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사기 ‘횡횡’ 하는 신문로구역

서울 곳곳에서 재개발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낙후된 도시기능의 회복이 주목적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종 민원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재개발 사업은 그 개발이익이 엄청나 이를 둘러싼 온갖 비리가 ‘횡횡’하고 있다. 특히 서울의 노른자위에 위치한 종로구는 재개발 사업을 수년째 진행해 오면서 온갖 비리에 연루, 악취가 새어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종로구를 일컬어 재개발 비리의 온상지라고 칭하겠는가. 그러나 검찰은 과거 몇 차례에 걸쳐 수사를 단행했지만 별다른 성과물은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다르다. 검찰이 과거와 달리 사정 칼날을 높이 치켜든 것이다. 이에 세간의 이목은 검찰의 칼끝과 종로구 재개발 사업 비리를 향해 집중되고 있다. 본지가 ‘종로 재개발 비리’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4탄에 걸쳐 집중 취재 해봤다. <편집자 주>

▲ 한진베르시움.
본지는 중학동 구역 지주 A씨를 비롯해 최씨의 법무 대행을 맡았던 B씨, 종로구청, 금호건설, 최씨에게 분양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C씨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만난 결과 하나같이 그를 가리켜 ‘희대의 사기꾼’으로 평가했다.

최씨는 신문로 2-8지구의 시행사 (주)보스코산업의 대표이사였다. 여기서 지난 2005년 9월경 최씨가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7차례에 걸쳐 진술한 ‘피의자신문조서’를 보면 최씨는 2-8지구의 시행권을 보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신문로 2-3지구, 2-4지구의 시행사 역시 자신이 내세운 ‘바지사장’이었고 “자신이 실사주”라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중 2-3지구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신사옥이, 2-4지구는 흥국생명이 들어서 있다.

그렇다면 최씨 본인이 직접 시행사 대표로 있었던 2-8지구는 어떨까. 이곳의 위치는 정확히 신문로 2가 106-5번지 외 60번지 일대이다. 금호그룹의 신사옥과 흥국생명 뒤에 위치해 있다. 2-8지구는 대로변에서 얼핏보면 이들 대기업들의 사옥과 어깨를 견줄 만큼의 위용을 자랑하는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보면 을씨년스럽까지 하다. 최씨는 이곳에 지하 7층, 지상 18층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 ‘한진베르시움(또는 광화문베르시움이라고 함)’을 지으려 계획했다.

그러나 최씨의 사기 행각으로 분양 피해자가 속출했고, 아직까지도 각종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법정공방이 진행 중이다. 이로 인해 시공을 맡은 한진중공업은 공정률 70%에서 공사를 중단한 상태이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경비원 A씨는 “이미 공사가 중단된 지 꽤 오래됐다”며 “언제 다시 재개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요즘에도 간혹 분양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찾아와 문의를 하곤 한다”고 귀띔했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의 사기 행각 전모

최씨의 사기 행각은 실로 놀라왔다. 가히 ‘현대판 봉이 김선달’ 수준이었다. 이해관계자들이 말한 대로 ‘희대의 사기꾼’으로 칭송(?) 받을 법했다. 자신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배후에서 모든 일을 진두지휘했다. 최씨가 실사주로 있었던 개발업체만해도 5개가 됐다.

이 외에도 드러나지 않는 회사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최씨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시행권을 매각했다가 다시 자신이 실사주로 있는 개발업체를 통해 인수, 또 재매각하는 방식으로 당시 검찰과 경찰, 관할구청인 종로구청, 수분양자들의 눈을 피해나간 것으로 보여진다.

최씨가 자신의 모습을 실제로 드러낸 시점은 지난 2001년 5월경이었다. 이때 2-8지구 시행사는 (주)거삼으로 최씨는 100억원에 양도를 받고 자신이 직접 시행을 하게 된다.


시행권 매각 후 인수 또 매각 등 반복하며 이중 삼중 분양으로 피해자만 수백명 달해

대출금, 분양대금 등 횡령한 돈으로 인근 2-3지구 토지 매입비, 로비 자금 등으로 유용


▲ 신문로 2-8지구 한진베르시움 공사 착공 당시.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거삼 역시 최씨가 실사주로 있었던 개발업체였다는 것이다.
이는 피의자신문조서에 잘 나타나 있다. 최씨는 “신문로 2-3지구, 2-4지구 공사를 진행하다보니 2-8지구 지주들이 저를 찾아와 저에게 동 지구에 대한 재개발사업을 원하여 1년여 계획을 수립 후, 사업시행을 위해 1993년 (주)거삼이라는 도심재개발 사업 법인을 제가 인수하여 사업시행을 위해 2-8지구 총면적 1700평 중 300여평을 매입하고, 나머지는 재개발사업사업 시행인가 동의서를 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1994년 1월경 서울시로부터 (주)거삼 명의로 사업승인을 받아 지주 및 세입자 인정을 하였고, 1995년 3월경 기아산업(주)의 계열사 (주)기산을 시공사로 신문로 2-8지구 주상복합 공사계약을 맺고 착공했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최씨가 자신이 인수한 거삼을 통해 시행권을 획득 한 후 매각, 또 자신이 실사주로 있는 회사로 하여금 인수하는 방식을 사용했음은 사실인 듯하다. 이를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최초 시행사였던 거삼과 거삼으로부터 시행권을 양도받았던 보스코산업 ‘둘 다 최씨가 실사주였던 회사란 것’이다.

최씨가 이런 방식을 사용 한 이유는 당시 기산을 비롯한 동화종합건설 등 시공사로 참여했던 건설사들이 잇따라 부도를 맞았고, 이로 인해 공사 중단이 됐으며, 최씨와 시공사간에 계약상 공사비 지급문제 등의 이해다툼이 발생해 최씨가 이를 교묘히 빗겨가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렇게 하면 자신을 괴롭히는 채권자(시공업체, 수분양자 등)들이나 관할구청 등의 법과 제도상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최씨는 지난 1995년 (주)기산과 합작해 ‘문화타워’란 상호로 분양자를 끌어 모은 뒤 사기 의혹을 받은 후에도 2001년 (주)화남건설과 합작해 ‘킹덤타워’를, 이후 지금의 시공사인 한진중공업과 합작한 ‘베르시움’으로 상호변경을 몇 차례에 걸쳐 단행, 이 과정에서 수백명의 수분양자들에게 피해를 끼쳤다. 더욱이 최씨는 당시 2-3지구 시행사 (주)기림개발의 실사주로서 2-8지구의 수분양자들로 모은 자금을 2-3지구 개발사업에 사용, 또 개인 용도로 사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최씨로부터 분양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수분양자들과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했던 시공업체 등은 종로구청 등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종로구청은 ‘법 절차상 하자 없음’을 이유로 매번 시행인가변경을 해줬다. 본지가 확인한 바로는 지난 1993년 6월경에 사업시행인가가 난 이후 무려 더섯번에 걸쳐 사업시행인가가 변경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본지가 입수한 최씨가 당시(2001, 2002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지에는 자금 압박을 받던 최씨가 분양대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에 대한 내용과 국내 유명 건설사를 끌여 들이기 위해 물밑 접촉을 한 사실(?)이 나와 있다.

하지만 이 일지가 최씨가 작성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본지가 이 일지를 면밀히 분석해 본 결과, 최씨보다는 최씨와 이해관계에 있는 시공사 대표 혹은 관계자가 작성한 것으로 짐작된다. 단지 이 일지를 본지에 건넨 C씨가 ‘최씨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하여 으레 짐작하고 있을 뿐 명확하지는 않다.
이 일지의 내용은 다음호에 자세히 게재하고 한다.


허술한 법망 이용한 분양 사기


이후 최씨는 2002년 8월12일 지금의 시공사인 한진중공업과 자금대여사 삼성생명보험 그리고 신탁사무 및 대리사무 수임자로 (주)생보부동산신탁 등과 신문로 2-8지구에 ‘한진 베르시움’이란 상호로 개발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최씨는 사업 약정서를 체결하면서 삼성생명으로부터 530억원을 PF대출받은 다음 그 중 100억원을 전 시공사 (주)기산에 대한 공사비 채무변제에 사용하기로 하고 생보부동산신탁으로부터 교부받아 보관키로 했다. 하지만 최씨는 2002년 8월26일 기산에게 70억원만 지급하고 나머지 30억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해 버렸다.

또한 최씨는 분양을 받기 이전에 관리처분계획변경인가 및 건축설계변경허가를 받지 않은 채 2002년 10월14일 ‘한진베르시움’ 분양광고 및 분양을 실시하여 종로구청으로부터 ‘분양 및 광고중지’를 받았음에도 계속해서 분양을 실시해 도시재개발법 위반으로 고발당함과 동시에 분양행위중지 명령을 다시 받아 중지된 상태였다.

최씨가 이렇게 무리하게 분양을 실시한 데에는 당시 최씨가 예상한 만큼대로 분양율이 높지 않았고 이로 인해 자금 압박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더욱이 앞서 최씨는 ‘문화타워’ ‘킹덤타워’의 분양 과정에서 더 많은 이득을 얻고자 기존 수분양자들에게 해지를 강요, 이 과정에서 발생한 채무와 (주)기산을 비롯한 시공사들에게 지급해야할 채무 등도 원인이 됐던 것으로 보여진다.

여하튼 이런 저런 절박한 이유로 자금이 필요했고 결국 최씨는 분양대행업자를 앞장 세워 분양권에 관심을 보이던 이들에게 “상당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고 현혹한 뒤 분양대금 수억원을 편취했다.

하지만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 유동성이 확보되지 못하자 최씨는 기존 수분양자들에게 해약을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서울 중앙지방법원 파산부에 파산 신청을 했다. 그런데 이 역시 최씨의 계획된 사기극에 불과했다. 최씨는 다시 법원파산부로부터 100억원에 사업권 일체를 인수한 뒤 다시 종로구청에 사업인가 재신청, 사업시행인가를 다시 얻어냈던 것이다.

최씨의 허망한 말로


▲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은 최씨에게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이듯이 최씨의 사기극은 끝내 비참한 말로를 맞고 말았다.
최씨로부터 공사 대금등을 받지 못했던 이해관계자들이 최씨를 상대로 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이후 길고 긴 법정공방 끝에 지난해 8월19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형사제24부는 최씨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최씨(피고인)는 충분한 자기 자본없이 여러 수분양자들로부터 분양대금을 받아 신문로 2-8지구 재개발사업을 시행하고 있었으므로 수령한 분양대금을 투명하고, 엄격하게 집행함으로써 수분양자들에 대한 분양의무가 차질없이 이행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여야 함에도 분식회계를 통해 회사자금을 30억원을 횡령하였고, 시공사에 공사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여 공사가 중단된 상태였음에도 조만간 입주가 가능하고 분양권을 전매하여 높은 차익을 얻을 수 있다고 기망하여 금원을 편취하였다. 이러한 범행내용과 피해액,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을 부인하는 점 등에 비추어 죄책이 가볍지 아니하다”라고 밝혔다.


‘희대의 사기꾼’ 최씨의 ‘한진베르시움’ 사기극 주요 일지

1993.12 / (주)거삼 인수 후 거삼 명의로 신문로 2-8지구 사업시행인가 획득
1995.3 / 시공사 (주)기산과 합작 ‘문화타워’ 건축?분양했다가 기산 부도
2001.5 / 시행사 (주)거삼→(주)보스코산업으로 변경
2002.8 / 시행사 (주)보스코산업, 시공사 한진궁공업, 자금대여사 삼성생명보험, (주)생보부동산신탁을 신탁사무 및 대리사무 수임자로 하여 개발사업약정 체결
2002.8 / 기산에 지급해야할 100억원 중 30억원 횡령
2002.10 / 종로구청 ‘분양 및 광고 중지’ 명령에도 불구 분양 계속 실시
2003. 6 / 도시개발법 위반으로 고발당함과 동시에 분양행위중지 명령 받음
2003.10 / 수분양자에게 해약을 요구한 뒤, 수용 안되자 파산신청, 다시 법원파산부로부터 사업권 일체 인수, 사업시행인가 재신청
2004. 4 / 분양대행업자 내세워 자금조달 목적으로 미분양세대에 대한 분양대행 위탁, 분양대금 편취
2008. 9 / 서울중앙지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등 혐의로 징역 3년6개월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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