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의 반격 프로젝트

▲ “나, 마이크 들었다”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발언이 늘어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에 대해 비판하고 여권의 ‘건국절’ 추진 움직임에 쓴소리를 한 데 이어 민주당 도당대회를 찾아 훈수를 두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정치 현안에 대한 발언을 불편해했던 노 전 대통령이지만 최근 움직임에서는 정치 재개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까닭이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 도당대회를 찾아 정치 현안에 대한 훈수를 두는가 하면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보다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을 통해 돕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민주세력 ‘거들기’에 한 팔을 걷어붙였다. ‘친노’라 불리는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도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참여정부 실세 총리였던 이해찬 전 총리가 이끌고 있는 연구재단 ‘광장’은 최근 대규모 연찬회를 가졌으며 그의 ‘서울시장 출마설’도 떠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시민 밀어주기’가 진행되고 있으며 최근 출발을 알린 친노 모임 ‘청정회’에 참여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한 정치복귀를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광폭 행보로 현실 정치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민주당 경남도당 전진대회에 참석, 정치권에 대한 훈수를 아끼지 않았다.

정권교체 ‘영남 스타론’

노 전 대통령은 이날 격려사에서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정당이 되려면 전국 정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진 것도 문제지만 제대로 경기다운 경기를 못해 본 싸움이라는 점에서 아쉽다”며 “당이 계속 내부에서 서로 분열되고 요동치고 하는 동안에 그런 결과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영남 스타론’을 폈다. “호남과 충청표를 합쳐도 영남표만큼 안되고 정권을 잡더라도 국회에서 다수당 못 만들어 낸다. 이 같은 선거전략으로는 백전백패”라며 1997년 김대중 정부를 탄생시킨 ‘호남+충청’ 전략의 한계를 지적한 것.

노 전 대통령은 종전의 연합 전략을 타파해야 한다는 것 외에도 “당 지도부들이 지역구 정치를 벗어나야 한다”며 “지역구는 잘되는데 당이 안 된다면 정치적 지도자가 못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행보에 대해 “요즘 정치인으로서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앞으로도 안할 것”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정치인이 정치를 안 하면 강연이 본업인데 강연보다 좀 더 중요한 일이 미디어에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과 ‘화해’ 후 경남도당 전진대회 참석, 현실정치 거리 줄이기
이해찬·유시민 등 대선주자급 스타가 뜬다 ‘영남스타론’ 모락모락


노 전 대통령은 “현재 미디어는 너무 편중돼 있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기에는 역량이 부족하고 수준이 낮다”며 “KBS사장을 저렇게 집요하게 쫓아내는 것이 불안하고 MBC도 민영화한다는데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며 많은 사람이 의존하는 인터넷도 의견교환이 없어 깊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의견을)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고 토론문화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민주주의 2.0을 개발 중”이라며 “대통령 그만두고 민주당 편들며 핏대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주주의 2.0을 하면서 시민들의 정치의식과 안목을 향상시키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마무리 단계에 있는 웹2.0방식의 정치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2.0’의 기획서를 직접 만들고 홈페이지의 본격적인 운영에 앞서 나타날 수 있는 소소한 문제들까지 직접 챙기는 등 심열을 기울이고 있다. ‘민주주의 2.0’은 베타서비스를 진행 중이며 사이트 운영을 목전에 두고 있다.

다시 뜨는 이해찬·유시민

정치권은 노 전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연합 전략’은 ‘호남+충청’에서 ‘호남+영남’으로의 교체다. 때문에 정치권은 친노 주자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변함없는 애정을 강조하며 ‘영남 스타론’을 내세우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바라는 것은 민주당이 영남과의 연대를 통해 ‘호남당’이라는 인식을 벗어던지는 것과 유시민(경북), 김두관(경남) 전 장관는 영남권 인재를 영입, ‘스타’로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또한 이들뿐 아니라 이해찬 전 총리 등 친노그룹의 민주당 복귀를 은연 중 요구한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지난 대선 반노무현 기조에도 불구, 선전한 친노의 힘이 결코 작지 않으며 이들이 각각 역량을 키우고 있어 민주당 ‘스타’로써의 가치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제 친노그룹의 차기주자들은 각개약진하며 힘을 키워가고 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치권을 떠나 경북대에서 ‘생활과 경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이 강의에서 대운하를 비롯한 의료보험 민영화, 공기업민영화, 조세정책, 부동산 정책 등 주요 현안들에 대해서도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장관은 100여 명의 팬클럽(시민광장) 회원들과 마을 숲가꾸기 행사에 자원봉사차 참석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유시민이를 진작 장관을 시켰어야 했는데 주위에서 조직적인 반대를 해서 너무 늦게 시켰다. 그런데 시켜보니 정말로 일을 잘했다”고 칭찬하며 유시민 팬클럽 회원들에게 “유시민이 요즘 편하게 놀고 있는 것 같은데 말에 태워서 말 궁뎅이를 때리면 달려간다. 여러분들이 그 역할을 맡아 달라”고 당부했다.

또 “유시민을 밀어주고 싶어도 요즘은 부작용이 날까봐서 못 밀어주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확 밀어줄 날이 있지 않겠느냐”며 유 전 장관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때문에 야권 일각에서는 유 전 장관에 대해 “지금은 탈당한데다 정치권을 떠나 있지만 앞으로 정국 변화에 따라 영남을 기반으로 한 스타 정치인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노사모’ 만큼이나 단단한 결속력을 자랑하는 그의 지지세력도 그가 언제든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해찬 전 총리는 지난 4월 설립한 재단법인 ‘광장’에서 남북, 경제, 교육 등 분야별 연구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는 진보진영의 복원을 목표로 하는 참여정부 장·차관 출신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으며 진보진영의 정책노선 재정립을 위한 계간지 ‘광장’ 발행과 홈페이지 이슈브리핑 등을 통해 정책적 대안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는 8월30일에서 31일까지 1박2일동안 가진 광장 하계수련회에서 “집권했던 세력으로서 퇴행하는 역사를 막고, 민생을 안정시키고, 한반도의 분단체계를 극복할 수 있는, 그런 희망을 줄 수 있는 실천 가능한 대안,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과 자세를 보여주고 꾸준히 헌신해 나가는 모습을 보일 때만이 개혁 세력이 다시 한번 국민에게 신뢰와 지지를 받고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재의 연구 집중이 ‘대안세력’의 역량을 키우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이 전 총리를 비롯해 민주당 김종률, 양승조, 김세웅 의원과 열린우리당 시절 친노 모임인 ‘참여정치실천연대’의 멤버였던 김태년, 김형주, 유기홍, 이경숙, 이화영, 한병도, 홍미영 전 의원 등 회원 200여 명이 참석, 지난 4월 광장이 ‘진보개혁 진영의 싱크탱크’를 자임하며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세를 과시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 전 총리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여전하다”며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 전 총리를 내세워야 한다는 말도 나올 정도”라고 전한다. 그러나 광장은 민주당 복당보다는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 안팎에서 뛴다

유 전 장관과 이 전 총리가 각각의 영역에서 소통하고, 대안을 만들어내고 있다면 정치권에서는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친노 대표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당 내 세력교체로 친노의 입지가 불안한 가운데 당 지도부에까지 오르며 선전하고 있는 것. 안 최고위원 외 이광재, 서갑원, 백원우, 송민순, 이용섭, 조영택 의원 등이 현역으로 뛰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전해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윤승용 전 홍보수석 등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인사 60여 명이 ‘청정회(靑政會)’로 뭉쳤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중 원내에 진입했거나 앞으로 정계 진출을 노리고 있는 인사들로 일단 4월 총선 출마자와 낙천자 위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단순 친목모임일 뿐 독자 세력화 계획은 없다는 게 우리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정치세력화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 중 2010년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아 모임이 세력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 성경륭,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성환 전 정책조정비서관 등은 참여정부의 공과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미래정책연구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9월중 공식 발족할 예정이며 10월4일 남북정상회담 1주년 기념식을 준비하고 있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봉화를 설립, 노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가꾸기 사업을 지원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소득을 증대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고 있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대통령기록관 건립을 자체 추진키로 결정하고 모금활동을 전개 중이다. 지난 7월22일부터 시작된 모금활동은 8월8일 노무현 대통령기록관 건립 추진위원회 2차 연석회의를 거쳐 9월1일 현재 현금 2777만1888원, 약정 1억1073만원을 모금했다.

이들은 이후 노무현 대통령기록관 건립을 위한 재단법인을 설립, 노무현 대통령기록관 건립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한나라당, 전 대통령 집중 마크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행보에 “정치 재개 아니냐”며 견제에 들어갔다.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경남도당 전진대회에 참석한 것에 대해 “정당의 당원 대회에 참가해 연설을 하고, 정치 사이트를 개설하는 게 정치가 아니라면 무엇이냐”며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재개는 본인의 자유이지만 언행이 일치했으면 좋겠다”고 일갈했다.

그는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처럼 해비타트 운동을 하거나 앨 고어 전 부통령처럼 지구온난화 방지운동을 하면 모를까 노 전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상왕 정치’를 닮아간다”며 “말로는 정치를 안 한다면서 행동은 정치 깊숙이 들어와 있어 헷갈린다”고 꼬집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운영할 인터넷 사이트도 불만의 배설장이 아니라 건전한 담론의 교환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은근한 경고신호를 보냈다.


‘민주주의 2.0’ 통한 정치 재개 “정치인으로서 정치활동은 안하지~”
한나라당 盧 집중 마크 “말로는 정치 안 한다면서 행동은 왜 그래”


한나라당은 여기에 퇴임 후 이미지 관련 문건을 연결, 공세를 이어갔다. 한나라당 이진복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실이 작성한 ‘참여정부의 축약된 가치지향점 설정 검토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문건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상생’ 가치를 이어감으로써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제기돼온 편가르기를 ‘함께 발전하는’, 독불장군은 ‘소신 있는’, 좌충우돌은 ‘소통하는’ 이미지로 바로잡을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도시·농촌공동체 복원 운동을 펼치고 적극적인 강연,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문건과 관련, “재임시절 국민을 피곤하게 해놓고 퇴임 후 농촌운동, 강연, 인터넷 대화를 한다고 노 전 대통령의 실체나 이미지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측 김경수 비서관은 “공개된 문건은 변양균 정책실장 개인 차원의 보고서이자 실제 사용되지 않은 종료된 보고서”라며 “문제는 전 정권이 남긴 기록물을 뒤져 이를 전직 대통령을 흠집내는 수단, 정쟁으로 끌어들이는 도구로 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노 전 대통령과 측근들의 움직임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응에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전 정권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하기엔 한나라당의 견제가 심각할 정도”라며 “봉하마을로 귀향해 촌노로 돌아간 노 전 대통령이지만 관광객들에게 하루 2~3차례 강연을 하는 등 수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적 파급효과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의 정치활동은 하지 않지만 ‘정치’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민과 곧장 통할 수 있는 미디어를 얻으면 그의 정치력은 더 커질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며 전 정권의 비리를 캐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하다. 그러나 목줄을 죄어올수록 노 전 대통령과 친노가 그동안 쌓아온 힘을 드러내고 현 정권에 반격할 시간도 짧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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