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선봉장에서 구속·도피 신세로

국민의 정부에서 경제분야 권력기관 ‘빅3’인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의 기관장 등을 지낸 실세들이 독직사건으로 잇따라 구속·도피하는 신세로 전락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이들은 한결같이 김대중 정부 때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견제를 받지 않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더욱 뒷맛이 씁쓸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이남기씨는 자신이 다니는 사찰에 10억원을 기부하라는 압력을 SK에 넣은 혐의로 지난달 말 구속됐다. 국세청 차장과 국세청장을 거쳐 건설교통부 장관 재임 중 낙마한 안정남씨는 현재 해외도피 중이다. 안씨는 신승남 당시 검찰총장 동생의 청탁을 받고 사채업자의 세금을 깎아주고 이용호씨 그룹 계열사인 KEP전자의 세금을 감면한 의혹으로 수사가 진행되자 2001년 11월 해외로 나간 뒤 귀국하지 않고 있다. 또 서울지방국세청장을 거쳐 안씨의 뒤를 이어 DJ정부 임기 말까지 국세청장을 지낸 손영래씨는 SK 구조조정본부장에게서 현금 1000만원과 1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이들 3명은 ‘비판언론 압박용’이란 의혹을 받고 있는 2001년 언론사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와 공정위 부당내부거래조사의 주역이란 공통점도 갖고 있다. 한편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이용근씨는 퇴출위기에 놓여있던 나라종금에서 48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8일 구속됐다. 이 밖에 세무관료 출신으로 경인·서울지방국세청장과 조달청장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김성호씨도 지방국세청장 재직시절 취임축하금으로 4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뒤 1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4000만원을 구형받았다. 공교롭게도 모두 호남 출신인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DJ정부 지역편중 인사의 혜택을 받은 대표적 관료라는 평가를 받는다. 혐의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유별나게 ‘개혁’을 강조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남기씨는 공정위원장 재임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벌개혁’‘깨끗한 시장(Clean Market)’을 주장했지만 뒤로는 ‘개혁 대상’인 재벌에 거액의 기부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안정남씨는 국세청장으로 있을 때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내가 죽으면 관(棺)에 태극기를 덮어달라”고 했지만 사채업자의 세금을 깎아주고 부동산투기에 열을 올린 사실이 밝혀져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들은 또 검찰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금품수수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떡값으로 받았다”며 대가성을 부인하는 등 심한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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