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직자 위장전입 문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고위 공직자 위장전입 문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8·8개각 인사들의 청문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부터 공직 후보자들의 위장 전입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한두 명이 아니다. 이현동 국세청장 후보,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 신재민 문화부장관 후보에 이어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 내정자까지 연루되어 있다. 10명 가운데 4명이 불법을 저지른 셈이다. 물론 당사자들이 발 빠르게 위장전입을 시인하고 사과를 했지만, 비판 여론은 여전히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도마에 오른 당사자들은 사과하는 선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지 후보 사퇴는 전혀 안중에 없는 분위기다. 김대중 및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인사 청문회에서 위장전입 사실을 맹렬하게 공격, 결국 후보자들의 사임을 이끌어냈던 전력을 돌이켜보면, 현재 상황은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비난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김대중 정부시절인 1998년 주양자 보건복지부 장관은 위장전입으로 장관직을 사임했으며, 2002년 장상·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는 위장전입 의혹으로 낙마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2005년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위장전입이 드러나 중도 사퇴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집권당으로 올라선 현재는 위장전입은 공직자 후보가 공직에 오르는데 전혀 하자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갖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당선의 영광을 안았던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결국 ‘면죄부’가 되어 오늘날 공직자의 도덕성에는 아무런 흠결이 되지 못한 지경에 이르지 않았냐는 비판이 높다.


위장전입은 엄연히 범법행위다. 주민등록법 제37조 3항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적발되면 예외 없이 서슬 퍼런 처벌을 받는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09년에는 192명, 2010년에는 105명 등 최근 2년간 297명이 고등학교 배정과 관련, 위장전입으로 적발됐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법의 엄정한 심판을 받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느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고위 공직자는 ‘법 위의 존재’냐는 비아냥을 듣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인사 청문회 철만 돌아왔다 하면 고위공직자, 정치인의 위장전입 문제가 단골 소재처럼 터져 나오지만 그저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면 해결된다는 식이다.


현 정부 들어서 유독 인사 때마다 고위공직자들의 위장전입이 불거졌다. 심지어 ‘위장전입 정부’라는 오명까지 들었다. 그럴 때마다 여론은 들끓었지만 정부와 한나라당은 애써 외면하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여기에도 모자라 최근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괴상망측한 논리까지 등장했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위장전입의 시기나 정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발맞추듯 청와대 관계자는 “투기목적의 위장전입이 아닌 교육목적은 인사를 철회할 사안이 아니다”라고까지 설명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럴 바엔 차라리 위장전입을 범법 조항에서 빼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국민의 귀감과 모범이 되어야 할 공직자가 말로만 법치주의를 외치고 정작 본인 죄는 은근슬쩍 묵인하는 이중적 행태는 우리나라 앞날에 심각한 먹구름을 드리운다. ‘경제 살리기’도 좋지만 무엇보다 도덕의 확립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옛 어른의 말씀이 허투루 나온 게 아님을 이 나라의 지도층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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