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영화 리뷰(유럽편) 〈안개 속의 풍경〉

조금은 쌀쌀하고 몽롱한 요즘에 어울릴 만한 자욱한 안개 같은 영화가 있다. 89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최우수 감독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한 <안개 속의 풍경>은 어린 오누이의 끝없는 듯한 여정을 담아낸 몽상적인 로드무비다.

어머니에게 부담되기 싫은 어린 두 남매는 아버지가 돈벌러 갔다는 독일을 향해 막연히 기차를 타고 떠난다. 실은 그들은 사생아이며 독일에 있다는 아버지의 존재 역시 어머니가 지어낸 이야기로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버지는 그 곳에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고 막막하고 두려우며 다가오는 삶의 여러 모습은 결코 닿지 못할 곳을 향한 허무한 몸짓뿐이라는 절망감을 안겨준다. 오누이는 안개처럼 젖어드는 이런 현실을 지나가면서 무의식중에 세상의 빛과 어두움이라는 형이상학적 명제에 몰두하게 된다.

▲ 공중에 매달린 이 거대한 손은 신의 타락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인간구원의 심볼인가?
눈 내리는 결혼 축제의 들뜬 전경, 그 옆에서 죽어 가는 말의 힘겨운 헐떡임에 울기만 하는 무력한 소년, 동물적으로 소녀를 강간하는 트럭 운전사의 모습은 삶의 비극적 성찰을 요구한다. 자신이 새라고 믿으며 날아가길 꿈꾸는 갈매기 아저씨, 수지 타산이 맞지 않은 순수 예술을 고집하며 공연장조차도 얻지 못해 헤매는 유랑극단, 그 노인들의 쓸쓸한 퇴장, 몰락과 소외, 좌절, 유아 강간, 성매매, 무책임한 성과 부, 어른으로서의 책임 회피, 해결 불능의 미혼모 문제, 기차와 음식점에서의 물신주의적 몰인정, 국경의 총성, 거리를 활보하는 획일적인 군대 이미지 등의 어른들의 가련한 치부들이 알 수 없는 세계로 차갑고 음울하게 비춰진다.

순수한 영혼 어린 두 남매의 상처가 남는 어른 되기, 혹은 부조리한 어른 세상에 편입되기를 거부한 채 맨몸으로 상처받기라는 가혹한 통과의례로 다가온 미로다. 이 실존적 상황에서 온몸의 감성으로 전율하는 애처로운 몸짓들이 영상에서 스며 나온다.

방랑 여정을 통해 오누이는 대리 아버지로 소녀에게 첫사랑을 주는 따스함을 지닌 청년과의 잊을 수 없는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다. 청년은 몰락해 가는 유랑 극단의 단원이며 입대를 며칠 앞두고 불안 속에 삶의 의미를 회의하는 선한 청년이다. 순수한 영혼은 먼 곳에서도 그 존재에 공명하고 서로 이끌린다. 서로의 상처를 찰라에 이해하게 되고 감싸안고 보듬으며 성숙해진다.

여권이 없는 남매를 쫓아내는 기차에서 겨우 탈출하여, 기진맥진 청년과 함께 도착한 바다. 그 새벽바다에서는 거대한 손 조각상이 이끌려 떠오른다, 이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그림을 닮은 명상적인 이질감. 장엄한 그 장면은 인간이 어떡하든 무언가 희망을 쥐고 싶어한다는 근원적 욕망과 고독, 빈손에 결국 쥐어쥔 죽음의 그림자, 인간운명의 투영이 아닐까. 또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추락한 신의 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에 상처받은 순수 영혼들은 어느 새벽 거짓말처럼 저 깊은 허무의 비밀을 목격하는 기회를 잡는 것이다.

그리스의 영상 시인으로 불리는 테오 앙겔라포스 감독. 희랍의 고전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을 패러디한 <율리시스의 시선>으로 제 48회 칸느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과 타임지 선정 95년 세계 10대 영화에 선정되기도 한 그리스의 거장감독이다.

이 영화의 시적 여정은 또 다른 명작 <율리시스의 시선>에서의 겨울 여행과 같이 목적지 없는, 혹은 목적지를 향해 바르게 나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여행 속에 표류하고 있다. 두 작품에서 보여지는 여행과 방랑은 인류의 순례를 함축하고 있고 또한 인간현실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고독과 암담한 현실, 그 속에서의 희망과 구원을 찾아 헤매는 고독한 영혼들의 떨리는 영혼의 결정을 감성적 영상으로 풀어놓으며 서구역사의 운명에 대한 묵시론적 성찰력을 내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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