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왔다?

워크아웃을 통해 회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팬택계열(이하 팬택)이 새삼 재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얼마 전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과 얽힌 한 협박범의 사연이 구설수에 오른 탓이다. 때문일까. 이런저런 얘기들 가운데는 팬택이 워크아웃 절차를 밟게 된 속내에 대한 뒷말도 나돈다. 워크아웃에 돌입한 표면적인 이유야 어떻든 간에 한 축에서 내부갈등이 팬택의 성공신화를 무너뜨린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느냐는 게 골자다.

재계에선 대체로 이런 호사가들의 입방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런 구설들을 따라가 보면 그 나름의 이유는 있어 보인다는 시선도 있다. 그렇다면 그 속사정이 어떠했기에 입방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시사신문>이 얽히고설킨 속 깊은 얘기들은 따라가 봤다.

▲ 벤처에서 대기업까지 이른 ‘팬택 신화’ 박병엽 부회장
팬택 내부 LG, SK, 현대 출신들의 파벌 둘러싼 암투설 솔솔
인수합병으로 성장한 팬택 신화, 사내문화 화합 ‘글쎄올시다’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졸업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이고 있는 팬택. 실제 팬택은 워크아웃 이후 한국신용평가원의 ‘등급하향’ 워치리스트(감시대상)에 올려뒀던 회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조정하는 등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중심엔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있다. 어느 때보다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이 팬택 관계자의 설명이다.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겠다는 각오가 그의 각오다. 박 부회장은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마른수건에서 물 짜듯 노력하자”고 굳은 결의를 다진 바 있다.

인수합병 과정에서 융화 실패?

그런데 경영이 차츰 안정화의 길로 접어드는 요즘, 팬택이 또다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최근 박 부회장과 얽힌 한 협박범의 사연이 알려진 까닭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워크아웃에 들어간 숨은(?) 사연까지 그럴듯하게 포장돼 구설을 낳고 있다. 가칭 비하인드 스토리라는 게 호사가들 입방아의 큰 맥락이다.

경영정상화를 위해 숨 가쁘게 뛰고 있는 팬택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얘기들이지만 향후 좀더 튼튼한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일종의 성장통 일수도 있어 보이는 대목이다. 그럼 이런저런 얘기들은 어떤 것일까.

소문의 핵심은 팬택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된 원인에 대한 것들이다. 그 중 이목을 끄는 것은 워크아웃 수년 전부터 불거진 내부갈등에 대한 소문들이다. 이는 전직 내부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나돌고 있다는 나름의 설득력 있는 설명들도 곁들여져 있다. 호사가들의 입방아를 곧이곧대로 듣기 어렵다지만 당시 상황들을 따라가 보면 나름 상통하는 부분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일단 팬택의 성공신화를 보면 이렇다. 지난 1991년 자본금 4천만원의 벤처기업에서 시작한 팬택이 휴대폰 제조사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1년 현대큐리텔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이를 기반으로 2005년 SK텔레콤의 자회사였던 SKY텔레텍을 인수 합병하며 연매출 3조원(2005년 기준)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당시 팬택의 위상은 폭발적이었다. 휴대폰 업계의 신예로 떠오르면서 삼성전자, LG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이 성장에 따른 인력의 유입도 늘어났다. 팬택은 동종 업계 중에서도 높은 수준의 보수를 보장했으며 또 그만한 실적을 자랑했다. 경쟁업체들이 연구원을 빼간다고 불만을 토해놨을 정도.

하지만 역으로 이런 폭발적인 성장 뒤에 적잖은 우려도 있다. 팬택 토종 인사가 아닌 경쟁사 인력 혹은 인수합병을 통한 타사 인력을 대거 수용하면서 기존의 인력과 갈등의 불씨를 키운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내부인사 갈등설의 첫머리에 거론되는 것도 바로 이 외부인사 융화여부에서 나온다.

사실 이런 우려는 M&A가 활성화 된 여타 기업에서도 늘상 존재해 왔다. 사주가 바뀌거나 서로 다른 두 기업이 섞이는 과정에서 알력이나 결속력이 약해지는 등의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큰 탓이다. A그룹 기업문화팀 관계자는 “인수합병 뒤 색깔과 성향을 융화시키기 위해서는 빠르면 3년, 멀리는 10년을 내다봐야 한다”며 “그만큼 타사 사람을 우리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섬세하고 장기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팬택에서 기업문화 융합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현재 당시 기업문화팀 직원들은 대부분 방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부서가 건제함에도 대부분의 근무자가 사실상 와해됐다는 점은 사뭇 의구심을 더하는 대목이다.
당시 팬택은 크게 현대큐리텔 출신, 초기 팬택 출신, 그리고 SKY텔레텍 출신이 한대 뭉쳐있었다. 또 초기부터 영입된 LG인사까지 개입되면서 팬택 내부는 복잡한 정치관계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실제 이런 상황은 임원인사에서 곧잘 나타난다. 2003년 이전에 팬택앤큐리텔의 임원은 대부분 현대큐리텔의 전신 하이닉스 출신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2003년 이후 LG전자 출신, 2005년 이후 SKY텔레텍 출신으로 적잖게 영입·교체됐다. 특히 부장급 연구진의 이동은 이보다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숨 가쁜 인사조정 속에서 사내 융합이 원활히 이어지지 않았다면 출신 세력별 파벌 갈등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주목할 것은 팬택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2004년 이후다.

북미시장 실적저하 추측 무성

팬택은 2004년 북미 시장의 유통에 큰 영향력을 가진 오디오박스사(ACC) 인수에 실패했다. 경쟁업체 중국계 기업 유티스타컴에게 가격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연매출 3조원대의 유티스타컴은 무선통신 단말기·장비 유통업체로 북미 CDMA폰 시장에서 최대급으로 꼽힌다. 결국 북미시장에 영향력을 뺐긴 팬택은 신규제품군은 통신사업자 직납을 추진했으나 계약 지연 및 내수실적 악화로 영업실적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 유티스타컴에는 팬택 내부 현대큐리텔 출신 연구진이 대거 영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호사가 사이에서 ‘현대 출신의 보복’이라는 뒷말이 생기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팬택 측은 이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팬택 측 관계자는 “사실 인수합병을 떠나 회사 내에서도 파벌과 알력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라면서 “당연히 M&A과정에서 알력이 존재했지만 경영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유티스타컴으로 팬택의 인력이 흘러들어갔더라도 어느 정도 인력 이동은 흔히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워크아웃에 이르게 된 원인은 오히려 휴대폰 업체 VK부도에 따른 금융권의 채권회수, 현금유동성 위기 등이 더 컸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도 팬택이 현재까지 내부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친다. 오히려 호사가들의 시선이 집중 되는 것은 기업 회생 이후다. 워크아웃 졸업이후 또다시 내분 잡음을 불러 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내부 화합이 얼마나 이뤄지느냐에 따라 기업의 분위기와 효율이 달라진다”면서 “팬택은 현재 박병엽 부회장의 리더십을 시험받고 있다”고 말했다.

▶ 박병엽 신년사 “경쟁자들 보다 한발 앞서야”

박 부회장은 지난 2일 서울 상암동 팬택 본사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새로운 도약을 위해 휴일과 밤낮을 잊은 채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들이 꿈결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박 부회장은 “앞으로 경쟁자들보다 한발 앞서 생각하고, 한발 앞서 행동해야 하며,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고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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