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연습벌레’

한국을 대표해 세계의 정상을 뛰고 있는 축구선수, 박지성. 남들보다 왜소한 체구와 평발로 ‘산소탱크’로 불리며 ‘꿈의 리그’에서 뛰고 있는 그는 어떤 인물일까.

그는 어릴 적 차범근 축구대상까지 받았을 정도로 주목받던 선수였다. 그러나 왜소한 체격은 사람들로부터 그의 실력을 보이지 않게 했다. ‘기술’보다는 ‘힘’이 지배하던 축구에서 그는 잊혀져갔다.

그를 원했던 프로팀도 대학도 없었다. 은사의 도움으로 명지대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1999년 명지대와 올림픽대표 경기에서 허정무 감독의 눈에 들어 대표로 선발된다. 2000년 8월11일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고 같은 해 11월 일본 2부리그 교토퍼플상가에 입단 할 때도 그는 주목받지 못했다.

2002년 4월17일 한국과 세계최강 잉글랜드와의 사상 첫 A매치에서 멋진 다이빙 헤딩슛으로 동점골을 선보이며 그는 세간의 이목을 사기 시작했다. 당시 에릭손 감독은 “한국에 이런 선수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극찬했고 박지성은 프랑스와의 월드컵 개막직전 A매치에서 선취골을 날리고 포르투갈과의 월드컵D조 예선에서도 선취골을 뽑아내 한국의 16강을 확정지었다.

2부리그 꼴찌였던 교토퍼플상가를 1부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천황배컵 우승에도 한 몫을 한 박지성은 네덜란드 명문 PSV아인트호벤에 입단한다. 하지만 입단 후 부상과 슬럼프로 그는 홈 팬들의 야유를 받을 정도로 고전하게 된다.

당시 PSV미드필더 반봄멜은 “박지성은 아시아의 이름없는 선수이다. 그를 우리팀에 큰돈을 주고 데려온것은 명백한 실수”라고 맹비난했을 정도다.

그러나 멋지게 재기에 성공, 2003년 피스컵 아인트호벤 우승과 MVP를 동시에 안았다. 야유하던 팬들은 어느새 그를 위한 응원가를 부르고 있었다.

2005년 7월9일 그는 잉글랜드 명문 맨유로 이적한다.

박지성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어린시절 축구 선생님으로 알려진 이장수 감독은 “박지성은 고집이 센 선수”라며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훈련을 받아왔으며 그 결과가 성인이 되면서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고 그의 노력과 인내에 박수를 보낸다.

고등학교 시절 박지성을 지도했던 이학종 감독도 “그는 가장 작지만 가장 탄탄하다. 그는 도덕적인 면이나 규율에서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다. 나는 그가 훈련에 늦거나 빠지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연습벌레’라는 호칭은 여전하다. 게리 네빌은 “그는 신문의 일면에 나서지 못하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재능을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그는 연습 때 절대로 멈추지 않아 악몽과도 같다”고 박지성을 평했을 정도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