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음을 즐기며 시와 소설, 영화와 음악을 추억하다

많은 이들이 여행을 소원한다. 그러나 비행기 티켓을 가져야 하는 해외여행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고 다른 사람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밋밋한’ 따라가기일 뿐이다.

잘 알려진 관광지가 아닌 샛길을 따라, 길이 뿜어내는 페로몬을 좇아, 은둔하는 절경을 찾아, ‘출입금지’ 팻말을 무시하면서 떠나는 여행이 있다. 템스 강 선원, 인터넷방송국 웹PD, 엔터테인먼트사 컨텐츠팀 직원, 목수를 거쳐 여행자가 된 어느 사내의 ‘대한민국 로드 에세이’, ‘길 위의 칸타빌레’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 환승통로를 보며 인생을 다시 생각했다는 사내. 그는 어느 날 샐러리맨 생활에 작별을 고하고 자유로운 여행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여행기는 ‘발길가는 대로’ 흐른다. 그러나 심심하지는 않다. 낯설음에 대한 불안감이 가슴을 두근거리고 하고 여행길에는 시와 소설, 영화와 음악이 적재적소에 길동무로 동행한다. 철원에서는 김주영의 <쇠둘레를 찾아서>를 떠올리고, 제주도에서는 <이재수의 난>을, 순천만 와온리에서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를, 문경새재에서는 최윤의 <문경새재>를, 보성에서는 ‘태백산맥’을, 광주에서는 김두수의 <보헤미안>을, 파주 가는 길에는 김종서의 <혼자 가는 여행>을, 데미샘 가는 길엔 <매트릭스>와 나희덕의 <연두에 울다>를, 군산에서는 <박하사탕>과 이응준의 <파괴공학>을, 부산 태종대에서는 <빠삐용>을 떠올린다.

다양한 상념과 예술이 존재하는 여행, ‘길 위의 칸타빌레’에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지적 탐구에, ‘지구별 여행자’,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의 깨달음에 관한 사색, ‘On the Road’의 자유로운 정신이 한 권에 모여 있다. 때문에 ‘길 위의 칸타빌레’는 여행 안내서이기도 하면서 때론 다큐멘터리 소설 같기도 하고, 교양서적의 풍미도 담고 있는 길 위의 컬처 에세이다. 또한 독특하고 강력한 부추김으로 뇌리와 엉덩이를 동시에 들썩이게 만드는 그는 진정한 대한민국의 히피요, 보헤미안이자 집시 여행자다.

누구나 소원하는 여행, 그러나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
낯설음을 즐기며 시와 소설, 영화와 음악을 추억하다

글쓴이는 “같은 목적지를 가더라도 언제나 루트를 바꾸는 것이 나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심지어 매일 계속되는 조깅에서도 사나흘에 한 번 루트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새로운 길에 대한 갈망과 강박증.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길들. 잘못 들어갔다 다시 나오던 길, 비포장도로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도로도 뭣도 아닌 돌과 흙으로 온통 뒤엉킨 채 차 한 대 달랑 지나갈 폭으로 급경사로 내려앉은 비탈길, 그런 길들의 끝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던 아름다운 풍광, 지도에도 없는 저수지와 길” 등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여행의 ‘묘미’로 꼽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여행은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들고 낯선 불안감이 여행의 기쁨을 낳는다’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산해진미라 해도 내가 먹어보지 않고는 맛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여행도 음식과 마찬가지다. 정해진 속도대로 오로지 한 방향을 향해서만 가야 하는 만들어진 고속도로 위의 만들어진 삶, 그 위에서 정해진 루트대로 따라가는 여행을 통해서는 신선하고 맛있는 낯선 음식을 경험할 수 없다.

지도나 내비게이션 없이도 시작할 수 있어서, 게다가 누구나 아는 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여행기라 한층 더 매력적인 대한민국 로드 에세이. 이번 주말엔 어디를 가볼까 생각한다면 ‘길 위의 칸타빌레’와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떨까.

길 위의 칸타빌레 / 노동효 저 / 삼성출판사 /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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