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바다> 저자 오승록

초등학교 은사님 “일기쓰기 등 통해 글에 대한 재능·의욕 일깨워 줬다”
김밥집 2층 작업실서 숙식해가며 3년여 동안 땀으로 빚어낸 소설 <바다>


평범한 분식집의 철가방 아저씨가 장편소설을 썼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설마…’ 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장편소설 <바다>의 저자 오승록씨는 정말 평범한 분식집에서 음식을 홀서빙하고 배달하는 일명 ‘철가방 아저씨’다.

온 종일 밀려드는 배달로 몸은 고됐지만 소설을 쓰는 그의 손은 멈출 줄 몰랐다. 소설 <바다>는 3년여에 걸친 오승록씨의 땀과 노력으로 빚어낸 결실이다.

▲ 소설 '바다'의 저자 오승록

<바다>가 말한다.

‘나와 같이 여행을 떠나자. 단 한번만이라도 끝까지 함께 가보자. 힘찬 파도가 철썩이는 나. 청춘의 피 끓는 가슴같이 끝없이 생명이 부활하는 나. 자,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나보자’

<바다>는 질곡의 시대 ‘등불’이 되고자, 어두운 사회 ‘횃불’이 되고자 그리고 혼돈 속 ‘샛별’이 되고자 분골쇄신 몸부림치고 있다. 바로 지금 당신을 위해…

장편소설 <바다>의 저자 오승록(51·서울 마포구)씨는 조그마한 김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평범한 50대 아저씨이다. 하지만 그의 평범한 모습 내면에는 그 누구보다 뜨거운 글에 대한 열정이 숨어 있었다.

잊지 못할 129장 러브레터

오씨가 글에 대한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12살 즈음부터다.
남도 끝자락에 자리 잡은 전남 고흥 출생인 오씨는 늘 바다와 자연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급장 자리를 내놓지 않았을 정도로 똑똑했던 그는 당시 마을의 이장댁에서 책을 빌려보면서 글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글쓰기 재미를 불러일으켜 주고 글에 대한 재능과 의욕을 일깨워주신 초등학교때 은사님에 대해 감사해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6학년까지 김권암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셨는데, 그때 그분이 일기를 쓰게 하면서 글쓰기의 재미를 알게 됐어요. 또 매일 칠판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기사들을 써주셔서 시사적인 논의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당시로선 정말 남달랐던 교육 방식이었죠”

초등학교 졸업 후에도 꾸준히 일기를 쓰며 오씨는 글쓰기의 기초를 다졌다.

하지만 오씨는 고등학교 2학년때 깊은 상사병에 걸려 학교를 휴학하게 된다. 오씨는 이때를 그의 글인생에 전환기로 꼽았다.

당시 깊은 상사병에 걸려 학교도 다니지 못하게 된 오씨는 학교를 휴학하고 광주에서 사촌형과 자취를 하며 그가 사랑했던 소녀를 향한 장문의 러브레터를 써내려 갔다.

오씨는 몇날 몇일 잠도 안자고 먹지도 않고 글을 썼던 129장(양면으로)의 편지글을 평생 잊지 못할 첫 작품으로 손꼽았다.

“중학교 때부터 짝사랑한 한 소녀가 있었어요. 그런데 한번도 나를 쳐다봐 주지 않아 몹시 힘들어 했었죠. 그렇게 휴학을 하고 썼던 러브레터도 퇴짜를 맞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 소녀에 대한 제 애뜻했던 첫사랑은 지금 ‘학골에 핀 순정’이라는 글로 다시 재탄생하고 있어요”

또 오씨는 이 시기에 여수 MBC 라디오 방송국에 농어촌 풍경을 쓴 수필을 보내 사연이 채택되면서 글쓰기에 대한 용기를 얻기 시작했다고 한다.

손으로 써내려간 ‘바다’

오씨는 평생 글쓰기를 꿈꿨으나 현실은 너무도 어려웠다.

그는 군 제대 후 부산의 한 신발공장에 취업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작가의 꿈은 생계를 위해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글에 대한 열정만은 꺽을 수 없었던 그는 회사 사보에 공장근로자들의 삶의 애환을 담은 수필을 연재하는 등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오씨는 틈틈이 시도 썼다.



그의 첫 시집 <어머니의 자리>는 그가 아프신 어머니를 직접 간병하면서 느꼈던 노모에 대한 애뜻한 사랑을 효심 깊은 마음으로 써내려간 간병기 시집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오씨는 고향에 내려가 농장 사업을 시도하지만, 장사경험 한 번 없는 그에게 사업은 ‘실패’라는 아픔으로 돌아왔다.

그후 오씨는 오랜 방황 끝에 지인의 소개로 서울로 상경해 지금의 김밥집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의 첫 장편소설 <바다>는 그의 고향 전남 고흥 어촌마을을 배경으로 노총각 어부 강선구와 여주분교 선생님 차유리의 순백한 사랑과 강선구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강선구는 30대 중반의 어촌마을의 순수한 노총각으로, 늙은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효심 깊은 청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의 아픔을 지닌 차유리가 이 어촌마을 작은 분교 선생님으로 전근을 오게 된다.

유리는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선구를 처음보는 순간부터 사랑의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의 순수하고 성실한 모습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선구는 자신이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처지라 유리에 대한 마음을 좀처럼 열지 못한다.

오씨에게 <바다>는 그냥 소설이 아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저녁 10시까지 김밥집에서 배달을 하며,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면서 직접 손으로 써내려간 노력의 산물이다.

“배달을 하면서 소설을 쓰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죠. 김밥집 2층 조그마한 저만의 작업실에서 먹고 자면서 꼬박 3년여가 걸린 작품입니다. 때로는 소설 생각 때문에 배달을 잘못가거나 라면이 불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죠”

지금까지도 문명의 기계적인 삶에 익숙해지는 게 싫다며 육필을 고집하고 있는 오씨는 원고지도 아까워 문방구에서 얻어온 이면지에 글을 써 <바다>를 완성시켰다.

오씨는 “<바다>를 통해 두 주인공 남녀의 조건 없는 순백한 사랑과 주인공들의 정직한 삶, 남자주인공 강선구를 통해 부모에 대한 효를 말하고자 했어요.

이 소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얻어 갔으면 좋겠어요”라며 “하지만 요즘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책이야 말로 지혜를 배우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오씨는 비록 대학교육도 번듯한 작가 수업도 받아본 적 없지만, 그에게 책이 가장 훌륭한 스승이자 벗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오씨는 그가 많은 책을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 해왔듯 “소설 <바다>도 누군가의 ‘등불’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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