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보잡 질문은 제발 그만”


취업가의 압박 전쟁이 심화됨에 따라 지원자들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예상외의 질문으로 지원자의 순발력과 창의력을 보기 위해 시작된 압박면접이 지원자의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대기업 채용과정에서 늘어나는 압박면접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지원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최근엔 아예 이를 대비한 스터디 그룹이나 인터넷 사이트까지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황당한 질문이나 상황들이 도입되고 그 과정에서 외모를 공격하거나 지나치게 개인적인 질문을 해 지원자의 자존심은 물론 인권을 침해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본지가 인권 짓밟는 취업가의 압박면접의 행태를 따라가 봤다.

▲ 연극 '최종면접'의 한 장면.


유명여대의 제약학과에 나온 이모씨는 평소 압박면접으로 유명한 A사에 지원했다. 그는 결국 A사의 면접에 통과해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됐지만, 당시 괴로웠던 심정을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려놔 눈길을 끌었다.

인생 잘못 산건가?

이씨는 “면접관이 내가 A사랑 어울리지 않는다며 다른 곳을 지원하라고 종용했다”며 “체력이 좋다고 말한 여자 지원자에게는 그 자리에서 팔굽혀펴기를 시키기도 했다”는 당시의 면접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는 “1등을 해봤냐는 질문에 ‘해봤다’고 하면, ‘지금은 왜 이것 밖에 안 되냐’는 질문이 돌아왔고, ‘못해봤다’고 하면 ‘1등 한번 못해본 패배자’라는 식으로 간주 했다”며 “한마디로 걸리는 것은 끝까지 캐묻고 물고 늘어지는 면접방식”이라고 토로했다.

취업가 압박면접에 소리 없는 비명, 스터디 그룹이나 인터넷 사이트까지 생겨
황당한 질문·상황 도입, 외모 공격하고 지나치게 개인적인 질문으로 인권침해


특히 이씨는 “처음엔 화가 났지만, 끝날 때 쯤 되자 ‘혹시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며 압박면접의 ‘센’ 강도를 전했다. 이에 일각에선 “센 강도도 문제지만, 면접관의 질문이 인생전부를 돌아보게 할 정도면 그러한 질문을 한 면접관의 자질 또한 문제 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이씨와 달리 취업도 못한 지원자들은 자존심을 긁는 면접관의 질문에 이렇다 할 대꾸도 못하고 집에 돌아오기 일쑤여서 압박면접은 이제 취업가의 또 다른 백태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당했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B증권사의 최종 면접을 본 남모(27)씨는 “지금도 면접날을 생각하면 찜찜한 마음이 든다”며 면접 당일 그를 포함한 지원자들이 ‘외모품평’을 받은 사연을 털어놨다.

남씨는 한 언론을 통해 “자기소개서에 활달하고 유머러스하다고 썼는데 표정이 딱딱해서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런데 함께 면접 본 여성 지원자에겐 아예 ‘떨어지면 인물 때문인 줄 알라’는 ‘모독성’ 질문도 서슴지 않아,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지원자들의 얼굴까지도 붉히게 만들었다”고 폭로했다.

더욱이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시냐’는 질문도 나왔는데 남씨는 “이게 말로만 듣던 ‘압박면접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직무 관련성이 전혀 없는 질문이라 당황스럽고 불쾌했다”고 덧붙였다.

최근엔 질문뿐 아니라 지원자의 주변 사람까지 당황케 만드는 상황극도 벌어지고 있었다. 모 대기업 하반기 채용과정에선 친구를 폭행범으로 만드는 상황극을 연출한 다음 친구에게 전화를 걸게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도 닦으란 얘기?

이처럼 최근에는 압박면접이 그 도를 넘어서고 있어 지원자들의 ‘취업 스트레스’의 심각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선 압박면접을 준비해야 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던 것. 그래서 한 인터넷 취업카페는 압박면접을 “상대의 공격을 부드럽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반발 에너지로 바꾼다는 점에서 유도의 낙법과도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오히려 압박면접을 잘 활용하면 지원자의 진면목은 물론 차별 점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카페는 “압박면접은 지원자가 흥분한 상태에서 보이는 태도와 표현력을 평가하는 자리”라며 “면접관은 기업이 지원자에게 바라는 참신성, 유머, 의연함, 자신감 등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듣기 싫은 질문을 물어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요즘엔 아예 압박면접을 대비한 ‘압박·이색 면접’이라는 스터디 그룹을 짜서 활동하거나 인터넷 취업사이트에 목록을 따로 만들어 압박면접 질문 사례를 모아 공유하는 지원자들도 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개인 블로그에 그 내용을 담거나 자신의 의견을 첨삭해 압박면접의 대응책을 마련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 압박면접을 일종의 ‘기싸움’이라고 칭했던 한 네티즌은 자신만의 대응책을 올려놓으며 “압박면접이 응시자의 입장에선 돌발 상황이지만 실은 계획적이고 의도된 것”이라며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고 면접관의 기에 눌리지 않도록 표정관리를 하는 것은 물론, 평소에도 평상심을 유지하는 훈련을 하는 게 좋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면접에 대비하기 위해 도를 닦으라는 얘기냐”며 “사정없이 취업자를 몰아붙이고 조그만 약점이라도 산더미처럼 부풀려 공격하는 면접질문이야말로 심의를 받아야 되는 게 아니냐”고 꼬집는 네티즌들도 있었다.

이는 결국 취업에 목마른 지원자라도 면접관의 질문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 압박면접이 지원자의 진솔하고 순발력 있는 답변을 이끌어 내는 칼자루에서 지원자의 가슴에 비수를 꼽는 양날의 칼로 변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김모(26)씨는 ‘몸매도 경쟁력’이라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질문에 “차도에 뛰어들어 확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울지 않겠다는 일념하나로 눈물을 꾹 참았다”고 털어 놓아 다른 네티즌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에 취업 전문가들은 “압박면접은 취업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지원자의 자신감은 물론 인권을 짓밟는 결과로만 작용할 수 있다”며 “지원자에게 어떠한 사과나 치유책이 있을 수 없는 면접인 만큼 면접관 역시 사전 검토를 거쳐 처음 의도를 벗어난 인격 침해성 질문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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