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현장> 국정감사 낭중지추

▲ “빛나보자” 18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 의원들의 총공세가 이어졌다. 한번이라도 더 국민들의 ‘시선’을 받고 ‘빛나기’ 위해서다.


공공기관에 대한 날카로운 질타와 여야간 쟁투로 ‘인물’이 빠르게 부각될 수 있는 18대 첫 국정감사가 마무리됐다. 국감기간 내 수많은 의원 중 ‘낭중지추’처럼 두각을 나타낸 의원들이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특히 이번 국감은 초선다운 패기로 국감장을 종횡무진한 이들 외에도 초선임에도 녹록찮은 관록을 보인 의원들은 물론 여당임에도 야당 못지 않은 따끔한 질책을 한 의원들과 평소 국감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중진 의원들이 연륜을 앞세운 노련함과 전문성을 들고 나서면서 다양한 ‘인물론’을 선보였다. 국감 전반을 휘어잡은 ‘스타’를 꼽는 데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지만 각 상임위별 ‘국감인물’에는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주목받은 국감 인물…패기의 초선, 연륜의 중진, 날카로운 아군의 시선
‘초선 못지않은 열의’ 박영선·김충조·문희상·서청원·박근혜·정몽준 의원



국정감사 뒤로는 ‘스타’가 따라나선다. 탄탄한 정책 기본기와 날카로운 언변으로 국감장을 휘어잡은 이들은 국민적 시선을 받는 ‘스타’로 뛰어오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번 국감에서는 ‘스타기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단하게 부각된 인물은 없었지만 스타가 될 ‘싹’을 드러낸 인물은 적지 않았다.

첫발부터 경쾌하게 달려

18대 국회 첫 국감은 10년만의 정권교체로 여야의 공수가 바뀌면서 초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모습이 연출됐다. 여당은 지난 참여정부의 과실을 집중 공격했고 야당이 된 민주당은 방어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 것. 방어에 힘을 쏟다보니 ‘공격성향’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이명박 정부의 정권 초 실책에 대한 공격에는 버거워 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야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야권 한 관계자는 “각 상임위에 전문가를 배치하는데 공을 들였던 만큼 국감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발견할 것”이라며 “이번 국감에서 큰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첫발을 뗀다는 심정으로 국감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각오만큼 야당의 초선의원 중에서 국감을 보내며 짧은 기간 내공을 키운 이들이 적지 않다.
민주당에서는 최문순 의원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MBC 사장 출신인 최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국감에서 상임위 시절부터 쌓아온 입담을 과시했다.
그는 그동안 주력해온 ‘KBS 사태’ 등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에 대한 비판에 덧붙여 ‘연합뉴스 낙하산설’에 화포를 집중했다. 연합뉴스 최대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에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시절 언론특보를 지낸 인물이 낙하산으로 내려올 채비를 마쳤다는 ‘낙하산 인사설’을 거론하며 “YTN 사태, KBS 사태를 겪으며 ‘소문이 곧 현실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허투로 듣고 흘리기 어렵다”고 꼬집으며 “이사장은 이사들이 선임된 뒤 호선을 거치게 돼 있지만 대통령이 추천권을 갖고 있는데 누가 이를 막을 수 있겠느냐”고 날을 세웠다.
한나라당은 ‘물 반 초선 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초선의 비율이 높다. 이 중 지난 대선에서 ‘BBK 소방수’로 활약했던 고승덕 위원은 정무위원회에서 피감기관을 거침없이 몰아붙이며 진가를 드러냈다.
변호사인 동시에 펀드매니저 자격증을 갖춘 금융분야 전문가인 고 의원은 국감에서 논의한 각종 사안에서 자신의 법률 지식은 물론 금융투자 노하우 등 풍부한 지식과 경험, 구체적 자료를 근거로 송곳질문을 이어가 피감기관을 긴장하게 했다.
회의실 배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서서 질의하는 이색행보를 선보인 이정현 의원도 국감장에서 두드러진 의원이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국감에서 “피감기관이 상전이냐”며 발언대에 선채 질의를 해 여야 의원들은 물론, 피감기관과 언론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이 의원의 행보는 ‘이색’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YTN 해고사태’와 관련, “언론은 무지개와 같아서 누구든지 한번쯤은 잡아보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잡을 수도 없고 잡히지도 않는다.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면 자격이 없고 잡히는 언론도 자격이 없다”며 구본홍 YTN사장에게 일침을 가했다.
또 당 홈페이지에 올린 ‘초선유감’이라는 글에서 “국정감사는 행정부에게 면죄부를 주는 통과의례 같다. 국정실패, 예산 낭비, 부정부패, 권력남용, 무능태만을 수박겉핥기식 질의응답을 통해 없었던 일로 면책시키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번 국감을 통해 ‘정책 정당’의 면모를 세운 민주노동당에서는 이정희 의원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 의원은 여성 특유의 예리한 질문에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까지 선보이며 ‘국감 여풍’을 주도했다.
이 의원은 정무위 국무총리실 국감에서 “지난 달 촛불집회에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전모씨 등 주부 3명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명백한 과잉·강압수사”라고 지적했다. 이에 조중표 국무총리실장이 “수사가 진행 중이라 총리실에서 답변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답을 피하자 “‘유모차를 끌고 위험한 집회에 나온 것에 대해 아동학대죄 적용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한 어청수 경찰청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며 “총리실에서 어 청장에게 자제요구나 경고조치를 한 적이 있느냐”고 송곳 질의를 이어가며 첨예한 공방을 벌였다.

야권 중진들의 반격 시작되다

이번 국감에서는 중진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이전 국감에서 중진의원들은 정무나 연수 등을 이유로 국감에는 소홀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초선의원이 많지 않아 중진까지 ‘공격대열’에 뛰어들어야 했던 민주당은 물론 ‘거물급’으로 평가받는 여당의 중진들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 ‘정책 정치인’ 이미지를 다시 세웠다.
이번 국감에서 야당의 ‘저격수’는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었다.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에서 박 의원은 감사원의 KBS감사와 관련된 의혹과 관련, “감사원이 국민감사청구와 별도로 자체 감사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했지만, 감사원의 어떤 문서에도 이를 뒷받침할 기록이 없었다”며 국민감사청구심사위 회의록 필사본을 제시했다.
KBS 감사에 대한 문제점을 끈질기게 지적한 박 의원은 결국 “(KBS 감사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며,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시기·절차·방법에 오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김황식 감사원장의 시인을 받아냈다.
헌법재판소 국감장에서는 “종합부동세 개정안을 낸 분들의 대부분은 강남이 지역구인 한나라당 의원들”이라며 강공을 퍼부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사과하라”고 압박했으나 박 의원은 “이건 팩트(사실)다, 속담에 ‘(도둑이) 제 발 저린다죠’”라고 일격을 가하는 등 분위기를 주도했다.
5선의 김충조 의원과 4선인 문희상 국회부의장은 보도자료를 다량 배포하고 이슈몰이를 하며 힘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의원은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누출 비판, 서울시의 정보 비공개 문제 지적, 던지는 소화기에 있는 맹독약품의 문제점 폭로, 환경노동위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며 문 국회부의장은 “현재 민주당의 수적 열세인 의석수를 생각하면 국회 부의장으로서의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며 기관 감사는 물론 시찰 등 국감일정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다.
또한 문 의원은 “국회가 국민을 대표해 국정을 감사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구 정권 대 현 정권의 싸움이라는 정략적 차원이 도입돼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고 비판, 여야의 시선을 국감 본연의 것으로 돌리기도 했다.
6선의 관록을 자랑하는 친박연대 서청원 의원도 국감에 본격적으로 임하고 있다. 서 의원은 병무청 국감에서 인체모형과 체지방 측정기를 가져와 직접 시현해본데 이어 병사들이 사용하는 수통을 들고 나와 “훈련소에 가서 아버지가 먹던 수통으로 아들이 먹고 손자가 먹고, 거기서 뭐가 나올지 아냐. 이거 제대로 청소하겠냐”고 군 복지 개선을 요구해 별 4개 참모총장을 쩔쩔매게 했다.

여당 대권주자 ‘정책’ 승부수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평가받는 박근혜 전 대표는 그동안 정치행보를 자제하고 ‘정책 공부’에만 매진해왔던 것을 이번 국감장에서 풀어냈다.
박 의원은 날카롭고 화려한 언변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닌 자문단과의 충분한 정책적 검토를 거친 복지현안 대안 제시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복지부에 대한 첫 국감에서 멜라민 사태와 관련, “미국과 중국 간에는 지난해 말 위해 우려식품을 정부에 등록하고 사전검사를 거치도록 약정을 맺었는데 우리도 그렇게 위생협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국민연금공단 국감에선 “국민연금을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으로 이원화해서 당장의 생계가 어려워 보험료를 낼 수 없는 분들에겐 국가가 기초연금으로 보호해야 한다”며 ‘국민 1인 1연금제’를 제안했다.


관록 있는 초선 의원…송민순·이용섭 민주당 의원, 김장수 한나라당 의원
적의 한마디보다 아픈 아군의 쓴소리 일격…한나라당 김성식·권영진 의원


현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겸 올림픽조직위 위원장, 국회 한미협의회 회장 등 화려한 직함을 가지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정몽준 의원은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감에서 ‘국가 정통성 및 정체성’에 대한 부분에 집중했다.
정 의원은 외교통상부 국감에서 한국이 1997년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기점으로 독도가 아닌 울릉도를 결정한 것과 관련, “대한제국 말기에 일본 이익을 대변한 정부 책임자들과 똑같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유엔대표부에 대한 국감에서는 “유엔 홈페이지에 ‘일본해’를 단독 표기한 것은 유엔이 자신이 정한 국제규범을 스스로 위반한 것”이라며 유엔대표부의 적극적 외교역량 발휘를 주문했다.

관록있는 초선, 여당 내 야성

이 밖에 다선 의원 같은 관록을 보인 초선과 여당 의원임에도 송곳질의를 하는 등 ‘야성’을 보였던 의원들이 이목을 끌었다.
민주당의 ‘관록 초선’은 지난 정권 장관출신이었던 이들이었다. 송민순 의원과 이용섭 의원이 그들이다. 외교장관을 역임했던 송 의원은 북핵 및 탈북자문제, 한·미 FTA 비준에 대해 비판보다는 ‘대안 제시’를 통해 역량을 드러냈으며 이 의원은 국토해양위 국감에서 종부세 완하에 대한 민주당의 공세를 이끌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허리를 굽히지 않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해 ‘꼿꼿장수’라는 별명을 얻은 한나라당 김장수 의원은 방사청 기능 이관 문제, 국방 개혁 2020 등의 사안을 두고 국방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이면서도 정부에 대한 ‘야성’을 드러낸 이들이 적지 않았다. 김성식 의원은 “환율은 경제 주권을 방어하는 수단이고 시장에 맡겨둬서는 안된다”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인수위원회 시절 발언을 언급하며 정부의 환율개입을 질책했다.
또한 김 의원은 “전세계적인 경제 침체와 관련 재정 여력을 위해 감세의 시기와 폭의 조절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질의, 정부의 감세정책에 속도조절을 강조했다.
김 의원이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논한다면 권영진 의원은 ‘교육정책’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정부가 생활보호대상 가정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이들이 신용불량자 신세가 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특단의 장학금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관계부처 장관들을 추궁했다.
이진복 의원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행정심판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등의 통합 조치에 대해 “이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발표된 위원회 줄이기 정책에 성과를 내기 위해 졸속으로 추진한 감이 있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시절 참여정부와의 차별성을 위해 무리한 통폐합을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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