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손학규 난기류 내막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의 물밑 신경전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제시한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손 대표는 해양수산부의 폐지를 반대하며 배수의 진을 쳤다. 막판 극적인 합의를 통해 새 정부의 손을 들어줬으나 개운치는 않다. 아직 주요 내각의 구성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남아 있고 정부 정책들이 시안만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손 대표의 조직개편안 수용 의지에 대해서는 국정파행의 주역이라는 역풍이 부는 것을 우려해 마지못해 들어준 측면이 없지 않다고 보고 있다. 파열음을 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대표의 갈등은 여당의 정신적 지주가 된 대통령과 거대여당의 결전을 한 눈에 보게 해 준다.


이명박·손학규 정부조직개편안 추진에 이견, ‘으르렁’ 실력행사
해묵은 갈등부터 새정부 출범 ‘기싸움’…총선까지 이어질 설전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여·야 수장으로 첫 일전을 치렀다.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한 힘겨루기의 숨은 내막은 무엇일까.

신야권 무게감을 가지다

겉으로 보이는 조직개편안 갈등의 모습은 통합민주당의 이명박 발목잡기다. 하지만 그 실상은 좀 더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당장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늦추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 기회를 잡아 앞으로 야당의 무게감을 잡겠다는 것이다.

대선 후 구여권 즉 대통합민주신당은 산산이 부서질 것처럼 보였다. 대선 패배의 책임공방으로 당 내는 어수선했으며 중심축도 없었다. 손학규 대표를 수장으로 추대했지만 약세를 벗어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50%대 고공행진을 기록했으며 여론조사에서는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겠다는 이들이 과반을 넘겼다.

통합민주당에게는 재기의 기회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이 대통령의 조직개편안이 제공했다. 이 당선인이 강한 추진력으로 일을 해 나가며 생기는 반작용이 몰아치고 있을 때 조직개편안에 제동을 건 것이다.

손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맞서며 갈등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야당의 수장으로 인정받았다. 또한 그는 “이명박 당선인의 독선이 파국을 불러왔지만 국민을 위해 잘잘못을 따지고 있을 수 없다.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며 “정상적인 정부출범을 위해 결단하고자 한다. 타결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지만 국민을 위해 매듭을 풀고자 한다”고 마지막 고삐를 늦춰 ‘대승적 결단’을 함으로써 모든 사건을 ‘이명박 탓’으로 몰아갔다.

역풍의 직격타를 피해감과 동시에 이명박 정부 조직의 문제점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효과를 거둔 것. 팽팽한 갈등 상황에서 먼저 양보한 큰 인물이라는 이미지 효과까지 거뒀다.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도 “총선 때까지 끌고 가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면서 4월 총선에서 새 정부 파행출범의 책임의 역풍이 불 수 있음을 계산, 한계 직전 공격을 거둔 것임을 시사했다. 이어 우 대변인은 “이 결단의 의미를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고 강조, 손 대표의 대승적 양보에 힘을 실었다.

또한 손 대표는 이 대통령과 갈등을 통해 내부 단결이라는 효과를 거뒀다. 당 내에서는 “손 대표의 결단이 주효했다”며 그를 한껏 치켜세우고 있다. 뿐만아니라 ‘해양수산부 지키기’는 호남권 표심 공략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언젠가 역풍으로…

정부 출범을 위해 손 대표와의 갈등을 피할 수 없었던 이 대통령. 하지만 이번 협상에서는 득보다는 실이 많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정부조직개편안은 “90%의 수정을 이뤘다”고 자평한 민주당의 말처럼 ‘용두사미’로 끝났다. 당초 중앙부처 숫자를 18부4처에서 18부4처에서 5부2처를 줄여 13부2처로 만든다는 구상은 3부2처가 줄어든 15부2처로 재조정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조직개편안에는 이 대통령이 원한 ‘작은 정부’는 간 데 없고 어중간하게 몸집을 줄인 ‘공룡’이 남았을 뿐이다.

게다가 결국 이 대통령도 정부 출범을 파행으로 이끌지 않기 위해 한 발 물러서야 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손 대표가 ‘결단’을 부르짖고 난 후였다.

이번 기 대결에서 이 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민주당의 조직개편안에 대한 제동이 새 정부 출범에 차질을 줬다는 점을 ‘꼬리표’로 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과 조직개편안에 대한 합의를 이룬 후 “뒤늦었지만 한 달 이상 끌어온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여야협상 타결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말에 가시를 박았다.

그는 이어 “비록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한나라당의 원안이 통과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새로운 이명박 정부조직은 일하는 정부, 효율적인 정부로서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고 국민을 섬기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은연 중 칼날을 번뜩였다.

농촌진흥청 개편이 미뤄지고 여성부·통일부 존치가 이뤄진 점도 총선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정부조직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의지에는 차질이 생겼지만 총선에서 표가 되는 ‘농촌’ ‘여성’ 등을 겨냥할 수 있다는 것.

이번 건 ‘총선 전초전’일 뿐

이 대통령과 손 대표 모두 득·실을 나눴지만 이번 조직개편안 갈등이 총선을 향한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두 사람 모두 여·야 수장으로서 자리 잡기만을 시도했을 뿐이라는 것.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개혁방침을 망설임 없이 추진하기 위해서는 강한 여당의 뒷받침이 선행돼야 한다. 손 대표도 여당에 대한 견제가 가능한 야당을 만들고 한시적으로 맡은 대표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총선까지 막힘없는 질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대통령이 내각 정비에 이어 당·정·청간 유기적 협조관계 구축으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손 대표도 총선과 연계된 또 다른 전략을 들고 나올 것”이라며 두 사람의 또 다른 일전을 관심있게 지켜봤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