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문화유산들 관리 ‘소홀’로 세계문화유산 목록서 삭제…종묘·하회마을 등 철저한 관리 시급

유네스코, ‘아리랑상’ 폐지…정부관리 소홀 지적
세계문화유산 목록서 삭제된 獨 ‘엘베 계곡’ 답습?


[시사포커스=양민제 기자] 지난해 유네스코는 2004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계곡’을 5년 만에 세계유산목록에서 삭제시켰다. 당시 유네스코 측은 현대적 다리 건설로 기존에 엘베계곡이 갖고 있던 보편적 가치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세계유산 삭제의 결정적 이유를 밝혔다.

이 다리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만해도 엘베계곡은 19세기 낭만주의 건축 경관을 지녔다는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독일이 ‘엘베강의 다리’를 건설 한 것이 문제가 되어 엘베계곡은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된 최초의 유산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러한 독일의 사례는 남의 일만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 중 일부가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등재된 하회마을도 4대강 사업 등으로 그 가치에 대한 훼손 우려가 재론되면서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시사신문>은 문화계 전문가들을 만나 국내 문화유산의 관리 소홀 실태에 대해 들어봤다.

 

유네스코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등 훼손 우려가 높은 세계유산에 대해서 해당 국가에 관리 강화를 권고하고 있다. 더불어 유네스코는 페루의 ‘찬찬 고고유적지대’ 등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아 같은 연도에 ‘세계유산’목록과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목록에 함께 이름을 올려놓은 상태다. 이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이후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는 유산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하회마을, ‘獨 엘베계곡’ 답습?

지난 7월31일(현지시간) 유네스코는 하회-양동마을이 전통 건축물의 배치 방법 및 전통적 주거문화가 조선시대의 유교적 양반문화를 잘 보여준다며 등재를 확정했다. 이 중 낙동강 상류 지점에 위치한 하회(河回)마을은 ‘물돌이동 마을’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는 낙동강 줄기가 ‘S’자를 그리며 하회마을을 태극모양으로 감싸고도는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이러한 하회마을의 경관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4대강 사업이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낙동강 보설치 등 4대강 사업이 하회마을 고유의 경관을 훼손시켜 독일 엘베계곡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정부는 당초 4대강 사업에 따라 하회마을 앞에 ‘하회보’ 건설을 추진 했었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은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하회마을 위쪽에 ‘영주댐’의 아래쪽에 ‘구담보’가 설치되면 낙동강의 흐름이 변해 강변의 모래톱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처럼 시민단체 등이 하회마을 훼손 가능성을 주장하고 나서자, 정부는 하회보 설치 계획을 접었다. 그런데 하회마을의 유네스코 등재가 확정이 된 이 후 정부는 하회마을만을 제외한 주변 지역에서 준설작업 등 여전히 4대강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하회마을 인근에서는 준설공사 등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사진 :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제공)

이에 대해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과거 조상들은 물돌이동 지리적 형세를 명당자리로 꼽았을 만큼 물돌이동의 가치는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4대강 사업으로 하회마을의 물돌이동 형태와 모래톱이 유실돼 마을경관을 해칠 것이다”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자마자 삭제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황 소장은 “우리 몸의 피는 혈관을 타고 굽이굽이 다니면서 산소와 유기물을 구석구석 공급한다”고 전제하고, “강도 마찬가지다. 강도 굽이굽이 돌며 주변 유기물을 운반 공급한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을 하면 강이 일직선이 되기 때문에 물이 빨라져 주변 유기물을 공급할 겨를이 없다. 결국 환경도 파괴되고 하회마을의 물돌이동 경관도 사라질 수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불안한 문화유산들

이는 하회마을 뿐만 아니다. 황 소장은 불안한 문화유산들로 종묘와 여주 영릉도 더불어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종묘 앞에 55~75m 높이를 가진 약 20여 동의 고층 건물 군락을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재개발 사업안이 문제라는 것.

황 소장은 “서울시의 사업안대로 종묘 앞에 건물군을 짓는다면 종묘에서 바라보던 하늘을 빌딩숲이 가리는 형태가 된다”며 “종묘의 경관이 바뀌어 그 세계유산 가치가 소멸할 위기에 봉착한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여주의 세종대왕릉인 영릉 근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영릉의 2km 문화재보호구역과 불과 700m 떨어진 곳인 남한강에서의 여주보 설치 등 4대강 사업이 한창이다. 영릉주변 경관이 크게 바뀔 것이다. 여주보 건설로 물이 차면 영릉과 30m만 이격돼 많은 양의 물이 영릉 밑으로 투입될 것이다. 이로 인해 안개가 발생될 것이라며 왕릉의 석물 피해가 걱정된다.”

황 소장은 제주칠머리당영등굿도 체계적인 관리 방안을 요하는 문화유산이라고 지적했다. 올해로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 등재 1주년을 맞이했지만 보존관리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대해 김윤수 제주칠머리당굿보존회 회장은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됐다고 해서 특별한 관리 체제가 구축된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관리 주체인 문화재청과 제주특별자치도의 전승관리 지원 형태가 유네스코에 등재되기 전후에 있어 별반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보존관리에 대한 지적을 받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또한 칠머리당(신을 모셔두는 당집은 없고 신위를 새겨 놓은 신석이 대신한다)은 본래 바닷가에 있었으나 항만 공사로 인해 현재 칠머리당굿보존회가 있는 사라봉으로 임시로 옮겨졌다. 임시로 옮겨진 지 20년이 지난 지금, 사라봉 칠머리당에 옮겨진 신석은 특별한 보호 시설 없이 일반에 노출돼 훼손우려가 높은 상태라고 한다.

김 회장은 “현재 칠머리당이 위치한 곳이 시민들의 산책코스로 이용되는 사라봉 공원지구다. 실제 산책객들이 칠머리당의 존재조차 몰라 신석 위에다 발을 올려놓고 등산화를 묶기도 했다. 현재는 훼손 우려 등의 문제로 당의 위치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문화유산에 대한 홍보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칠머리당영등굿 전용 홈페이지가 없어 섭섭하다는 의견을 들었다. 이에 홈페이지를 제작운영하려고 해도 현재 보존회는 사무국장 혼자 거의 모든 일을 준비 진행하기 때문에 여력이 없다. 인력을 충원하려해도 문제는 돈이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매달 지급되는 전승지원금과 공식 전승행사 때 주어지는 행사 지원금으로 보존회 및 행사를 운영하는데 어느 것 하나 만족할 만큼 지원되는 게 없다.”

그는 눈에 보이기 위한 관리홍보가 아닌 실질적인 이해가 수반된 관리홍보시스템 부재를 꼬집었다.

“특히 문화유산(영등굿) 홍보를 위해서는 단순히 알리겠다는 마음보다는 올바른 이해가 수반되어야한다. 일례로 2000년 국립국악원과 KBS가 공동 제작한 ‘한국의 굿 no.4 제주칠머리당굿’ 음반에서 굿의 재차 중 연유닦음(굿을 하게 된 연유를 신들에게 고해 올리는 대목)이 있었는데 'oil cleansing'으로 번역해 놨다. 그 문구에 대해 당시 담당자에게 수정을 요구했으나 판매품이 아닌 연구자들을 위한 비매품이므로 상관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김 회장에 따르면 최근 보존회 자체적으로 영등굿을 알리는 외국어 홍보물의 필요성을 절감해 제주굿에 대해 잘 알고 뛰어난 어학자들을 통해 일본어와 영문판으로 제작해 올해부터 배급을 시작했다.
 

‘아리랑상’ 어디 갔나?

유네스코의 ‘아리랑상’ 폐지도 우리 정부의 안일한 문화유산 관리홍보가 문제점으로 지적된 대표적인 사례다.
유네스코는 지난 99년부터 2년마다 수여해오던 ‘아리랑 상’을 지난해 폐지했다. 이에 대해 미래희망연대 김을동 의원은 문화재청이 시상소요행정비용 6만 달러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아리랑상’을 폐지시켰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소멸 위기에 있는 세계 각국의 ‘구전 및 무형유산’을 보존하는 데 기여한 단체에 유네스코가 이 상을 수여하는데 우리 정부가 지원해 왔다고. 그러나 문화재청이 예산지원의 부담 등을 이유로 유네스코에 폐지 신청을 한 것이다.

김 의원은 “자랑스러운 무형유산인 ‘아리랑’을 세계에 지속적으로 알릴 기회를 놓쳤다. 또한 유네스코라는 세계적인 자리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자랑할 수 있는 계기를 잃게 됐다”고 정부의 안일한 문화재 홍보를 질타했다.

이와 관련해 황 소장은 “기존에 함께 존재하던 직지상과 세종대왕상 등은 여전히 건재 한다. 그러나 정부가 우리나라문화유산에 대한 중요성을 알지 못해 유네스코에 내는 예산 부담을 이유로 ‘아리랑 상’만을 폐지시킨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이런 식으로 한다면 세계유산 자격이 없는 나라가 아닌가”라고 재차 비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한 관계자는 “‘아리랑상’의 대상이었던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제도가 종료됐고, ‘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흡수돼 폐지가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지난 2005년 유네스코 무형유산 보호 협약을 체결했는데 그 기본 정신이 ‘모든 유산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리랑상’을 시상한다는 것은 가치를 평가하는 것과 같아 협약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예산 문제라기보다 협약 정신에 따라 상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정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기자가 유네스코 문맹퇴치상인 ‘세종대왕 문해상’과 기록유산 부문인 ‘직지상’은 2년마다 여전히 시상하고 있지 않냐고 묻자 “아리랑상은 무형유산 부문의 상이었으므로 협약 내용에 준한 것이다”고 일축했다.
 

“인류가 지켜야할 공통의 문화유산 인식 필요”

이처럼 유네스코 등재된 국내 문화유산에 대한 부실한 관리 실태에 대해 문화계 관계자들은 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입을 모았다.

김윤수 회장은 “문화유산보존관리가 매우 중요함을 인지하고 인적자원의 수급 등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은 굿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간혹 배우려는 사람이 있어 전수자로 등록하고 교육을 통해 전승보전하려 하지만 전수 장학생에 지급되는 지원금은 단 15만원이다”고 전제하고, “이수자는 지원금조차 없고, 경력이 30년 이상 된 전수조교가 (단체 종목일 때) 월 50만원, 예능보유자가 월 100만원의 전승지원금을 받는다. 이 금액으로 어떻게 전수자를 육성하고 관리하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김 회장은 “그나마 문화재 행사 때 받는 행사비가 있지만 그나마도 찾아가는 무형문화재 행사 약 150만원, 그 외의 문화재 행사 약 300만원의 행사지원비를 받는다. 그 돈으로 20여 명이 행사를 준비하고 공연하면 남는 것은 없다”고 빈약한 지원을 꼬집었다.

또 그는 “유행가를 부르는 가수들은 노래 2~3곡 부르고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받는다는데 문화유산을 지켜낸다는 자부심을 가진 우리에게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아쉬움을 쏟아냈다.

또한 김 회장은 “무형문화재는 그 대상의 형태가 없기 때문에 사람의 기능과 예능에 의해 전승된다. 그 때문에 사회문화적 환경에 노출되어 쉽게 변형되거나 사라지므로 전승자 육성이 매우 중요한 관리시스템 중 하나임을 알아야한다”고 전했다.

이어 “전승자 육성에 힘쓰고 제주굿을 포괄적으로 연구하고 전승하여 새롭게 창조해나가는 보존회가 될 것이다”며,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정부 당국의 통합적인 관리체제를 촉구했다.

한편, 황평우 소장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 따도 대통령이 축전을 보낸다. 그러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하회마을)라는 쾌거에 축전조차 없어 문화유산의 가치를 모르는 모습의 단면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또 그는 “단순히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문화유산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그것을 살릴 수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황 소장은 “‘세계유산’은 한국만의 문화재가 아니라 전 인류가 지켜야할 공통의 문화재라는 인식을 전제하라”며 “세계문화유산의 보존가치는 개발가치를 넘어서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를 전제로 세계적으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문화재에 대한 예우를 갖춰 더욱 강도 높은 보호대책과 방안이 주문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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