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사각지대’ 노출된 결혼이주여성 실태 고발

[시사포커스=조은위 기자]결혼이주여성의 잇따른 죽음에서 한국사회가 보인다.
경찰신고 하나마나, ‘가정불화’로 치부...‘남편이 잠든 뒤에야 겨우 잠들 수 있다’
다문화센터가 있어도 별 도움 안돼...결혼이주여성 취업도 힘들어 경제적 어려움 호소

▲ 지난 7월 8일 남편에 의해 살해된 베트남 이주여성 고탓티황옥씨의 결혼사진
한국사회는 국제결혼이주를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가 급속해지면서 ‘다문화 사회’가 가속화 되고 있다. 또한 정부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면서 다문화 가정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국제결혼 이주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9월 15일 새벽 전라남도 나주에서 몽골 이주여성 강 체첵(26)씨가 한국인 Y(33)씨의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탓티황옥씨가 입국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은 지 겨우 두 달여 만에 일어난 사건이어서 더 충격을 주고 있다.
일련의 결혼이주여성의 죽음은 남편의 ‘가정폭력’과 ‘정신병력’이 주원인이 되고 있다. 더구나 한국사회에서 가정불화나 폭력은 집안일이라는 통념이 우세해 경찰조차도 개입의지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주여성은 사회적 지위로 인해 폭력에 더 쉽게 노출되고 더 저항할 수 없게 되기 쉽다. 2007년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다문화가정의 아내폭력발생률은 38.8%로 전체 아내폭력발생률 33.1%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에 본지는 가정폭력에 노출된 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제결혼이주여성 사라(가명, 43)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난 4일 대화역에서 만난 ‘사라(가명, 43)’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모두 가린 채였다.
본지 기자가 다가가자 사라는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 왔다.
사라는 16년 전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초창기 결혼이주여성이다.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사라는 대형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이때 만난 일본 여성에 의해 통일교회를 다니게 됐고 교회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다. 처음 교회를 갔을 당시, ‘결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사라는 남편과 1년 동안의 약혼기간 동안 자신에게 잘해주는 남편의 모습에 결혼결심을 하게 됐다고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남편을 잘 몰랐기 때문에 두려움도 없었어요. 그리고 남편이 워낙 제 앞에서는 술과 담배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라고만 믿었죠.”
필리핀에서 대학생활을 즐기기에도 부족할 어린나이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힘겨움의 연속이었다고 털어놨다.
사라는 “1년의 약혼기간 동안 잘해주기만 했던 남편은 한국으로 와 내가 임신 7개월이 지나서부터 변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사라에 따르면 남편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신다고 한다. 일이 없는 날은 하루 종일 방에 틀어 박혀 술을 마시며 사라에게 폭언을 일삼기가 일쑤라고 했다.
또한 사라는 술을 마신 남편과 말싸움을 벌이다가 남편의 주먹에 머리를 얻어맞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주먹으로 맞아 부어오른 이마를 사진으로 찍어 놨다고도 했다.
사라는 “친구에게 보내려고 찍은 건데 아무래도 나중에 증거가 되지 않을까 해서 찍어 놨어요. 남편은 이 사진이 있는 것을 모른다”며 남편에게 폭행당한 사진을 기자에게 내밀었다.
사라에게는 15살 된 딸아이와 12살의 아들이 있다. 사라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아이들이다.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 해가 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
사라는 “아이들이 한창 예민한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혹시나 삐뚤어질까봐 제일 걱정이예요”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어 아이들 때문에라도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방치된 가정폭력이 죽음 부른다’

사라는 뉴스에서 연일 보도되는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뉴스는 자신뿐만 아니라 같은 이주여성들에게도 충격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라는 자신도 아이들과 함께 남편에게 무슨 일을 당할까봐 밤에 잠을 쉬이 못 이룬다고 털어놨다. 또한 매일 이어지는 남편의 폭언으로 인해 심장병이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사라는 “남편에게 폭행당했을 때 경찰에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이 가정불화라고 생각해 어떤 제제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사라는 “주위에 시선은 항상 ‘여자가 뭘 잘못했기 때문에 싸우게 된다’라고 말한다”며 싸움의 원인을 단순하게 여자의 책임으로만 돌려버리는 한국사회를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아내폭력발생률은 33.1%로 집계 됐다. 또한 한국여성의전화가 2008년 한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된 여성의 수가 7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살인 시도가 미수에 그쳐 살아남은 7명과, 자녀나 부모 등 지인이 살해된 경우인 16명까지 합해 총 93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는 ‘보도된’ 사건만 집계한 것으로 실제 희생된 여성들의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내국인 아내에 대한 폭력도 예방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은 더 심각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사라의 경우 같이 결혼이주여성폭력에 대한 피해자 보호와 가해 방지를 위한 제도적 노력은 거의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가정폭력을 단순한 가정불화로 치부해 경찰조차도 개입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더욱 큰 문제다.
지난 9월 17일 벌어진 몽골 출신 결혼이주여성 강 체첵씨의 죽음 또한 이주여성동료의 남편의 폭력 때문에 발생했다.
따라서 이번 강 체첵씨의 죽음은 아내폭력 방치가 내국인 여성보다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주여성에게는 생명도 위협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경고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사라도 결혼이주여성의 죽음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자신의 일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사라는 “남편이 술을 먹는 날은 집에서 숨죽인 채 아이들과 있어요. 그리고 남편이 술에 곯아떨어질 때서야 잠을 청할 수 있죠”라며 힘겨운 생활을 털어놨다.
또한 사라의 말에 의하면 술에 중독된 남편에게 상담을 받아보게 하려고 다문화 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라가 이미 오래전에 한국국적을 취득했기 때문에 상담지원에서 제외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사라는 “내가 한국국적을 취득해 국적상으로는 한국 사람이 맞지만 엄연히 나는 결혼이주여성에 속하는데 상담을 받을 수 없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사라는 남편의 알콜중독에 대한 상담을 받고 싶어도 마땅히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사라는 본지 기자에게 남편의 시동생이 몇 일전 자살을 했다고 털어놨다.
원인은 알콜중독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라는 남편이 술을 먹는 것이 가족 내력과 연관이 있다고 의심했다.
사라는 자신의 어려움을 도와줄 도움이 절실하지만 돌아오는 건 사라에게 참으라는 말뿐이었다고 한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지원 부족, 편견도 여전

사라는 “요즘 다문화 정책이 많이 지원되면서 한글을 배우는 지원센터가 많이 생겨나는 것은 좋지만 그 이외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지원이 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처음 사라가 한국에 왔을 당시만 해도 한국말을 혼자서 공부해야 했지만 지금은 다문화지원센터가 있어서 한국말은 어느 정도 배우는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라는 혼자서 배웠던 한국말을 이제는 다문화지원센터에 가서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지원은 한글 말을 배우는 것에서 그친다고 사라는 주장했다. 실질적으로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가령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취업알선이나 폭력상담 등에 대한 지원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라는 “폭력상담을 받고 싶어도 지원대상이 아니라는 말과 참고 살라는 말 뿐이지 전혀 도움이 되고 있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라는 현재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사라의 남편은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꾸준히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자신이 대학을 다니다가 시집을 왔기 때문에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도 필리핀 사람은 채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라는 “꾸준한 일을 하고 싶어도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취업은 하늘에 별따기와 같다”고 취업에 대한 걱정을 토로했다.
특히 결혼이주여성의 취업은 날로 힘들어 지고 있는 상황이라 사라의 걱정은 커지고 있었다.
취업의 어려움 뿐만아니라 사라는 한국사람들의 따가운 편견도 견디기 힘든 점이라고 고백했다.
한국에 와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었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사라가 제일 먼저 대답한 부분도 이점이었다.
처음 한국에 와서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친구도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가운데 주위의 차가운 시선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사라는 “한번은 우리 큰아이와 옆집 아이가 놀다가 다툰 적이 있는데 아이들 싸움이 어른싸움으로 번졌다. 그 과정에서 경찰이 출동까지 했고 옆집 아줌마는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말로 나를 윽박질렀다”며 녹녹치 않는 한국생활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사라는 필리핀에 두고 온 가족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라의 부모님은 사라가 한국으로 시집 온지 5년 만에 돌아가시게 됐는데 그때 사라는 출산을 한지 1주일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전화통화상으로 아픈 줄만 알았지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출산한지 1주일도 안 돼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어렵게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큰언니가 암말기 환자여서 언제 볼지 모를 큰언니 얼굴을 꼭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인터뷰 내내 밝은 모습이었던 사라는 한숨을 깊게 쉬며 지난 16년 동안의 겪었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얘기 해본다며 눈물을 보였다.
두 달 전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탓티황옥씨의 죽음 이후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는 있지만 결혼이주여성이 체감하는 도움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 사라의 주장이다.
늘어가는 다문화 지원센터가 있어도 정작 다문화 가정의 불화와 폭력에는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라가 지금 절실히 원하는 것은 남편과의 이혼이다. 자신 또한 언제 남편에게 끔찍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슴 졸이며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탓티황옥씨의 죽음이후 정부와 언론의 관심으로 ‘국제결혼건전화와 결혼이민자 인권보호 강화대책’에 대한 종합대책이 나왔지만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나주에서 발생한 강 체첵씨의 죽음이 바로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사라의 말처럼 죽음을 부른 다문화가정의 폭력에 대한 예방과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