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친박 “화합형 대표 추대론 근본 해결책 못돼, 당·정·청이 원칙과 신뢰 정치가 먼저”
박근혜, 10월 재보선, 내년 지방선거 ‘희생양’ 될 수 있어 섣불리 나설 가능성 낮아

한나라당이 4.29 재보선 참패 이후 한 달 이상 민심수습을 위한 쇄신의 회오리가 불고 있는 가운데 당내 쇄신 정국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박근혜 당권론’ 등 의원 연찬회에서 분출한 쇄신의 근본적 해법이 침묵 속에 안거 중인 ‘박근혜 끌어내기’ 형국으로 진행되면서다. 대중 정치인 박 전 대표의 현실적 ‘힘’을 인정한 것이자, 다급한 위기에 ‘살려달라’는 요구로 풀이되고 있는 가운데 박 전 대표는 일단 말을 아끼고 있다. ‘쇄신’과 관련해 쏟아지는 언론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문 채 그저 “나중에 이야기 합시다”라는 한마디만 남긴 박 전 대표. 이에 대해 친박계 일각에선 박 전 대표로선 여권 쇄신이란 명분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것이란 점에서 ‘침묵’으로만 끝내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4.29 재보선 참패 이후 당 쇄신론으로 인한 친이(친 이명박)-친박(친 박근혜)간 대립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박 전 대표의 의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달 이상 민심수습을 위한 쇄신의 회오리가 불고 있는데도 박 전 대표가 ‘무언’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쇄신특위가 쇄신안으로 ‘박근혜 당 대표 추대론’을 제기하고 나서자 친박근혜계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어 박 전 대표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

친박 ‘박근혜 당 대표 추대론’ 발끈

한나라당 쇄신특위 원희룡 위원장이 지난 8일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화합형 대표 추대론’을 당 지도부에 보고하면서 여권의 전면쇄신 논의가 단순한 논란 수준을 넘어 점점 혼미해지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논의의 가닥이 잡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선만 커지는 형국이다.

원 위원장이 제시한 ‘화합형 대표 추대론’은 당헌.당규 개정을 통해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선출하자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말하며, 이는 차기 대표에 박근혜 전 대표를 추대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친박(친 박근혜)계가 조기전당대회를 통한 화합형 당대표 추대론에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친박 계의 이정현 의원은 “화합형 대표 추대론은 근본 해결책이 못 된다”면서 “조기전대나 지도부 사퇴도 본질이 아니다. 당·정·청이 원칙과 신뢰의 정치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태열 최고 위원은 “당의 화합이 전제되지 않는 전당대회는 의미가 없다”며 “쇄신의 모양을 갖추기 위한 조기 전대는 ‘반쪽짜리 대회’가 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는 이어 “대화합이란 선결조건이 담보되면 전대 시기에 구애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지금은 공천과 국회운영 시스템 쇄신이 중요하며 이것이 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쇄신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친박계가 ‘박근혜 대표 추대론’에 뿔난 이유는 박 전 대표가 섣불리 ‘소방수’로 나섰다가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등의 결과에 따라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무엇보다 친박계는 쇄신의 본질은 국정개혁이며, 따라서 최근의 민심이반 등 위기상황은 청와대가 먼저 변화해야 해소된다는 논리를 갖고 있다. 이는 박 전 대표도마찬가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 지도부에 책임을 지우려는 쇄신파와는 접근법이 다른 것이다.

이외에 친박계는 과거의 오랜 불화와 반목으로 친이(친 이명박)계와 오랜 대립관계를 유지, 친이계가 개입된 ‘화합형 대표추대론’의 진정성에도 강한 의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논리야 어떻든 친박계에는 봇물을 이루는 당내 쇄신 요구와 ‘박 전 대표역할론’을 무작정 거부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우리가 조기전대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조기전대는 시기와 방법의 문제가 아닌가”라는 일부 친박 의원의 말에서 고심이 엿보인다.

그동안 친박계 내부에서는 박 전 대표의 ‘정치일정’상 내년 6월 지방선거 전후까지는 그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변화의 여지가 보인다. 친박계 일각은 내년 1-2월 조기 전대라면 박 전 대표가 나서도 괜찮지 않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같은 시각은 박 전 대표가 당권을 잡은 뒤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면서 차기 대권주자로 입지를 굳히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박근혜, 당 쇄신론에 무거운 침묵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인 박 전 대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당 대표를 맡았던 지난 2005년 11월 '대선후보 선출 1년6개월 전 당.대권 분리',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담은 혁신안을 마련하는 등 쇄신을 주도했던 박 전 대표지만 이번 쇄신론에는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난 5일 친박 의원들의 모임인 ‘여의포럼’ 세미나에서도 쇄신론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나중에 얘기해요”라며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지금은 이야기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측근들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여전히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자신이 나서 발언을 할 경우, 국정운영 중반기를 앞둔 정부에 부담이 될 뿐 아니라 다른 잠재 대선후보군의 대선행보까지 자극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축사에서 “어떤 일이든 거창하게 시작하는 것은 흔히 보는 일이지만 그것을 꾸준히 이어지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의포럼은 어려운 이 일을 조용한 가운데 실천해 왔다”고 격려한 대목은 미묘하다. 이를 당내 ‘쇄신’ 흐름에 대입하면 지금 ‘쇄신론’이 거창하지만, ‘실천’으로 담보되겠느냐는 ‘반문’으로도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친박계들을 통해 확인된 기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날 연찬회에서 친박계 의원들은 일제히 “당 지도부를 아무리 새로 갖다놔도 청와대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이성헌 의원)면서 ‘박근혜 당권론’의 또 다른 표현인 조기 전대에 반대한 것이 단적이다. 측근인 이정현 의원은 “박 전 대표는 국정이든 당이든 잘 운영해 지지를 받아야지 사람이나 바꾸고 이벤트나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와 관련,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각자 제 목소리만 내는 쇄신론은 권력다툼으로 비쳐질수 있어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는 당분간 자중 하는게 옳다”며 “당내 상황이 수습되면 입장을 정리해서 말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는 박 전 대표가 당권 싸움으로 비쳐질 수 있는 논란 과정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친박계의 한 중진의원은 “연찬회에서 쏟아져 나온 의견을 박 전 대표도 귀담아 들었을 것”이라며 “병에 대한 증상이 나왔고 당내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니, 박 전 대표도 생각이 정리되면 당내 진행 과정을 지켜보고 말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현충일인 지난 6일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호국의 달에..’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글에서 “전에 본 영화 속의 한 대사가 기억났다”며 “누군가가 신에게 인내를 달라고 하면 신은 인내를 주실까요, 인내를 발휘할 기회를 주실까요?”라는 영화 속 대사를 소개한 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신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하면 신은 그런 마음을 주실까, 그런 마음을 발휘할 기회를 주실까? 자랑스러운 나라를 달라고 하면, 자랑스러운 나라를 주실까,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 기회를 주실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그는 “현충일. 나라를 위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 스스로가 대한민국을 더욱 자랑스럽고, 목숨 걸고 지킬 만큼 소중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글을 맺었다.
박 전 대표의 이 글은 현충일을 맞아 짧은 소회를 밝힌 것이지만, 한나라당이 당쇄신안을 둘러싸고 지도부 퇴진 및 조기 전당대회 개최 등 격론을 벌이고 있는 당 상황에도 대입이 가능해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조만간 입장 표명 관측

여당은 현재 4·29재보선 패배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당 지지율 급락 등 총체적 위기 국면에 처해 있다.

그간 주요 정치 현안을 둘러싸고 각 정파들의 대립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면 박 전 대표가 나서 한 마디 했고 그럴 때면 교통정리가 됐다. 이런 박 전 대표의 성향에 비춰볼 때 조만간 당쇄신론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할 것이란 관측이다.

한편 재보선 참패와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이후 정당 지지율에서 민주당에 한나라당의 쇄신운동이 절정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차지대통령 적합도에서 31.4%를 얻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일보가 창간 55주년을 맞아 <미디어리서치>와 지난 6일과 7일 양일간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31.4%로 1위를 지켰다. 故 노 전 대통령 조문 정국을 통해 급부상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10.6%로 2위였다.

3위는 5.8%를 기록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였고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5%), 오세훈 서울시장(4.4%),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4.2%)이 뒤를 이었다. 이어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3.8%), 김문수 경기도지사(1.6%),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1.1%), 김근태 전 민주당 의원(1%), 정세균 민주당 대표(0.6%),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0.6%) 순이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지역, 연령, 교육 수준 등에 관계 없이 모든 계층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으며 특히 40대(37.0%)와 60세 이상(38.0%), 대구 경북(47.9%), 월 소득 100만원 이하(38.0%) 계층에서 적합도가 더욱 높았다. 박 전 대표는 또 진보 성향 응답자 가운데서도 20.6%의 지지를 얻어 유 전 장관(18.4%)을 압도했다.

대표적 친노 인사로 손꼽히는 유 전 장관은 서거 정국으로 인한 반사이익과 애도 기간 당시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순위가 뛰어올랐다. 유 전 장관은 지난달 중앙SUNDAY의 차기 서울시장 적합도 조사에서도 16.5%를 얻어 오세훈(27.8%) 현 시장에 이어 2위를 차지했었다. 유 전 장관은 20대(24.0%)와 학생(26.8%), 대학 재학 이상 학력 계층(14.5%)에서 지지가 높았다.

박 전 대표는 또 4ㆍ29재보선 참패 후 쇄신 논쟁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한나라당의 새 대표에 적합한 인물을 묻는 질문에도 박 전 대표가 39.3%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2위는 원희룡 의원이 8.9%, 정몽준 최고위원이 7.3%로 3위를차지했으며 홍준표 전 원내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가 3.7%로 뒤를 이었고, 박희태 대표는 2.2%,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2.0%의 지지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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