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론자 스티브 마빈, 또 쓴소리 퍼부어

IMF의 도래를 정확히 예언, 확고한 명성을 구축한 애널리스트 스티브 마빈. 여전히 한국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의견을 멈추지 않고 있다. 급기야 "한국재벌의 볼멘 헛소리를 경계하라"는 극약처방(?)을 최근 내놓아 화제다. 11월 2일, 도이체방크의 한국관련 전략가로 유명한 스티브 마빈(Steve E. Marvin)이 한국경제에 대해 쓰디쓴 소리를 또 냈다. 스티브 마빈은 '헛소리!(Baloney!)'라는 제목의 한국증시 전략 보고서를 통해 한국경제에 대한 잘못된 억측 4가지를 지적하고 "한국 재벌시스템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쳤다. "돈이 많은데도 엄살만 부리는 한국재벌" 특히 마빈이 제기한 재벌 해체 주장은 소버린자산운용과 마빈의 관계로 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소버린자산운용이 SK(주) 지분매입 창구로 도이체방크의 계열사인 도이체증권을 활용했기 때문. 마빈은 무엇보다 "한국의 재벌구조가 불법행위나 소액주주 이익 침해 행위를 유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증시가 재평가되지 못하는 주된 이유가 재벌구조 때문"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 기업들의 연결재무제표를 믿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마빈은 "한국의 기업들은 1년에 한번 연결 재무제표를 제출하는데, 그것도 회계연도를 마감한 뒤 수개월 뒤"라 지적하고 "이런 회계기준이라면 불리한 내용을 상당 부분 감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빈은 이런 사례로 삼성그룹의 삼성카드 지원, 현대차의 현대카드 지원, INI스틸의 용광로사업진출 등을 들었다.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의 정확한 재무정보를 제공받고 있는지 의심스러우며 리스크 높은 사업에 진출하는 관계로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 그는 특히 "현재 주요 경영진이 분식회계 혐의로 항소 중인 SK그룹이 재벌구조에 의해 유지되는 대표적인 사례"라 지적했다. '혹시 소버린과 짜고치는 고스톱 아닌가' 마빈은 그 외 한국 경제에 대한 잘못된 억측을 추가로 설명했다. "일반근로자들의 과다한 임금 상승이 국가경쟁력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헛소리 중 하나"라고 지적한 것. 실제 노동생산성이 임금증가율과 엇비슷하거나 다소 앞선 상황이라 지적하고, "재계가 주장하는 임금인상 과다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으로 생산기지가 이전되고 있어 국내에 산업 공동화가 야기되고 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아직 대중국 직접투자 규모가 크지 않으며, 일부 조립공장이 옮겨간 수준이라는 지적. 그 외 한국이 위로는 미국과 일본에게 압박당하고 아래로는 아시아 다른 국가들로부터 추월 위협을 받고 있다는 주장도 '헛소리의 하나'라 주장했다. "실제 삼성이 엄청난 효율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가격을 주물럭거리고 있으며, 기술력으로 무장한 다른 한국 기업들도 경쟁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저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 이와 같은 마빈의 지적에 대해 증권업계에서는 "그것은 의도적인 보고서"라는 의견이 많다. 도이체방크의 계열사인 도이체증권을 통해 소버린이 사들이 지분은 금액으로 1700억원에 달하는 규모인 만큼, 도이체방크가 투자자문을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고서 자체의 순수성이 의심된다는 지적. "최근 소버린이 SK(주)의 최태원 회장을 퇴진시키 위해 정관 개정을 요구하는 등 일련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하지만 마빈의 주장은 SK(주)를 둘러싼 불순한 의도가 없다면, "국내 기업이 많은 돈을 쌓아두고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상태에서 엄살을 부린다"는 주장으로 의미있게 살펴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는 게 중평이다. 한국 욕하며 한국에서 돈버는 스티브 마빈은 누구? 스티브 마빈은 "뉴욕 월가에 스티븐 로치가 있다면, 한국엔 스티브 마빈이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표적 비관론자로 꼽힌다. 도이치증권 서울지점의 리서치 담당상무인 마빈은 지난 97년 외환위기를 경고해 주목받았고 이후에도 경기침체에 대한 분석 등이 적중하면서 최고의 '스타 애널리스트'로 자리 잡았다.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마빈은 스탠포드대학에서 아시아학을 전공했다. 1978년부터 3년 간 하와이에 있는 뉴욕무츄얼보험에 근무한 후, 1982년 일본으로 건너가 통산부, 국제경영정보센터를 거쳐 86년 자딘플레밍 도쿄지점에 발을 내디딘 것이 증권과의 첫 인연. 상지(上智)대학에서 증권분석학을 연구하고 홍콩 증권회사에 몸담다가 1992년 서울에 왔다. 직장동료로 지내던 한국여성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쌍용증권 조사담당 이사로 한국생활을 시작한 마빈은 1997년 외환위기와 종합주가지수 300선 붕괴를 정확히 예측, 증권가의 큰 관심과 이에 못지 않은 비판을 불러모았다. 그는 지난 95년부터 '한국재벌은 폭주기관차?', '여전히 뛰지 않는 맥박', '이제 기회는 없다' 등 다소 과격한 제목의 보고서를 잇따라 발표, 대표적인 한국 비관론자로 자리잡았다. 특히 1997년 여름 "동남아 통화위기가 한국의 수출, 나아가 경제전반에 불확실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히고, 경직된 정부정책과 재벌들의 무모한 설비투자를 한국 경제의 가장 큰 해악으로 지목한 바 있다. 이는 향후 외환 위기를 가장 먼저 감지한 사례로 현재까지 널리 회자되고 있다. 1998년 5월 중순에는 '죽음의 고통(Death Throes)'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가을쯤 위기가 올 것을 예고한 보고서는 발간직후 회수되기도 하는 등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보고서가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종합주가지수는 6월16일 종가기준으로 280포인트를 기록, 사상 최저치로 추락했다. 그의 비관론은 대부분 적중했는데, 증권업계에서는 '마빈 때문에 주가가 떨어진다'는 비난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물론 그의 '예언'이 빗나간 경우도 적지 않다. 1999년 7월 마빈은 '한국에 제2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라는 책을 발간, 그 해 10월 제2의 외환위기설 우려를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나 99년 말 종합주가지수가 다시 1000포인트를 넘어서는 등 증시는 쉽게 잊기힘든 랠리를 경험했다. 이처럼 스티브 마빈은 IMF사태 발발을 정확히 예견, '불길한 예언자'라는 명성을 얻기는 했다. 하지만 한국경제 회복을 제대로 예견 못하고 "투자가들은 한국에서 떠나라"는 주장을 펴다 자신이 홍콩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 기구한 사연도 있다. "마빈은 일에 관해서는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지만, 사적으로는 더없이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훌륭한 인물"이라는 관계자들의 호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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