 불교계의 시름은 깊다. 고의로 발생되는 화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에는 경남 진주에 소재한 성전암이 기독교 신자에 의해 방화, 소실됐고 지난해 12월에는 여수 향일암이 불에 타 대웅전이 전소됐다.

이번 범어사 화재 사건은 그 전에 이미 부산 범어사가 자리하고 있는 금정산에 원인모를 화재가 계속된데다가 범어사가 소장하고 있는 큰북도 누군가에 의해 찢겨져 범어사 측은 예고된 방화로 보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불교계의 수난은 끊이지 않았다. 정부와의 갈등도 계속 이어졌다. 4대강에 반대하는 스님이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원인모를 화재가 잇달았다. 또 경찰이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을 검문해 불교계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잘 운영되고 있는 사찰이 직영으로 바뀌면서 내분이 일기도 했다.

그동안 현 정부의 사과와 관련 인사들의 방문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듯 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최근 ‘대화’와 ‘소통’의 중단이라는 불교계의 초강경 대처에 여권은 당황해하며 사태수습에 나서고 있지만 그간 쌓여온 불교계의 불만이 쉽게 누그러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 정부가 이제껏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후속대책을 내놓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불교계 내부에서는 여당의 이 같은 행보가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정치적 속셈일 뿐 진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평가했다.

조계종은 ‘산문 폐쇄’에 이어 주요 일간지에 정부를 규탄하는 광고를 싣는 등 강경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이대로 갈등이 지속된다면 반환점을 돈 이명박 정부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레임덕을 거론하고 있다. 여기에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조차 이 같은 종교계와의 갈등에 우려를 표명, 민심 이반과 레임덕의 가속화를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 정부가 2천만에 육박하는 불심을 어떻게 달래고 되돌릴지, 향후 불교계의 대응은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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