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 긴 수염과 두루마기 등 ‘독특한’ 외양으로 주목받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18대 국회 들어 지역구 당선과 당 대표 취임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5년 전 17대 총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경선에 농민대표로 강기갑이라는 사람이 나왔다. 긴 수염과 두루마기, 농민이라는 단편적인 단어들을 연상케 하는 그의 모습은 정치인으로 국민들이 기억하기에는 미약했다. 당시 그의 모습을 보고 보통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17대 국회입성에 성공했다. 이후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활동은 눈부셨다. 매년 각종 단체에서 선출하는 우수 국회의원 명단에 빠지지 않았을 정도다. 18대 총선에서 그는 한나라당의 ‘실세’ 이방호 전 사무총장을 누르는 사천의 ‘기적’으로 다시 여의도를 밟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면초가에 빠져 고심하고 있다. 이른바 ‘국회 활극’을 벌인 주범이 됐기 때문이다. 국회 사무처는 폭력 행위로 검찰 고발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의원 제명까지 추진하고 나섰다. 검찰도 강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법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모든 악재를 딛고 그는 다시 ‘기적’을 이룰 수 있을까. 강기갑 대표의 향후 행보가 관심을 끄는 이유다.

긴 수염과 두루마기 ‘독특한’ 강기갑, ‘사천의 기적’으로 우뚝
지역구 당선 이어 민주노동당 대표로 중앙 정치무대 승승장구


정치전문가가 아니라 농사 전문가일 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강달프’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칠레-한국 FTA 체결안으로 농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당시 그는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오랜 시간을 농민으로 살아왔던 만큼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앞서나가 싸웠다. 그래서 강 대표는 정치가이기 전에 농민으로 보인다.

‘강단’있는 한복 국회의원

‘강기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긴 수염과 두루마기 등 그의 독특한 외모다. 왜 면도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의 농사법은 잡초도 뽑지 않고 내버려두는 자연농법이다. 조물주가 털을 왜 심어 놓았겠는가. 자연스런 수염을 쇠붙이로 박박 긁는다는 게 내가 살아온 방식과 맞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강달프’(수염 마법사) 강 대표의 소신이기도 하다.
그의 소신은 외양뿐 아니라 활동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2004년 12월, 강 대표는 “정부의 쌀 협상은 농민을 죽이는 협상”이라며 전면 재협상을 요구,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2005년에도 단식농성은 이어졌으며 같은 해 12월 홍콩에서 WTO 각료회에 반대 시위에 연루되기도 했다.
2006년 6월에 입국한 그는 다시 정치활동을 했다. 쌀 분야에서 재포장 금지, 지난해 촛불정국과 맞물려 시행된 음식점 원산지 표시도 강 대표가 제시한 의견들이다. 한미FTA에 대한 비판의식을 높이던 그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뼈가 나오자 곧장 눈에 불을 켜고 한미FTA에 한껏 집중포격을 가했다.
강 대표는 국회에 어떻게 들어오게 됐을까. 그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5년 전, 17대 국회에서 민노당의 비례대표로 러브콜을 받으면서부터다. 총선을 통해 국회 입성에 성공한 그는 국회에 첫발을 내딛으면서부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의원직을 지내면서 한복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또한 17대 초선의원 의정 연찬회에서 의장이 건네는 악수를 거부해 세간의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그가 악수를 거부한 것은 당시 칠레-한국 FTA로 인해 언짢았던 심기를 표현한 것이었다. 특히 그는 연찬회 전에 의장이 한 모임에서 칠레산 포도주로 건배를 했던 것을 꼬집었다.

농민이 이룬 사천의 ‘기적’

강 대표는 상임위 등에서 날카롭고 정확한 지적으로 꾸준히 시선을 모았다.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그가 국회에 재입성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강 대표는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 의원으로 자신의 가치를 재확인시켰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실세’ 이방호 전 사무총장을 누르고 ‘사천의 기적’을 이뤄낸 것. ‘농민’ 강기갑이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47.69%의 득표로 이방호를 간발의 차이로 누르고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을 현실로 이뤄낸 것이었다.
출구조사 때만 하더라도 큰 차이로 이 전 사무총장에게 뒤지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과 감동은 배가 되었다. 대선 이후 분당의 아픔으로 실의에 빠진 민노당 지지자들에게 강 대표의 당선은 큰 희망을 주었다. 강 대표의 당선은 사천시의 주민들이 ‘농민’ 강기갑 뿐만 아니라 민노당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켰기 때문이다.
18대 총선 최대의 이변은 강 대표가 민노당을 통해 보여준 의정활동에 있었다.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뼈 속까지 ‘농사꾼’이었던 ‘농민 강기갑’은 의회에서 철저하게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했다. 국회에서 쌀 개방이 논의 될 때, 그리고 한미 FTA가 논의 될 때 강 대표는 ‘농민’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때문에 쇠고기 협상 국면에서 강 대표가 성난 민심의 우상으로 떠오른 것에 대해 국민들은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우리 축산 농민을 고사시키고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하면서까지 미국산 쇠고기 위험 부위를 들여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이는 그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왔던 ‘주장’과도 일치했기에 국민들은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던 것이다.
사천의 농어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백 마디 감언이설보다 강 대표의 진실 된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고 결국 그의 손을 들어줬다.

민노당 ‘사령탑’으로 진두지휘

강 대표의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7월25일 민노당은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이방호 전 의원을 꺾고 ‘사천의 기적’을 일으킨 강 대표를 신임 대표로 선출했다.
신임 대표로 선출된 강 대표는 “길거리 정치에서 골목으로, 광장에서 사랑방을 파고드는 지역정치 활동을 강화하겠다”면서 “진보적인 인사들을 적극 영입하고 당내 간부들을 적극 발굴해 2010년 지방자

▲ 강기갑 대표는 민주당, 창조한국당 등 야당과 공조, 국정 현안에 대한 발언력을 높이는 한편 남북문제와 의정활동 등에서도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치선거에 대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강기갑 체제’의 출범으로 지난해 12월 대선 직후부터 7개월 간 유지돼 왔던 비상지도체제는 막을 내렸으며, 강 대표는 대표와 원내대표직을 함께 겸임하면서 명실상부한 민노당의 실세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민노당號’를 이끌게 된 강 대표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 맹활약하며 ‘스타 의원’으로 떴다. 네티즌들은 그를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간달프’를 본떠 ‘강달프’라 불렀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실세인 이 전 사무총장을 누르고 당선된데 이어 민노당의 대표가 되면서 중앙정치 무대에 급부상한 그를 두고 정치권에선 민노당의 차기 대선주자감으로 거론하는 이들이 늘어 갔다.
국회를 종횡무진 맹활약하며 입지를 굳혀가던 강 대표는 지난해 5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면서 정치적 생명에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총선선거운동 기간 이전인 지난해 3월8일 경남 사천시 사천읍실내체육관에서 당원집회인 ‘총선필승결의대회’를 열고 시내버스 5대를 동원해 차량편의를 지원한 혐의(공직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기부행위 위반)로 결심공판에서 벌금 300만원이 구형된 것.

1심 재판서 의원직 유지형, 총선 후폭풍+검풍 물리치고 귀환
국회 활극 후 ‘뿔’ 난 국회 사무처, 한나라당 공세에 사면초가


강 대표의 의원직 상실 위기는 민노당에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면 ‘민노당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천’을 잃을뿐더러 차기 대선주자의 정치적 생명까지 담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민노당은 총력전에 나섰다.
민노당 당직자 등 80여 명은 진주시 상대동 진주시교육청에서 진주지원 인근까지 2㎞ 구간에서 강 대표에 대한 정치적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3보1배 행진을 벌였다. 영화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를 패러디한 ‘반쥐원정대’는 포털사이트 다음에 카페를 개설한 뒤 지난달 14일 삼천포 공설운동장 등에서 강기갑 지키기 원정투어를 펼쳤다. 지난달 30일 밤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진주지원 앞에서 1인 밤샘 노숙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31일 열린 선거공판에서 재판부는 강 대표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 ‘의원직 유지’ 가능성을 높였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국회의원 후보자의 경우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거나 가족과 선거사무장, 회계책임자가 300만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되면 당선 무효가 된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거나 대법원 확정판결에서 1심 형량을 유지하면 강 대표는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선거공판이 열린 지난달 31일 창원지법 진주지원 앞 광장에 모인 민노당 당직자와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인터넷 카페 ‘강기갑 지키기 반쥐원정대’ 회원 등 200여 명은 강 대표에 대한 선고 결과를 듣고 “이겼다”는 함성을 내질렀다.
이들은 웃는 모습으로 재판장에서 나오는 강 대표를 둘러싸고 “강기갑 사랑해요”를 외쳤고 강 대표는 “오늘 재판의 결과는 여러분과 12만 사천시민들의 승리이며 그동안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국회 난동 후 첩첩산중

17대 국회에서는 두루마기에 고무신을 신은 농민출신 ‘괴짜’ 의원으로 인식됐던 강 대표가 요즘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는 정치인 중 한 명이 됐다. 그가 벌인 ‘국회 활극’에 대해 국회 사무처가 폭력 행위로 검찰 고발을 검토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의원 제명까지 추진하고 있어 ‘사면초가’에 빠졌기 때문이다.
국회 의장실과 사무총장실에서 탁자에 뛰어 오르고 기물을 휘두르는 등 ‘나 홀로 활극’을 벌인 강 대표에 대해 민주당을 제외한 정치권은 “더는 참을 수 없다”며 응징에 나서기로 했다.
한나라당 안경률 사무총장은 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강 대표가 그동안 폭언과 폭력, 의사진행방해, 나홀로 난투극을 벌여 의정질서를 어지럽히는 등 한심한 작태를 보여줬다”면서 강 대표를 폭력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하고 의원직 사퇴 결의안 제출도 추진키로 했다.
그는 이어 “국회 사무처는 철저히 진상을 파악해 의법조치해야 할 것”이라며 “국회에서도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고 18대 최초의 국회의원 제명도 불사하는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 사무처도 이날 강 대표가 국회의장실과 사무총장실에서 폭력 행위를 한 데 대해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 브리핑에서 “강 대표가 국회의장실과 국회사무총장에게 가한 폭력행위와 모욕적 언사에 대해 내일(7일) 낮 12시까지 국민 앞에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사과하지 않을 경우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폭력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여기에 검찰도 가세했다. 검찰은 강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법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 강 대표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검찰은 또 총선 당시 강 대표의 선거사무장 조수현씨에 대한 벌금 250만원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본인의 경우 벌금 100만원 이상, 그리고 선거사무장이나 회계책임자, 가족이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확정 받으면 의원직 당선 무효가 된다.
강 대표에 대해 국회 사무처가 폭력 행위로 검찰 고발을 검토하고 한나라당은 의원 제명까지 추진하고 나선 상황이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있다.
민노당은 국회사무처의 사과 요구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국회 사무처의 권한남용을 경고하기 위해 분노를 표출한 것이며, 정당한 법안심사 활동의 일환”이라고 했다. 오히려 “강 대표가 농성 해산과정에서 손가락이 부러져 전치 10주의 진단을 받았다”고 항변했다.
한나라당의 의원 제명 추진에 대해서는 ‘민주당에 크게 뺨 맞고 강 대표에게 화풀이하는 꼴’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강 대표도 폭력행위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 그동안 “우리는 도둑 잡는 깡패”라며 “이번에는 맞짱을 떠서 머리가 터지든 창자가 터지든 끝장을 봐야 한다”며 폭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검찰의 항소로 강 대표의 의원직 유지 여부를 고등법원에서 다시 따지게 돼 ‘미국 쇠고기 반대’ 최전방에 나서며 ‘미국산 쇠고기’ 청문회에서 스타로 탄생하는 등 농민을 대변하며 몸을 던졌던 그가 이번에는 어떤 해법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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