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무로 뒤덮인 가리왕산...동물에 대한 인간 폭력

▲ 평화롭게 보이는 숲, 올무가 지천이다. 동물들에겐 전쟁터와 다름없다. ⓒ 강기희

몇일 전부터 내린 눈은 가리왕산 자락을 하얗게 덮었다. 겉보기엔 평화로운 모습이다. 주전자에 김이 폭폭 나는 모습을 더하면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이다. 아궁이에선 장작불이 활활 타고 굴뚝에선 연기도 피어오른다.

눈 내린날의 산촌 풍경이다. 눈길 헤치고 벗이라도 찾아 준다면 감자나 고구마 구워 아무 일 하지 않고 한나절 보낸다 해도 아깝지 않을 날이다.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하늘색은 짙다. 바람을 견디지 못한 눈발은 낙하지점을 찾지 못하고 먼곳까지 날려간다. 바람에 떠밀려가는 눈발의 선이 곱다. 집을 지키던 개들은 외출을 했는지 없다. 눈길에 어딜 갔을까.

눈길로 트럭 한 대가 올라온다. 비슷한 차량이 많아 누구의 트럭인지 구분하긴 어렵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둘이다. 두툼한 겨울 옷에 모자와 마스크까지 썼다. 눈길 나서는 복장 치고는 중무장한 모습이다.

생각해보니 그들은 어제도 왔었다. 어제 그들은 집에서 가까운 뒷산으로 올라갔다 한참만에 내려왔다. 처음엔 '그냥 산에 가나보다' 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자연의 평화 깨는 올무꾼들, '겨울에 심심한데 뭐해요, 토끼나 잡지'

▲ 나무와 나무 사이에 놓은 올무, 토끼나 너구리 등의 동물이 다니는 길목이다. 목이 쏙 들어가게 만들어졌다. ⓒ 강기희

그 무렵 한 친구가 어머니 드시라고 찐빵을 사들고 왔다. 친구는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일부러 들렀단다. 친구가 산으로 오르는 사람들을 보고 한마디 했다.

"토끼 잡으러 가는 이들이구먼."
"어찌 알어?"
"맨손으로 올라가면 뻔한 거 아냐?"
"맨손으로 토끼를 잡나?"
"에이, 올무놓으러 가는 거잖아. 철사 2000원 어치만 사면 길목이란 길목에는 다 놓을 텐데 뭐."

친구의 말이, 나무를 하러 간것이라면 톱이나 낫이라도 들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의 말이 그럴 듯 했다. 그러나 친구의 말이 사실이라도 그들을 불러 세워 뭐하러 가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늘 그들은 또 왔다. 주변을 살피는 행동이 눈에 거슬렸다. 뭔가 경계하는 표정도 마음에 걸렸다. 저들은 왜 눈보라 치는 산길을 오르는 걸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곤 그들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

한 사람이 한참만에 빈손으로 산을 내려왔다. 그는 트럭을 타고 이내 그 자리를 떴다. 한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내려오지 않는다. 좀 더 기다렸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을 피해 다른 길로 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뭔가 걸렸다는 얘기가 된다. 그들이 낸 발자국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산자락으로 바람이 불자 눈발이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산자락 곳곳에 놓인 올무들, 동물들에겐 '지뢰밭'

걸음을 옮기기도 쉽지 않았다. 몸을 돌려 뒷걸음질로 올라갔다. 산자락에 도착해 발자국을 따라 산길로 올라갔다. 오르는 길 곳곳에 철사로 만든 올무가 놓여있다. 순간 놀라움과 분노가 함께 치밀었다.

트럭을 타고 온 이들이 놓은 올무였다. 오늘 많은 눈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토끼 올무를 놓은 것이었다. 그들이 오늘 다시 온 것은 올무에 토끼가 걸렸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잠깐 사이에 올무 10여 개를 발견했다. 산짐승들의 길목이라고 짐작되는 곳엔 어김없이 올무가 놓여져 있었다. 발자국을 계속 따라가보았다. 올무는 토끼의 목이나 발목에 들어가기 알맞은 높이로 설치되어 있었다.

어느 곳엔 토끼가 걸린 흔적도 있다. 걸린 토끼는 흔적만 남겼다. 그들이 이미 벗겨간 모양이었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올무를 푸는 일도 쉽지 않았다. 작심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일은 막는 게 더 힘들다. 대개 올무를 놓는 이들은 마을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불법이긴 하지만 안면 때문에 얼굴 붉히며 따질 수도 없었다.

"에이, 그런 걸 가지고 뭘 그래."

올무를 놓지 말라고 하면 그렇게 넘어간다. 돌아서면서는 이상한 놈 취급을 한다. 그게 산촌 사람들의 일상이다. 산짐승은 그렇게 잡아 먹는 것이라는 게 산촌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들에겐 산짐승에 대한 미안함도 죄의식도 없다.

몇 분도 안되는 시간에 올무 20개를 제거했다. 올무꾼들의 발자국은 산길로 계속 나있었지만 그 많은 올무를 제거하기란 역부족이었다. 눈발이 더 거세지면서 산을 내려왔다.

산짐승이 너무 많아 잡아야 한다고?

▲ 온 산이 올무로 뒤 덮여있다. 인간인들 자유로울까. ⓒ 강기희

산을 내려오는 길에 마을 주민을 만났다. 이 마을에 거주한지 오래되지 않은 사람이라 올무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산 짐승들이 너무 많아요. 잡을 수만 있으면 잡아야지요."
"그래도 올무로 잡는 건 좀 비열하지 않나요?"
"그럼 뭘로 잡아요. 총으로 잡을 수도 없으니 그렇게라도 해 잡아야지."
"생명 있는 것들인데 많다고 막 잡으면 되나요."
"시민단체나 환경단체에서 그런 거 반대하던데 난 반대요. 그깟 토끼 몇 마리 잡는 게 무슨 대수요.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멧돼지들이 사람도 죽인다 하지 않아요."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 말이 오히려 이상한 말이 되고 있었다. 주민과 나눌 말이 더 없었다. 한 번 놓은 올무가 얼마나 오래 가는지, 그 피해는 또 얼마나 큰 지에 대한 개념이 없다. 그에게 짧은 인사를 보내고 집으로 왔다.

올무에 걸린 강아지 '미안하다, 미안해...'

집으로 오니 외출했던 개 두 마리가 쪼르르 달려나왔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작은 녀석의 목에 올무가 걸려 있었다. 다행히 목을 조이진 않았고 고생한 흔적도 없었다.

그 녀석은 지난 가을 마을을 떠돌아 다니다 우리 집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은 개다. 누군가 집에서 키우다가 골짜기에 버린 개였다. 집으로 온 녀석을 내쫓는 것이 각박하다 싶어 그때부터 식구로 받아들인 녀석이었다.

"너 어디서 걸렸냐?"

목에 걸린 올무를 풀어주며 물었지만 개가 인간의 말을 알아 들을 리가 없고 내가 개들의 언어를 알아 들을 수도 없었다.

"미안하구나, 나도 인간이지만 이럴 땐 인간이 싫고, 인간이 두렵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폭력은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몇 차례나 올무에 걸린 개들에게 미안했고 죽어간 토끼나 노루, 고라니에게 미안했다. 올무를 놓은 이들이 어찌 트럭을 타고 온 이들만일 것이며, 그들이 놓은 올무는 또 얼마나 많을지에 대해선 짐작도 할 수 없다.

제철 맞은 올무꾼들, 이 순간도 동물은 죽어간다

눈 내리는 겨울이 되면 올무꾼들은 제철을 맞는다. 그들은 인간과 동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말 따위엔 관심도 없다. 그들의 눈에는 산 짐승들이 그저 술 안주감이나 돈벌이 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시골 생활하면서 그런 재미도 없으면 무슨 맛으로 사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본인이 놓은 올무에 자신의 가족이 걸려 들면 눈에 불을 켜며 올무 놓은 사람을 죽이려 들 사람들이다.

올 겨울 들어 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발견했다. 둘 다 올무에 걸린 채 죽어 있었다. 발버둥친 흔적은 보기에도 끔찍했다. 토끼는 죽어가면서 올무꾼에게 벼락이라도 맞으라고 마지막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먹이를 찾아 나선 동물들의 길목을 지키는 인간들이 있는 한 동물들은 한 순간이라도 행복할 수 없다. 대체 인간들은 언제까지 이런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할 것인가. 만물을 사랑하지 않는 자 자신의 가족인들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날이다.

▲ 올무에 걸린 개, 떠돌이 개였는데 지난 가을부터 한 식구가 되었다. ⓒ 강기희

▲ 올무에 걸려 죽은 토끼, 이 순간에도 죽어가는 산 짐승들이 많다. ⓒ 강기희

▲ 올무에 걸려 죽은 또 다른 토끼, 절반은 누군가 뜯어 먹었다. 살육의 현장을 지켜보아야만 하는가. ⓒ 강기희

▲ 지난 가을 멧돼지 올무에 걸린 개, 소리없이 죽어가는 동물들이 많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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