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4대강 사업 입장 선회 내막

4대강 사업을 두고 여야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사업을 반대해오던 민주당이 딜레마에 빠졌다. 민주당은 그동안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며 4대강 사업을 정면으로 반대해왔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던 야권 광역단체장들이 입장을 선회하면서 당론으로 내세웠던 ‘4대강 사업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기 어렵게 됐다.

민주당은 기존의 입장과 변한 것이 없다고 밝혔지만 진행중인 대규모 준설과 보 설치를 중단하는 대안을 제시하며 정부 여당과 절충에 나섰다. 정치권은 재보선 패배와 광역 단체장들의 입장 변화로 4대강 사업을 강력히 반대하기 힘들어진 민주당이 조건부 찬성의 수순을 밟고 있다고 내다봤다.


민주당이 당론을 변경하며 4대강 사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역 광역단체장들의 입장 변화에 있다. 사업 반대를 주장해오던 광역 단체장들의 입장이 변한 이유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대안으로 진행해 나갈지에 대해 알아봤다.


박준영 ‘4대강 찬성’으로 민주당 삐걱

야권 광역단체장들의 변화는 박준영 전남지사가 4대강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시작됐다. 당시 민주당은 6·2 지방선거 승리 이후 본격적으로 4대강 사업 철회에 당력을 집중했다. 이를 위해 민주당 소속인 안희정 충남지사, 이시종 충북지사, 김두관 경남지사가 연대에 나섰다.

그러나 박준영 전남지사만이 연대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지사는 “4대강 반대사업은 정치투쟁이지만 영산강 살리기 사업은 지역 현안”이라며 “4대강 정비 사업을 반대하는 신임 광역단체장들과 연대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박 지사의 ‘이견’에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4대강 사업을 정치적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영산강의 수질개선은 꼭 필요하지만 준설만 하고 보를 쌓는 식으로 물을 가두면 큰일 난다”고 설득했다.

당 지도부의 반대에도 박 지사는 영산강을 살리기 위해 보를 쌓고 토사를 긁어내는 ‘정비사업’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박 지사는 “영산강은 하상이 높아져 지천에서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며 “쌓인 토사를 긁어내야 하는데 이걸 반대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 현재 영산강 물은 농업용수로도 못쓴다”고 설명했다. 박 지사는 또 “다른 강이 여의치 않다면 정부가 영산강 사업을 시범적으로 추진해 모델로 삼는 방법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영산강만큼은 정비 사업을 해야 한다는 의사를 강력히 밝혔다.

박 지사의 소신의사를 접한 민주당은 당론에 반대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행위라며 비난에 나섰다. 민주당 김진애 의원은 “4대강사업을 당론으로 반대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비난했다. 김 의원은 “보를 설치해 수질을 개선하겠다는 박 지사의 주장은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서 자가당착에 빠진다”면서 “영산강 수질이 악화된 원인은 영산강 하류가 하구 둑으로 막히고 지천에서 오염물질이 유입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지사는 당의 비난에도 영산강 살리기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소신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정부의 대운하 사업에 대해서는 경계하며 선을 그었다. 박 지사는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정부가 운하를 하려다 중단하고 4대강 살리기로 나간 만큼 이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4대강사업 전에 운하를 하려다 중단하지 않았느냐. 운하는 우리나라에 맞지 않다”면서 “2004년부터 영산강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영상강 하류 쪽에 물이 있지만 오염돼서 농업용수로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을 살리고 운하는 다른 개통량이 필요하면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하니까 전 국민적 오해가 생겼는데,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4대강사업에는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준영 전남지사의 선택을 두고 지역 주민들의 요구와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볼 때 무조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영산강은 오염 문제로 수질개선이 시급했던 만큼 당에서 특수한 상황으로 인지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했다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야권 광역단체장들의 입장변화로 민주당 딜레마

박 지사가 지역문제와 관련해 현실적인 선택을 하자 다른 광역단체장들의 입장도 변하기 시작했다. 이시종 충북지사 역시 4대강 사업을 반대해왔지만 그 입장이 바뀌면서 도정에 임하는 현실적인 도지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지사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야당 광역자치단체장들의 조건부 수용 입장에 대해 “찬성, 반대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긴 곤란하다”고 답했다.

이 지사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수사업(운하 건설)은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치수사업(수질 개선)은 지금까지 해오던 것이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서 “충북의 경우에는 이수 사업이 많지가 않고 주로 치수 사업 위주로 돼 있기 때문에 충북에 한해 제가 얘기한 것이 마치 4대강 사업 전체에 대해 찬성한 것처럼 잘못 비춰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부의 이수사업인 운하는 반대하지만 수질을 개선하는 치수사업에는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박준영 전남지사와 같은 선택을 했다.

이 지사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입장이 완화됐다는 일부 시각에 대해 “제가 선거 때 전면 재검토를 주장했는데 들어와서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전면 재검토 작업에 들어간 것”이라며 “검증위원회는 전면 재검토를 전제로 검증하다 보니 일부는 우리가 인정하는 부분도 나오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부분도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민주당에서 자신의 정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민주당에서도 이수사업과 치수사업으로 구분해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충북에서는 이수사업 개념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제가 4대강 전반에 대해 이야기할 입장은 안 된다”며 “국회의원 시절에는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충북도지사이기 때문에 충북에 한해서만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며 한발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역시 “당선되면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중단 시키겠다”고 공언 할 만큼 강력히 반대해 왔으나 당선 이후에는 ‘재검토’로 입장을 선회했다. 안 지사는 재검토로 입장을 선회했지만 이것이 4대강 사업 찬성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서는 강하게 경계했다.

안 지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4대강 사업에 대한 제 입장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 충남의 4대강 특위 위원들의 재검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봐 달라”며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사업 중단’을 운운했던 그가 ‘재검토’라는 말을 꺼내든 것은 분명 입장이 변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시종 충북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가 4대강 사업을 두고 고심에 빠져 있는 반면 김두관 경남지사는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김 지사는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만나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입장을 확인하고 저지를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김 지사는 “정부가 미래성장동력에 집중 투자하는 게 아니라 토목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합당한지 의문”이라며 비난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민주당이 제1 야당인데 4대강 사업에서는 역할이 미흡한 것 같다”고 민주당에 쓴 소리를 했다.

민주당 4대강 사업 대안 제시

야권 광역단체장들의 입장 변화로 4대강 사업 반대 계획에 차질이 생긴 민주당은 입장을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은 보와 준설 등 수자원 공사의 대형 사업은 반대하지만, 수질을 개선하고 수량을 확보하는 소규모 사업은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것은 민주당이 보와 준설 등의 대규모 사업에 반대하는 충청도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이 입장을 밝히며 진화에 나섰는데도 ‘조건부 찬성’ ‘민주당 대안 제시’ 보도가 잇따르고 있어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 4대강사업저지특위는 “충남북이 4대강 사업에 대해 검증하고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국토해양부가 ‘정상 추진’이란 표현으로 사실을 왜곡했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 역시 “정부의 아전인수 해석과 홍보로 마치 민주당이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며 “민주당은 4대강 사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조정하자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박 대표는 “역대 정부에서도 4대강 치수 사업을 해왔지 않나. 정부는 민주당과 환경단체 등이 제시하는 안을 철저히 검토하고 화답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의 혼란스런 대응은 내부의 비난으로 이어졌다.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민주당이 4대강 사업의 대안을 제시하고 절충을 요구한 것이 기존의 당론에서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정동영 의원 측은 당의 4대강 대안 제시에 대해 “왜 서두르는지 그 저의를 모르겠다. 당의 기조가 선거 끝났다고 바뀌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은 민주당이 4대강 사업 대안을 내놓으며 절충안을 요구하고 있지만 다수의 광역 단체장들이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하고 있어 야당의 4대강 저지 계획이 힘을 잃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도지사들의 조건부 수용의 원인인 사업집행과 예산 등에 있어 중앙정부가 유리한 카드를 쥐고 있다는 것도 악조건이다.

민주당 관계자 역시 “지자체에서 맡은 사업은 결국 예산 문제와 연관되는 것이어서, 중앙정부의 협조를 받아서 해야 할 사업도 있는 지방정부로서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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