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병원에 내가 환자”


보험사기에 의사들이 동원되고 있다. 최근 허위 진단서를 발급한 뒤 수십 회에 걸쳐 보험금을 타낸 의사와 보험설계사 등 임플란트 보험사기범 일당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힌데 이어 얼마 전엔 의사가 아예 환자로 둔갑해 자신의 병원에 입원까지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의사가 환자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며 “이젠 대놓고 자신의 직권까지 남용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본지가 의사들이 보험사기에 동원되는 사태와 그 이유를 취재해봤다.

▲ MBC 드라마 '하연거탑'과 영화 '내사랑 내곁에'의 각각 한 장면.


억대 연봉 의사가 보험금 2000여만원을 받기위해 자신의 병원 환자로 둔갑했다. 경남 창원중부경찰서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허위로 입원해 보험금을 타낸 혐의(사기)로 의사 김모(48)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지난 10월27일 밝혔다.

억대 연봉 의사 2000만원 위해 병원 환자로 둔갑, 의사 동원 보험사기 증가
직권 남용, 환자 돈벌이 수단으로, 죄질 불량한데 반해 법원 처벌 수위 낮아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5월24일 부산의 한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친 뒤 자신이 운영하던 정형외과 병원에서 전치 6주의 진단을 받아 업무를 보면서도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것처럼 속여 한 달 동안 2000여만원에 이르는 보험금을 받았다고 한다.

의사야 사기꾼이야?

이에 경남 창원중부경찰서 지능팀 관계자는 지난 11월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의사 김씨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법적공방이 예상된다”며 “자세한 사건의 내용을 얘기 할 수는 없지만 보험사의 진술과 의료자문을 통한 객관적 판단 하에 김씨의 보험사기 혐의가 드러나 불구속 입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경남 창원의 한 정형외과의 병원장이었던 김씨는 현재 병원을 옮긴 상태로 보험사는 보험가입 전 김씨가 기왕력(지금까지 걸렸던 질병이나 외상 등 현재에 이르기까지 병력)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김씨는 이를 말했거니와 방사선 자료를 제출했다고 주장해 서로의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김씨가 기왕력이 있는데도 이전 사고의 자료와 사진이 같고 처음에 이야기 하지 않은 기왕력 부분을 말 바꾸기 한 정황이 드러나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게 됐다”고 말했다. 더욱이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월수입 3000만원인 김씨는 입원기간인 한 달 동안 최고급 렌터카를 타기도 하면서 평소처럼 하루 평균 54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1.8건의 수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보험사에 입원치료 했다고 신고해 입원·치료비 210만원과 입원기간동안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보상멱목인 위자료 및 상실수익액 1700만원 등 총 2000여만원의 보험금을 청구해 보험금을 타냈다고 한다.

사실 의사가 동원된 보험사기는 이뿐만이 아닌 것으로, 지난 4일 서울 용산경찰서는 임플란트 시술 진단서를 허위로 써줘 보험금 부당 청구를 도운 혐의(사문서위조 등)로 서울의 모 치과병원 원장 김모(34)씨 등 이 병원 관계자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치과병원 원장 김씨 등은 ‘치조골(이를 떠받치는 뼈)을 이식받는 중증 임플란트시술에 한해 1회 200만원을 보장한다’는 보험사들의 약관을 악용, 일반 임플란트 환자가 이 조건에 해당하는 것처럼 진단서를 써줘 작년 3월부터 최근까지 60차례에 걸쳐 보험금 1억원을 청구하게 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엔 의사들이 아예 자신의 직권을 남용해 보험사기에 직접 나서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의사들이 수입을 늘리기 위한 편법으로 허위청구를 하고 있다”며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영업력과 자금을 갖춘 병원 사무장 출신 등이 의료기관 운영능력과 자금 등이 부족한 의료인을 영입해 병원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면허취소가 봉이야?

그러나 이러한 보험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과 달리, 의사들에 대한 보험사기 관련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황만성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2003년 1월부터 지난 2007년 4월까지 보험 사기죄로 처벌받은 피고인 11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업에 따라 처벌에 차이가 났던 것.

전체적으로 집행유예가 552명, 징역형이 283명, 벌금형이 338명이었지만, 보험관련 사기죄로 처벌받은 의사 66명 중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1명에 불과했다. 이는 무직자 255명 가운데 77명이 징역형을 받은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였다.

거기다 의사들은 대부분 벌금형(59명)을 선고 받았으며 무직자는 벌금형 보다는 징역형이 더 많았다. 이에 대해 황교수는 “의사들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게 되면 면허 취소 사유에 해당하고 3년내 면허재교부 신청도 불가한 중징계에 처해질 수 있어 법원이 이런 사정을 감안해 벌금형을 선고하되 벌금액을 무겁게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법원에서는 피해액이 정산됐는지 여부를 크게 고려하는데 의사들은 보험금을 변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하지만 의사들이 실수로 치료비를 과다 계상하는 등 혐의가 가벼워서 벌금형에 그친 경우도 있지만 오랫동안 병원직원과 공모해서 보험금을 허위청구 하는 등 죄가 무거운데도 약한 처벌만 받고 끝난 경우도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황교수는 “보험사기가 증가하고 죄질이 불량한데도 법원의 처벌은 이에 미치지 못 하고 있다”며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보험사기에 대해 양형 기준을 설정하는 등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욱이 보험사기에 동원된 병원직원(43명) 역시 징역형이 3명으로 비율이 낮은데다 집행유예가 23명, 벌금형이 17명으로 조사돼 이들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의사들이 자신의 직권을 남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 의료계 종사자들의 낮은 처벌 수위 역시 보험사기를 부추기는 결과로 작용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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