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파열음 ‘친이계’


[시사포커스=권현정 기자] 연일 쏟아지는 이슈와 현안들로 정치권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때론 같이, 때론 각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대치하는 상황이 연속되고 있다. 기업의 비자금 수사로 촉발된 검찰의 수사가 결국 정치권으로 집중되면서 민간인 사찰, 대포폰, 개헌, 감세 철회, 청목회 로비 의혹까지 사안의 중대성만큼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광범위한 수사로 여당 의원들도 타격을 입은 만큼 한나라당 내에서는 자성과 신중론에 대한 의견도 일부 제기 되고 있지만 사안별로 당⋅정⋅청간의 불협화음이 종종 언론에 비쳐지면서 당 분열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집권 초기 계파 갈등으로 내홍을 겪은 한나라당은 친박계와 친이계로 나눠져 각기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친박계 의원들이 박근혜라는 구심점을 중심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친이계 의원들은 모래알처럼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 안팎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친이계.

친이계를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는 ‘분열 양상’은 표면적으로는 봉합이 되는 듯 보이지만 꺼지지 않는 불씨로 여전히 남아있다. 최근 감세 철회 문제로 청와대와 여당의 입장이 엇갈린 상황에서 안상수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가 감세 유지와 일부 조정론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감세를 둘러싼 당 내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정두언⋅김성식 의원 등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여전히 소득세와 법인세의 감세 철회를 주장하고 있어 당 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감세 철회를 둘러싼 내부 파열음


지난 17일 이명박 대통령은 안상수 대표와의 조찬회동에서 “정부의 기조는 낮은 세율, 넓은 세원이다. 이 기조를 유지하면서 당에서 조속히 (감세 문제에 대한)결론을 내주면 좋겠다”면서 공을 당 쪽으로 넘겼다. 감세는 시장과 자유를 중시하는 MB정부의 상징적인 정책이지만 감세로 인한 세수 감소는 정부의 정책 집행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감세를 철회할 경우 고소득층의 반발과 지지 세력의 이탈, 이로 인한 조기 레임덕의 가능성 등이 예상되면서 청와대 쪽에서도 결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박 전 대표가 소득세의 최고세율 유지와 법인세의 감세를 언급하면서 ‘분리 철회’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 날 안상수 대표도 법인세 인하는 예정대로 추진하되 소득세는 기존 최고구간 8800만원보다 높은 1억 원이나 1억2000만원 구간을 신설해 현행 세율 35%를 그대로 적용하자는 방안을 내놨다.

이 같은 여당의 감세 철회론은 최고세율에 국한된 것으로 야권의 ‘부자 감세론’에 대한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22일 정책 의원총회를 통해 결론이 나겠지만 정두언 최고위원과 개혁성향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의 개혁⋅소장파 의원들은 다수 법인세와 소득세 모두 철회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민본 21’과 ‘통합과 개혁’ 등의 개혁⋅소장파 의원들이 감세 정책과 관련해 당내 의견 수렴을 위해 김무성 원내대표에게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한 바 있다. 박준선, 권영진, 김정권 의원 외 42 명의 의원들은 ‘감세 철회’에 대한 당 지도부와 청와대의 감세기조 유지 원칙에 “당 지도부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의원들은 “중요한 정책결정과 논란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내에서 국민들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의 의원총회 과정을 거쳐 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올바른 결론 도출을 위한 토론과 논쟁을 제안했다. 이들은 당의 혼란과 국론분열 등으로 논란이 됐던 세종시 문제를 거론하며 혼란의 사전 차단을 위해 대화와 토론의 민주적 절차를 통한 문제의 해결을 요구했다.


비판에 앞장선 정두언, 친이계 분열 양상 왜?


친이 직계인 정두언 최고위원은 MB의 집권을 도와준 일등 공신 중의 한명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퇴임한 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개인 사무실을 얻어 만든 초기 선거캠프,‘안국포럼’ 의 일원이다. ‘안국포럼’출신들은 경선 캠프에서부터 궂은일을 도맡으며 MB의 당선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정두언 최고위원은 안국포럼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힌다.

당내 안국포럼 출신으로는 정두언, 정태근, 김용태, 백성운, 권택기 의원 등이 있다. 친이 직계이면서 사찰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정두언 최고위원은 지난 8월 민간인 불법사찰의 배후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을 지목하면서 갈등이 불거져 최근까지도 권력 상층부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정 최고위원은 “요즘 검찰과 정부가 하는 일이 거의 국민을 농락하는 수준”이라며 검찰과 정부를 싸잡아 비난했다. 그는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마치 30년 전으로 돌아가 있는 듯 한 착각마저 들면서 그때도 우리 정치인이 이토록 무기력하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정 의원이 언급한 칼럼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검찰의 부실 수사를 지적, 대포폰에 대한 비판의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정 최고위원은 “세상에 적당히 넘어가는 일은 없다”면서 “적당히 넘어가는 것 같지만 차곡차곡 쌓여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뼈있는 발언을 했다. 당장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적당히 넘어가다가는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정권재창출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감세 논란과 관련해서도 정 최고위원은 비판을 이어갔다. 법인세의 감세기조는 유지하되 소득세 부문에서 감세를 철회하거나 일부 조정하자는 방향으로 당내 감세 논란이 수습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당 내 정두언⋅김성식 의원 등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세수가 많은 법인세를 제외하면 실제 효과는 미미하다고 평가, 소득세와 법인세 모두 감세를 철회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이와 관련해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이 “감세철회는 이 정부의 정책기조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두고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고 발언하면서 백용호 정책실장을 비판했다. 그는 “최고 구간에 대한 감세는 2013년부터 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니까 이 정부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최고 구간에 대해서 감세를 철회해 놓고 있는 셈”이라며 “감세철회가 정책기조에 안 맞는다니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정책기조에 따라서 당장 최고 구간에 대해서도 감세를 하도록 온갖 노력을 다 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청와대 정책실장이 왜 그것은 안 하면서 이 정부가 아닌 다음정부 일에 대해서 감놔라 콩놔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분명 상황에 대한 몰이해가 아니면 과잉 충성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 외 정 최고위원은 지난 11일 ‘민본 21’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었던 ‘친서민 정책 중간 점검과 진단’이라는 주제의 정책 간담회에서 감세와 규제완화를 중심으로 성장 위주의 정책을 추진해온 강만수 대통령실 경제특별보좌관을 “갑자기 죽이고 싶어졌네”라며 강도 높게 비난한 바 있다. 이 같은 발언이 논란이 되자 이후 정 최고위원은 “경제성장률의 하락 그래프를 보고 강만수를 죽이고 싶어하겠네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사안 별 불협화음


지난 15일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광진구 건국대 산학협동관에서 열린 초청강연에서 ‘대포폰 논란’과 관련해 “검사들이 눈치를 보니 대한민국이 엉망이 됐다”며 관련 수사의 재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대포폰 의혹이 터졌으면 부끄러워서라도 당장 수사를 하겠다고 해야 하는데 장관이란 사람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수사를 안한다”며 “그것을 수사라고 한 것이냐. 어린애가 해도 그 정도는 한다”고 검찰의 부실 수사를 꼬집어 비판했다.

홍 최고위원은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도 유감을 표현하며 “우리가 안 된다고 하는데도 해버려 어떻게 할 수 있겠냐”며 당⋅청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함을 시인했다. 이어 “행정부에서 말을 안 들으면 도리가 없다”고 말해 정부와도 불협화음이 이뤄지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에게 권한이 꽤 있는 것 같지만 해먹기 어렵다”면서 총체적인 난국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 11일 ‘민본 21’이 열었던 정책 간담회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소장파 의원들은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은 진정성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근본적인 체질 강화를 위해 친서민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날 참석한 다수의 의원들은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보금자리주택,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전문계 고교의 교육비 전액지원 등 소위 친서민 정책들이 “즉흥적이고 체계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의원들은 정부의 보다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외에도 여야가 얽히고 설켜 민감한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일명 청목회)의 ‘입법 로비’ 의혹 수사는 여권 내에서도 검찰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크다. 현역의원 11명에 대한 압수수색과 공식 계좌를 통해 받은 소액의 후원금까지 수사가 이루어진 것에 대해 여권 내에서도 ‘과잉 수사’라며 검찰에 대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친이계 뿐 아니라 당 내에서는 검찰의 과잉수사에 볼멘소리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은 지난 7일 브리핑을 통해 “검찰이 11명의 의원에게 사전 자료제출을 요구하지도 않고, G20 정상회의라는 국가 대사를 앞둔 상황에서 압수수색을 펼쳐 파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는 것이 당 지도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개헌과 관련해서는 친이계 쪽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며 공론화에 앞장서는 모습이다. 하지만 당 내는 물론 야권 까지 현 시점에서의 개헌은 어렵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현 시점에서 개헌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견을 밝힌 바 있다.


잠재하고 있는 분열의 도화선


최근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총리실 불법 사찰 문제를 놓고 한나라당 친이계 내부에서는 지난 8월 이상득계와 정두언계 간의 갈등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불법 사찰의 피해자로 여러 차례 언급이 된 수도권 친이계 정두언, 남경필, 정태근 의원 등은 불법 사찰의 배후로 이상득 의원과 그의 측근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을 지목했다.

정태근 의원은 “이상득 의원이 불법 사찰이 이루어진 것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이상득 의원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와 함께 이상득 의원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줄 것을 요구했다.

부인의 사찰 문제로 각을 세웠던 남경필 의원은 “선출되지 않고 임명된 사람들이 사조직을 만들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하며 청와대의 주변 인물들을 비판했다. 당시 이상득 의원은 불법 사찰의 배후로 지목된데 대해 “싸우기 싫다”며 일체의 대응을 자제했다. 하지만 이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잘못이 있으면 법에 호소하면 된다”며 관련성을 우회적으로 부인했다.

이와 관련해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낙마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친이계 소장파 의원들은 다시 충돌했다. 불법사찰의 배후로 이상득 의원이 지목된 것에 대해 청와대가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추천은 소장파가 한 것 아니냐”며 반격에 나서자 정두언 최고위원은 “추천은커녕 의견조차 보낸 적 없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당시 정두언 의원과 남경필 의원은 “청와대가 고위관계자의 사찰을 정당화하면서 앞으로 사찰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냐, 협박하느냐”며 청와대를 맹비난했다. 당시 소장파들의 반발이 거세지며 문제가 커지자 중진 의원들이 중재에 나서는 등 봉합에 안간힘을 썼고 야권에서는 이상득-박영준 라인의 검찰 수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논란의 중심점, 친이계. 구심점이 없다


당 내에서 사안 별로 꾸준히 이슈를 만들거나 논란을 잠재워 왔던 친이계. 정두언 의원이 전면전에 나서며 판이 갈리기 시작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정권 창출과 국정 운영에 든든한 배경이 됐던 친이계는 분열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조갑제 월간조선 전 편집장은 지난 8월 29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김태호 전 지사의 낙마로 이대통령은 2012년 대권에 대한 구상에 차질을 빚게 됐다”며 “친이 세력도 새로운 구심점을 찾아 분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친박계는 박근혜의 대권 도전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음으로 내부 결집이 견고해지고 있는 반면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당선으로 목표를 상실한 친이계는 이명박 정부의 집권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정처 없이 떠도는 지지멸렬한 양상이다.

이제껏 미뤄온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됨으로써 청목회 수사, 개헌, 대포폰 수사 외 예산안 심의, 4대강 사업 등 쏟아져 나오는 현안들로 친이계를 주축으로 당 내 입장차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민간인 불법사찰을 계기로 친이계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대로 친이계의 분열이 가시화된다면 차기 대선에 중대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진행될 사정정국 속에서 친이계의 움직임이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볼 일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