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융망, 10번째 생일 하루 앞둔 중단 사고

우리나라 지급결제시스템의 근간인 한국은행 금융망이 14일 또 고장을 일으켜 약 30분간 가동이 중단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이날 오전 예정됐던 통안증권 입찰이 지연되고 정부의 국고채 조기상환 입찰이 연기되는 소동이 발생했다. 공교롭게도 94년 12월 15일 도입된 한은 금융망이 열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사고가 터진 것이어서 배부른(?) 생일상은 받은 셈인다. 생일 하루 앞두고 고장..망신살 금융기관끼리 자금거래를 하는 한은 금융망은 14일 오전 10시10분부터 약 40분간 가동이 중단됐다. 이에 따라 이날 10시10분부터 10시30분까지 진행될 예정이던 통안증권 2년물 입찰이 11시까지로 연장을 해야했다. 또 재경부가 한은 금융망을 통해 실시하는 국고채 1조원 환매(바이백)도 20분간 지연됐다. 당초 10시40분부터 11시까지였으나, 한은 금융망 고장으로 11시부터 11시20분까지로 변경됐다. 그러나 이같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한은금융망 고장에 책임을 지는 곳이 없어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되고 있다. 결제안정과 통안채 입찰 및 결제 등에 관련이 있는 한국은행 담당팀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금융결제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한은 결제정책팀은 "통안채 입찰과 관련된 금융망 운영문제는 국고증권실 증권팀 소관"이라고 밝힌 반면 증권팀은 "통안채 결제만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한은은 이날 '금융망 운영 10주년 평가'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결제리스크를 원천적으로 제거했다고 스스로 축하 했지만 금융망 운영에 상당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소동은 6일 생일을 앞두고 사용자 위주로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도스환경에서 윈도우 환경으로 교체하는 등 전산기기와 통신망을 재구축한 후 8일만에 발생한 일이다. 한은금융망은 금융기관들의 자금거래를 결제하는 우리나라의 핵심지급결제 시스템으로 하루평균 105조원의 자금이 결제된다. 또한 한은 금융망은 한은과 금융기관을 온라인으로 연결해서 금융기관들이 한은에 자금을 결제하거나 금융기관끼리 거액을 자금이체 할 때 한은에 개설된 당좌예금계정을 통해 차액결제가 이루어지도록 해준다. 뿐만 아니라 은행과 고객간의 어음교환, 은행지로, 은행공동망 등 소액결제 시스템에서 발생한 은행간의 채권ㆍ채무를 특정시점에 최종결제하는 기능까지하고 있어 우리나라 지급결제 시스템의 중추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월에도 3시간동안 결제 중단사태 한은 금융망의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에는 금융망 서버내 프로그램이 충돌하면서 거액결제가 3시간동안 아예 중단되는 대형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당시 한국은행 직원들은 금융망이 전산화된 9시경까지 3시간 여동안 수작업으로 결제작업을 하는 촌극을 벌였고 은행 직원들은 퇴근도 하지 못한 채 대기해야 했다. 3시간여가 지나서 서버의 전원을 껐다 켜자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총액결제에 큰 문제가 생긴 것은 지난 4월이 유일하지만 전산망 장애가 발생한 것은 이번 만이 아니다. 올해만도 벌써 수차례 비슷한 사고들이 잇따랐다. 대부분 소프트웨어의 문제로 알려졌다. 한은은 이날 장애는 금융기관의 입찰거래 응찰시 이중거래 입력 방지를 위한 프로그램에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를 즉시 수정해 입찰시스템을 가동, 업무를 정상 처리완료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같은 사고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불구, 책임을 지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한은금융망을 통해 금융결제는 한 곳에서 하고 있지만 금융망 운영 및 결제와 관련해서는 담당팀이 여러곳으로 분산돼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날 사고가 일어난 후에도 금융결제 안정을 담당하고 있는 팀들은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자기팀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부 관계자는 "30분동안 입찰이 안된 것인데 그게 무슨 사고냐"고 말하기도 했다. 한은법 개정으로 한국은행은 올해부터 우리나라 지급결제 제도 전반에 대한 감시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지급결제시스템의 운영기관에 대해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중요지급결제시스템에 대해서는 안정성과 효율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경사항이 있거나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평가를 하게 된다. 이처럼 한은의 지급결제제도 감시 업무는 강화됐으나 정작 한은금융망은 리스크에 여전히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