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사춘기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

황혼 무렵 고즈넉한 서쪽 하늘,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뜨는 밝은 별이 있다. 길 위의 구도자인 주인공 유준이 문득 올려다본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인’ 개밥바라기별이다.

출간되는 작품마다 프랑스·미국·독일·영국·일본 등 해외 각국에 번역 출간돼 세계인들과 함께 읽는 거장 황석영이 신작 장편소설 ‘개밥바라기별’을 내놓았다. 이 소설은 올해 2월27일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처음 연재를 시작한 후 6개월 가까운 시간동안 많은 네티즌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숱한 화제를 낳았다. 누적 방문자 수만 180만에 이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인터넷 매체는 너무나 가벼워서 본격문학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통념을 깨뜨렸다는 것이다.

‘개밥바라기별’은 황석영이 작정하고 쓴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주인공 준이 겪는 소년 시절의 방황을 통해 자신이 실제로 경험했던 청춘의 기록을 담은 것이다.

그는 사춘기 때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던 세계에 대해 회의하고,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갈등하고 방황하는 시기. 이 소설은 황석영이 겪은 그리고 준이 겪은 그 시간들에 대한 ‘돌아봄’이다.

그는 고교시절 4·19의 현장에서 총 맞아 죽은 친구를 껴안았고, 한일회담 반대시위의 현장에 있었고, 그로 인해 구금된 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를 만나 그를 따라 전국을 떠돌았다. 공사판에서 뒹굴며 함바 밥을 먹고, 오징어잡이배를 타고 밤새 오징어를 잡고 격랑에 흔들리는 갑판에서 쓴소주와 함께 밥을 먹었다. 빵공장에서 일하고, 입산한다고 행자생활도 했다. 19세의 어린 나이에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입선하여 등단했지만 생과 세계에 대한 그의 갈증과 허기는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방황하고 괴로워하고 또 상처 받았던 시기. 이 소설은 그 시절의 아픈 기억들을 꺼내 보여줌으로써 한 인간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의 황석영을 있게 한 그 시간들에는 그의 예술관과 세계관이 형성되어가는 과정과 문학적 원형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것이다.

황석영, 사춘기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
갈등하고 방황하고 괴로워했던 청춘이 남긴 ‘사람의 성장’


황석영은 “나는 이 소설에서 사춘기 때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에 대하여 썼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다만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우리 한때, 아프고 힘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난날을 ‘축제’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나간 시간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가슴이 아프게 마련이다. 늘 지금에 충실하려 애쓰지만, 돌아본 자리에는 늘 크고 작은 흉터가 남아 있다. 호호 불어 찢어진 자리를 다독이고, 약을 바르고 또 꿰매고…. 그렇게 다 아문 줄 알았던 상처들은 그러나 고스란히 가슴 한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간다. 어쩌면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더 아프고 곪아터진 후에 아물었어야 할 상처들을, 두렵고 겁이 나 서둘러 그렇게 묻어버렸던 그 비밀의 창고를 그대로 품에 안고서.

그것들은 그러나, 단지 ‘상처’일 뿐일까. 그렇게 서둘러 닫아버린 상처 안에 사실은, 잃어버린 꿈들과 붙잡지 못한 희망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도 함께 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개밥바라기별’은 바로 그 상처를 들여다본다.
개밥바라기별 / 황석영 저 / 문학동네 /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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