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 있는 경영 철학…하지만 모두 정공법 위기탈출

우리 경제가 이중 삼중의 악재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제 전반에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외환보유고를 제외하면 오히려 외환위기 때보다도 최악의 상황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려온다. MB(이명박 정부)노믹스의 근간을 이루는 성장이나 일자리,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요원한 상황이다. 때문일까. 재계에서도 위기탈출 해법 찾기가 한창이다. 악전고투를 거듭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위기를 극복할 대안 모색이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시사신문>은 이에 국내 굴지 기업의 총수들의 지나온 길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 봤다.

재계 전반적으로 위기감이 높다. 대외적인 악재에다 국내 사정도 별반 나아지지 않고 있다. 팔아도 파는 게 아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업 총수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큰 그림을 그려 기업의 이윤창출과 더불어 국가 경제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내야 하는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위기 때마다 빛나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우리 경제의 중심을 이끌고 있는 주요 그룹사 총수들의 경영행보는 어떠했을까. 각각의 확고한 경영철학을 갖고 소신 있는 경영을 하고 있지만 결국 품질과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모두 한결같은 위기탈출 정공법을 걷고 있다.

환골탈태 삼성그룹 ‘뉴 시대’ 개막

▲ 이수빈 삼성그룹 회장.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삼성그룹은 특검에 이어 법정공방의 회오리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오너와 최고위 수뇌부가 일선에서 퇴진하는 아픔을 겪으며 경영 전반에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8%, 국내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할 만큼 우리 경제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삼성이어서 최근의 경제 상황과 맞물려 우려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삼성의 성공신화마저 퇴색되어선 안된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특히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업적은 자천타천 경제계가 배워야 할 경영능력 1순위이다. 단적으로 1987년 이 전 회장이 삼성의 대권을 이어받을 때만해도 1조원에 불과하던 주식의 시가총액은 현재 140조원으로 140배나 증가했고, ‘신경영론’을 주창하면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 반열에 올려놨다. 그가 수년 전부터 스스로 고민하고 생존전략을 마련하자는 ‘창조경영’을 안팎에 강조하면서 삼성은 이제 사기업을 넘어 국익적 측면에서도 존재감이 높은 대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런 삼성은 이제 ‘뉴삼성 시대’의 환골탈태를 선언했다. 강도 높은 경영쇄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미다. 각 계열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각사의 독자적인 경영역량을 확보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을 대신해 삼성을 대표할 일이 있을 경우 삼성생명의 이수빈 회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주력인 삼성전자 역시 이윤우 부회장 체제로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끝마쳤다. 특검까지 겪는 고초를 불러온 순환출자 문제도 일례로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을 4~5년 내에 매각하겠다고 쇄신안을 발표했고,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진행하고 있다.

삼성이 성공한 초일류기업의 반열에 들어선 것은 아무래도 1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반도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삼성이 경영쇄신을 통해 향후 10년을 이끌어갈 어떤 카드를 내놓게 될지 주목된다.

▲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품질이 곧 경쟁력’ 새 역사 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2000년 자동차 전문 그룹으로 출범한지 8년만에 세계 100대 브랜드에 진입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의 자동차 역사를 새로 써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 대외적인 악재는 근심을 높인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는 노조 파업과 요동치는 환율, 총수의 법정행 등으로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영에 제동이 걸렸으면서도 정몽구 회장이 고집스러울 만큼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품질경영이다. 현대차그룹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정 회장은 그룹을 출범시키면서부터 줄곧 품질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악재들이 겹쳐도 그룹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는 것도 어쩌면 품질경영이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영 차질을 우려하는 시각이 나왔을 당시에도 품질 좋은 차는 고객이 외면하지 않는다는 정 회장의 정공법은 위기탈출 해법으로 악재들을 훌훌 털어 버렸다.

정 회장은 지나치리만큼 품질을 중요하게 여긴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정공, 현대차서비스 등 네 집안이 합쳐진 것이 현대차그룹이지만 품질경영만큼은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 회장이 품질경영을 본격화 한 것은 1999년부터다. 당시만 하더라도 현대차는 세계 시장에서 ‘값싼’ 이미지가 높았다. 현대차의 주력 차종인 ‘쏘나타’는 ‘소나 타는 차’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나 정 회장의 일관된 품질 우선주의가 정착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이후 품질경영을 본격화하면서 이제는 자동차 종주국인 미국시장에서 일본차를 제치고 당당히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정 회장 직속으로 있는 품질경영 핵심부서인 현대기아품질총괄본부는 세계 200여 개 국가를 누비고 있는 현대기아차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하루 24시간, 1년 365일 풀가동되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조건에서 발생하는 품질 및 정비 문제점을 종합 분석해 관리하고 있다고 하니 아무리 대내외적인 악재들이 그룹을 옥죄어도 고난탈출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 구본무 LG그룹 회장.
‘고객가치 극대화’ 위기를 기회로

LG그룹은 철저한 성과주의 경영으로 유명하다. 신상필벌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동기부여는 물론 경영의 체계화를 확립하고 있는 것이다. 바탕에는 단연 고객 만족이라는 숙제가 깔려 있다. 구본무 회장이 줄곧 고객가치경영을 주창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고객이 인정하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 때 진정한 일등 LG가 될 수 있다는 게 구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이미 이런 경영철학은 국내 무대를 넘어 세계무대로까지 정착되고 있다.

구 회장이 고객가치 경영을 강조하는 이유는 기업 존재의 핵심이 고객이고, 고객 중심의 생각과 고객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이 성공하는 기업의 필수적인 요건이라는 평소 철학이 바탕이다.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경영의 기본이 바로 고객가치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은 근간이 흔들릴 리 만무하다.

구 회장은 LG가문의 3세 경영인으로 1995년부터 그룹 경영을 맡아오고 있다. 구 회장은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해 LG뿐만 아니라 재계의 중심을 이끄는 선봉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지닌 기업으로 대외적인 평가를 받고 여기에 고객을 우선시하는 경영의 기본이 자리 잡으면서 LG와 GS로 그룹을 분가한 이후 다소 저조했던 실적들이 이제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구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객가치경영을 줄곧 주창하고 있다. 남들과 차별화 된, 모방할 수 없는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 다 하는 전략을 세우지 말고 남과 다른 블루오션을 찾으라는 것 또한 구 회장이 늘상 그룹 안팎에 강조하는 말이다.

LG는 이런 고객가치경영으로 이미 수많은 세계 1등 제품을 만들었다. 단적으로 2005년 11월 국내에 첫선을 보인 LG전자의 초콜릿폰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초콜릿폰의 성공은 단연 고객가치 경영이 잘 반영된 결과다. 고객이 직접 휴대폰을 만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싸이언프로슈머’ 모임을 통해 탄생한 산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다. 기술 보안이 가장 우선시되는 휴대폰 영역에서 휴대전화 기획 단계부터 고객이 직접 참여해 고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차별적인 가치를 담아냈던 것이다.

LG는 지금도 먼저 고객의 생활과 트랜드를 연구한 뒤 고객의 요구에 맞는 제품을 발굴하는 여러 부서를 두고 천년장수기업의 기틀을 만들어 가고 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젊은 총수’ 부지런한 현장경영

SK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행복나눔 경영이다. 최태원 회장은 틈만 나면 행복 전도사로 나선다. 직원들과 함께 연탄을 배달하고 소외된 이웃을 찾는 모습이 자주 매스컴을 탈 정도다. 최 회장은 “SK는 창립이래 줄곧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해 왔다”면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고객, 주주, 종업원, 더 나아가 우리사회 전체 구성원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행복과 직결돼 있다”고 수시로 강조한다.

소버린 사태 등 경영상 한때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런 최 회장의 행복나눔 경영이 믿음과 신뢰로 이어져 고난타파의 한 몫을 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최 회장은 ‘젊은 총수’의 대명사다. 이런 최 회장의 젊음이 큰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 뚝심 있고 지칠 줄 모르는 행보로 국내외를 종횡무진 누비며 글로벌 경영 선봉에서 움직이고 있다.
최 회장은 재계 총수 누구보다 계열사들의 생산현장에 자주 방문한다. 현장경영이 일상화되어 있다.

특히 2004년 ‘뉴SK 재도약’을 선언한 이후 최 회장의 경영행보는 거침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지주회사 전환과 맞물려 ‘글로벌리티’ 경영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최 회장이 SK그룹 승계자로 확정된 것은 지난 1998년 8월 가족회의에서다. 고 최종현 회장이 별세하자 차세대 5인방인 사촌형제들이 모여 당시 ‘SK㈜ 부사장’을 맡고 있던 최 회장을 그룹의 경영권 승계자로 합의했다. 형제경영으로 유명한 SK가문에서조차 최 회장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반증인 셈이다.
최 회장은 ‘인간위주의 경영’을 통해 ‘행복’을 추구한다는 기업 비전에 걸맞게 최고경영자로부터 회사의 시스템 전반에 이르기까지 임직원들이 자발적이고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경영에 박차를 가하면서, 특히 세계 2대 시장인 중국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 중국시장은 SK가 해외 전략시장 거점으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곳이다. SK는 중국 내에서 외국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하나의 중국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을 정도다. 단기적인 이익 창출보다는 중장기적으로 현지에서 굳은 신뢰 구축을 하겠다는 최 회장의 치밀한 전략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유통업도 이젠 ‘글로벌 브랜드’

롯데그룹은 한국과 일본을 넘어 이제 글로벌 시대를 본격화하고 있다. 넓은 보폭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는 관점에서 전통적인 내수업종인 유통부문의 글로벌화를 이뤄가고 있는 것이다. 대외적인 악재들이 겹겹이 난관을 예고하고 있지만 유통업에서 글로벌 브랜드를 개척하려는 롯데의 의지는 지칠 줄 모른다.

‘글로벌 롯데’를 향한 주역은 신동빈 부회장이다. 황태자에서 황제로의 등극을 눈앞에 뒀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 부회장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바빠졌다. ‘은둔의 황태자’란 별칭을 털어 내듯 경영전면에서 활발한 대외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 롯데그룹이 사실상 ‘신동빈 체제’로의 전환을 확립했다는 평가다.

아직까지 대외적인 그룹 오너는 신격호 회장이다. 신 회장이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한 이후 한국롯데를 국내 재계 서열 5위의 ‘유통 명가’로 키워냈다. 하지만 현재 그룹 경영은 동주·동빈 두 아들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큰아들 신동주는 일본롯데, 작은아들 신동빈은 한국롯데의 수장이다.
아무래도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은 신동빈 부회장이다. 신 부회장은 1988년 일본 롯데상사의 이사로 롯데에 합류하기까지 8년을 다른 회사(노무라증권)에서 일했다. 이후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한국무대에 데뷔한 이후 1997년 2월 한국롯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신 부회장은 주력인 롯데쇼핑의 최대주주이자 왕회장인 아버지 신 회장의 후계구도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고령의 신 회장을 대신해 한국롯데의 ‘글로벌 브랜드화’를 야심 차게 진행하고 있다.
한때 일각에서 경영능력을 두고 회의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신 부회장은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모스크바점 개점으로 본격적인 서구권 진출도 이끌었고, 중국 식음료 사업을 총괄하는 롯데중국투자유한공사라는 중국 내 지주회사도 출범시켰다.

고유가 등 원자재가격 급등의 세계시장 공황상태 악재 속에서 신 부회장이 전형적인 내수기업 이미지를 벗고 롯데를 어떻게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시킬 수 있을지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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