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연] 매서운 공세에 [삼성증권] 아슬아슬 줄타기

지난해부터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삼성특검이 주주총회에서 본격적으로 격돌했다. 삼성 차명계좌 등으로 대립각을 새워왔던 경제개혁연대가 삼성증권 주주총회에 참여한 것이다. 경제연이 삼성특검 사태 이후 삼성계열사 주총에 참여해 논란을 지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치열한 갑론을박이 계속 되던 주총은 결국 예정보다 훨씬 늦은 세 시간 뒤에나 마칠 수 있었다. 논란의 이날 주총의 현장을 <시사신문>이 찾아봤다.

▲ 지난 6월5일 열린 삼성증권 주주총회 현장의 모습. 이날 주총은 시민단체의 참가로 뜨거운 긴장의 연속이었다. (사진 / 맹철영 기자)
'삼성특검 후폭풍' 경제연 민감한 질의에 긴장한 삼성증권
주총 지연되며 주주들의 반발, 막말 욕설까지 갈등 고조

“순환보직처럼 삼성 계열사마다 돌아가며 맡는 사외이사를 신뢰할 수 있습니까.” “차명계좌 의심계좌를 내부에서 얼마나 찾아냈는지 공개하십시오.”
이 날카로운 질문은 지난 6월5일 제26회 삼성증권 주주총회 현장에서 발언한 경제개혁연대(이하 경제연)의 요구 중 일부다. 이날 열린 삼성증권 주총이 재계의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바로 이런 경제개혁연대의 날카로운 질타에 있다. 특히 경제연이 삼성특검 사태 이후 삼성계열사 주총에 참가하는 것은 처음. 그렇다면 재계의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모았던 이날 주총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3시간 연장 마라톤 주총

오전 9시에 시작한 주총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의 대한상공회의소 지하에 마련됐다. 주주총회 시작 전부터 회장 안에 감돌던 묘한 긴장감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주총 의장을 맡은 배호원 사장은 영업보고 인사말로 “굳은 날씨에 찾아준 주주와 경제개혁연대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는 말로 주주와 경제연을 구분했다.

지금까지 경제연은 삼성 관계사 주총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지난 3월 우리금융지주의 주총에 참여해 우리은행계좌 삼성 비자금 관련 문제 등에 대해 집중 추궁한 바 있다. 삼성특검 관련돼 처음으로 경제연의 참가를 받은 삼성증권이 신경이 곤두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주주총회는 삼성특검 관련 사안부터 진행됐다. 주총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지만 삼성증권이 사태의 핵심에 있던 만큼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삼성증권 측 입장이다.

배 사장은 “그간 삼성특검 등으로 걱정과 불편을 끼쳐 주주여러분께 사과를 드린다”면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시스템과 윤리강령을 점검하겠다”고 사죄로 말문을 열었다. 이날 주총에선 안건 심의에 걸린 시간보다 삼성특검과 관련된 차명계좌 등의 논란이 훨씬 길었다.

경제연의 공세는 매서웠다. 보통 주총이 순조롭게 풀리면 30분, 늦어도 1시간 이내에 끝나던 것을 감안하면 삼성증권의 주총은 마라톤이었다. 약 3시간 뒤인 12시10분경에 간신히 끝날 수 있었다.
경제연의 주요 질의 대상은 바로 삼성특검 차명계좌와 삼성SDS BW발행 등이었다.

▲ 발언하는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김상조 경제연 소장 등은 이날 “차명계좌 등에 연루된 회사 측 인사들이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 공개하라”며 “내부 통제장치와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따졌다. 이어 “특검결과 삼성SDS의 BW발행 당시 SK증권이 주관사였지만 사실상 얼굴마담에 불과했다”며 “이에 대해 해명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민감한 질의에 대해서는 “오래된 일이라 관련 자료가 없다”, “형사 재판 및 금융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답변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김 소장이 “2004년까지 행정심판대에 올랐던 내용인데 자료가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질타하자 “총수일가의 판결이지 회사와는 무관하다”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논란이 계속되며 주총이 길어지자 주총회장의 분위기도 삭막해졌다. 일부 주주는 경제연 소속 주주가 발언을 하는 동안 “마이크 뺐어”, “그만하라고 하잖아”고 방해하는 등 고성도 이어졌다. 심지어 한 주주는 통행로로 뛰쳐나와 한바탕 폭언을 뱉어 주총 진행이 잠시 중단됐을 정도. 주주들의 반발로 제대로 발언을 하지 못하는 사태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경제연은 발언에 앞서 수차례 “발언 질서를 잡아달라”고 의장에게 요청했지만 반발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갈등이 최고조로 이른 것은 경제연에서 삼성증권 내부윤리규정이 적힌 현수막을 펼쳤을 때다. 배 사장은 “치우지 않으면 주총 진행이 안된다”고 요구했고 김 소장은 “주주들이 볼 수 있게 10초만 메인화면에 비춰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김 소장의 요청이 받아드려졌고 주총의 첨예한 갈등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진짜 논란은 시작일 뿐?

이날 주총에서 나온 삼성증권의 답변에는 한계가 뚜렷했다는 지적이다. 경제연 측은 “미리 질의서를 보내서 오늘 질의에 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줬음에도 답변이 준비가 안됐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결론적으로 주총에서 삼성증권이 상정한 안건은 모두 통과 됐다. 배 사장 후임으로 박준현 전 삼성생명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됐고 김석 이사, 연해철 감사위원이 재선임됐다. 이사보수한도 역시 지난해 100억원에서 130억원으로 가결됐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 측의 주총 참여가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삼성특검의 후폭풍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특검 논란은 수사가 아닌 사법처리 과정에서 ‘진짜 논란’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김 소장은 주총 마지막 발언에서 배 사장에게 “하나만 약속해 달라”며 “형사처벌, 행정처리가 명확해지면 사실관계를 분명히 해서 관계자를 징계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배 사장은 “약속 드리겠다”고 응수했다. 삼성증권을 둘러싼 논쟁이 앞으로도 계속 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 삼성증권, ‘이색’주총발언들

“김용철 변호사 같은 분만 선임되지 않으면 됩니다.” (회사 기강을 내부에서 뒤흔들면 안 된다는 주주의 발언)
“삼성SDS BW도 좋지만 제가 지금 제일 관심있는 것은 오늘 점심약속을 지킬 수 있느냐는 겁니다.” (주총이 지연되자 빨리 끝내달라는 주주의 발언)
“IMF 때 보유 주식들이 망해서 깡통차기 직전까지 갔어요. 제발 삼성증권 좀 살려주십시오” (삼성증권을 살려야한다는 주주의 발언)

삼성증권의 주총은 뜨거운 감자 속에 논란을 일으켰지만 간간히 웃음을 터트리는 발언도 이어졌다. 경제연의 질타에 주총이 지연되고 일부 주주들과 경제연의 대립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3시간 내내 살벌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날 장기간 마라톤의 마지막 안건 통과가 끝나고 발언권을 얻은 한 주주는 “여러분 오늘 이렇게 참석해 좋은 제안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밝혀 “의장이 둘이다”라는 일부의 웃음 섞인 지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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