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봤으면 신고해”vs“무해 증명해봐”

국내 가공식품 원료로 쓰일 미국산 '유전자변형(GM)' 옥수수 5만7000여톤이 지난 5월1일 첫 수입되면서 안전성 논란이 뜨겁다.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란 인간에게 유용한 유전자를 발굴해 그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은 생물에 넣어 새로운 유전자를 지닌 생명체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GMO성분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민단체는 작물의 형질을 변형시키기 위해 삽입된 유전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반응을 일으켜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펴고 있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청과 GMO를 판매하는 기업들은 GMO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맞서는 상황. GMO 옥수수 수입을 둘러싼 논란을 짚어봤다.

일단 수입되면 피할 수 없는 GMO의 섭취 "안전성 검증하라"
식품업계, 피해사례 없다고 반발 "수입 못하면 공장 문 닫는다"

식용으로 쓰일 미국산 유전자 변형 옥수수가 5월8일 오후 울산항 태영 양곡부두에 하역됐다. 몰타 선적 아눌라호는 삼양제넥스 울산공장이 수입한 물량인 1만8100톤의 옥수수를 하역했다. 이 하역은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바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수입되는 GMO옥수수라는 점이다.

유전자 옥수수 상륙 파문 확산

병충해 내성 강화 등을 위해 씨앗이나 식물에 방사능을 접촉시킨 유전자 변형 옥수수는 그동안 사료용으로는 수입돼 왔지만 식용 옥수수는 이번이 처음이다. 첫 수입된 GMO옥수수는 대상과 삼양제넥스가 수입한 물량이다. 전분당협회와 대상, 삼양제넥스, CPK,신동방CP등 옥수수 수입 주요 4개사는 최근 GMO 옥수수 수입 의지를 밝히고, 이미 수입했거나 수입 물량을 받을 예정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GMO옥수수가 유전자 변형콩이 발육부진을 유발한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있고 알레르기 유발사례도 있는 만큼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다는 점이다.
시민단체가 이들 업체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인천환경운동연합은 같은 날 7일 오전 인천항에서 유전자조작이 이뤄진 옥수수 5만7000톤을 선적한 배가 인천항을 통해 입항한 것에 대해 ‘유전자 변형 옥수수 수입반대 기자회견’과 함께 수입 반대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유전자변형(GMO) 옥수수는 안정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식품이므로 반입을 묵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GMO옥수수 수입에 시민단체가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 시민단체는 한국전분당협회 소속 4개 식품업체 대상, CPK, 삼양제넥스, 신동방CP에 대해 수입결정 철회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4개 식품업체의 모든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전개를 결의한 바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반발도 이유는 있다. GMO 옥수수에 대한 표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행 규정에서는 전분당 등 부재료의 성분을 표시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로서는 GMO 옥수수를 이용한 가공식품을 구입할 경우, 이를 원료로 사용했는지 알 길이 없다. 수입 농산물 중 GMO가 전체의 3% 미만이면 표시대상에서 제외시킨 점도 우려를 낳고 있는 대목이다. 유럽의 경우 GMO 0.9% 이상이면 성분 표시를 해야만 한다.

게다가 현행 국내 식품위생법은 최종 제품에 GMO임을 나타내는 유전자(DNA)나 외래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을 경우 GMO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GM옥수수를 가공한 식용류 등은 가공 중 GMO 인자가 제거돼 검출되지 않기 때문에 GMO 표시제가 적용되지 않는 셈이다. 따라서 GMO가 먹기 싫다고 선별해 먹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란 현재로서는 없다.
옥수수를 이용해 생산되는 전분, 포도당, 물엿, 과당 등은 청량음료는 물론 맥주부터 제빵, 제과, 기름, 캔디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현재 GMO옥수수를 수입하는 4개 업체는 이에 대해 “철회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미국 쇠고기가 광우병 논란으로 세간의 도마에 오르며 업계에서 자취를 감춘 것과는 반대 경우인 셈이다.

대상 측 관계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옥수수 입찰시 외구 공급사들의 판매가 나오지 않아 2개월 이상 일반 옥수수 구매를 못했다”면서 “제품 생산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방지하기위해 불가피하게 GMO옥수수를 사용키로 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CJ 계열사로 옥수수전분·고과당·물엿·포도당·카라멜 등 과자나 사탕, 음료수 구성성분을 생산해온 신동방CP도 똑같은 논리를 폈다. 빵·과자 등 각종 가공식품을 생산하고 있는 삼양제넥스, CPK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갑작스러운 국제 옥수수가격 폭등으로 1톤당 100달러씩이나 더 주고 소비자에게 가격인상 폭을 전가하느니 식품안전성이 입증된 GMO 옥수수를 들여와 과자나 빵, 사탕과 요구르트 등 각종 가공식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GMO 논란은 표류 중

현 시점에서 GMO논란은 고착상태다. 업계나 정부 측은 ‘피해를 본 것이 있으면 신고하라’고 주장하고, 시민단체 측은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할 뿐이다. GMO를 수용했을 때의 ‘막연한 위험’과 ‘식품값 인하’의 사이에서 표류하는 형국이다. 정작 소비자들만 현재까지 ‘위험성’에 맞장구를 쳐야하는지, ‘저렴함’에 안도해야하는지 갈피를 잡기 힘들어졌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적어도 GMO 제품을 선택적으로 먹을 수 있게끔 제도적 보강이 필요하다”면서 “소비자들만 좋던 싫던 GMO를 먹게 되는 상황 아니냐”라고 성토했다.

▶ “뭘 먹나 …” 식탁불신 강해진다

미국산 수입으로 불거진 광우병 논란, GMO(유전자 조작)옥수수 논란에다, 조류 인플루엔자(AI)까지 서울 도심으로 확산되면서 사람들의 ‘밥상’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는 아직 수입되지 않았고 닭고기도 잘 익혀 먹으면 문제가 없는데도 심리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쇠고기는 논란이 워낙 거세다 보니 ‘공포’가 확산되는 분위기고, 조류 인플루엔자도 점차 확산되는 모양새가 소비자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 더불어 GMO옥수수까지 들어오면서 이런 불안감은 가중되는 모양새다.

이미 식품 이물질 파동으로 ‘먹거리’에 민감하던 시기에 연이어 악재라는 평가다. 일반 식당에서도 갈비탕이나 소머리국밥은 기피 메뉴가 됐고, 오리고깃집은 발을 구르고 있다.

식품업계 및 외식업계에서는 이런 식탁 불신이 확산될까 우려하는 투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결은 보이지 않고 논란만 증폭되고 있으니 괜히 파편이 튀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라며 “정부가 소비자의 불안심리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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