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술·고객만족·현장중시 ‘삼박자’ 갖췄다!

고유가, 환율, 미국발(發) 신용경색 위기…. 2007년 한해를 마무리하고 2008년을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경제가 여전히 이중 삼중의 악재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팔아도 판 것이 아니다”는 재계 한 고위관계자의 말은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악전고투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우려만 높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재계엔 위기를 극복할 대안 모색이 활발하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재계 총수들의 리더십’이다. 고비 때마다 빛나는 리더십을 발휘해 해당 기업과 한국경제 도약의 성공신화를 일궈 내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이윤창출과 더불어 국가 경제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거상’들은 어떤 인물들일까. <시사신문>이 재계 주요기업 오너 8인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신경영’, ‘품질경영’…총수 따라 경영법 제각각
가문에서 인정받고, 경영에서 성공신화 이루고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에서 실시되는 존경받는 기업인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삼성 관련 비리 의혹’으로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일군 성공신화마저 퇴색되어선 안된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존경받는 기업인’ 이건희

지난 1987년 삼성의 대권을 이어받은 이 회장은 당시 재계 서열 3위에 불과했던 삼성을 현재의 ‘부동의 1위’에 올려놨다. ‘신경영론’을 주창하면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 반열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년 전부터 스스로 고민하고 생존전략을 마련하자는 ‘창조경영’을 삼성 안팎에 강조하면서 더욱 높은 비상을 이끌고 있다. 삼성이 사기업을 넘어 국익적 측면에서도 인정받는 데는 그만큼 이 회장의 리더십이 높은 비중을 차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은 현재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일례로 <포춘(fortune)>이 매년 선정하는 ‘세계 올스타 기업’에서 30위권을 놓치지 않는 등 해외 유력매체가 선정한 우수기업의 상위권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회장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오늘날 삼성이 성공한 한국기업으로 초일류기업의 반열에 들어선 데는 14년 간 세계 1위를 달린 ‘반도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역시 이 회장의 신경영론의 산물이다.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세계적 브랜드’ 정몽구

현대자동차는 국내 자동차업계 처음으로 ‘세계 100대 브랜드’에 진입한 세계적 브랜드다. 한국자동차 역사를 새로 써나고 있는 셈이다. 중심엔 단연 정몽구 회장의 ‘글로벌 품질경영’이 자리하고 있다. 지나치리만큼 품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 회장의 품질경영 방식은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한 그만의 가치라는 점에서 여론의 반응이 뜨겁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정공, 현대차서비스 등 네 집안이 합쳐진 회사다. 그런데도 정 회장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큰 잡음 없이 운영되어 왔다. 때문에 재계선 ‘뚝심경영’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정 회장을 ‘대단한 지략가’라고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정 회장은 2000년 9월 현대그룹에서 독립한 지 불과 4년 만에 현대차를 세계 6위 반열에 올려놓았다. 독립 당시 10개에 불과하던 계열사 수는 현재 30개가 훌쩍 넘었고, 종업원 수도 10만 명을 넘어섰다. 모두가 정 회장이 품질경영과 글로벌 비상에 박차를 가한 때문이다.

▲ 구본무 LG그룹 회장.
◆구본무 ‘고객가치’ 선봉장

구본무 회장은 LG가문의 3세 경영인으로 1995년부터 LG그룹 경영을 맡아오고 있다. 구 회장은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해 LG뿐만 아니라 재계의 중심을 이끄는 선봉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LG가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지닌 기업으로 평가받는 것이 바로 구 회장의 결단 때문이다.
구 회장은 30세 때인 1975년 럭키(현 LG화학)의 심사과(사업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부서로 사업전반을 이해할 수 있음) 과장으로 입사했다. 1997년 회장실(구조조정본부)로 소속을 옮겼고, 1999년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으면서 경영 전반을 아울렀다. 현재의 LG그룹이 성공적인 구조조정과 지주회사 체제 전환으로 탄탄한 기업이 된 것은 모두 이런 구 회장의 이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구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객가치경영’을 줄곧 주창하고 있다. 남들과 차별화 된, 모방할 수 없는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남들이 다 하는 전략을 세우지 말고 남과 다른 블루오션을 찾으라는 것 또한 구 회장이 늘상 그룹 안팎에 강조하는 말이다.

LG는 고객가치경영으로 이미 수많은 세계 1등 제품을 만들었다. LG가 보유한 세계 1등 제품은 모두 15개. 이를 2010년까지 40개로 늘리는 게 LG의 목표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글로벌화’ 앞장선 최태원

‘젊은 총수’의 대명사인 최태원 SK 회장. 재계 3위의 대그룹을 이끄는 데는 이런 최 회장의 젊음이 큰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 뚝심 있고 지칠 줄 모르는 행보로 국내외를 종횡무진 누비며 글로벌 경영 선봉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그의 젊음을 일부분 대변한다. 최 회장은 재계 총수 누구보다 계열사들의 생산현장에 방문하는 현장경영이 일상화되어 있다.

최 회장이 SK그룹 승계자로 확정된 것은 지난 1998년 8월 가족회의에서다. 고 최종현 회장이 별세하자 차세대 5인방인 사촌형제들이 모여 당시 ‘최태원 SK㈜ 부사장’을 그룹의 경영권 승계자로 합의했다. 형제경영으로 유명한 SK가문에서조차 최 회장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반증인 셈이다.

이를 보여주듯, 최 회장은 1998년 9월 계열사 사장단회의격인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에서 손길승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선임하고, 자신은 SK㈜ 회장직을 맡았다. 국내 재벌가문에서 보기 드문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파트너십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최 회장은 ‘인간위주의 경영’을 통해 ‘행복’을 추구한다는 기업 비전에 걸맞게 최고경영자로부터 회사의 시스템 전반에 이르기까지 임직원들이 자발적이고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성공 사업가’ 신격호 부자

신격호 회장은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한 이후 한국롯데를 국내 재계 서열 5위의 ‘유통 명가’로 키워냈다.

▲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현재 신 회장의 그룹 경영은 동주·동빈 두 아들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큰아들 신동주는 일본롯데, 작은아들 신동빈은 한국롯데의 수장이다. 신동주는 롯데와 무관한 미쓰비시 상사에서 10년 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1987년 롯데에 입사했다.

형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나고 자란 신동빈은 1988년 일본 롯데상사의 이사로 롯데에 합류하기까지, 8년을 다른 회사(노무라증권)에서 일했다. 신동빈은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한국무대에 데뷔한 이후 1997년 2월 한국롯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아무래도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은 신동빈 부회장이다. 주력인 롯데쇼핑의 최대주주이자 왕회장인 아버지 신 회장의 후계구도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서다. 현재 고령의 신 회장을 대신해 한국롯데의 ‘글로벌 브랜드화’를 야심 차게 진행하고 있다.

한때 일각에서 경영능력을 두고 회의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신 부회장은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모스크바점 개점으로 본격적인 서구권 진출도 이끌었다. 전형적인 내수기업 이미지를 벗고 롯데를 어떻게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시킬 수 있을지 신 부회장이 주도하는 롯데경영에 그룹 안팎의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조양호 “하늘·바다·땅 장악”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물류?제조 분야에서 육·해·공을 아우르는 한진그룹의 도전이 눈부시다. 이미 회갑을 넘긴 한진그룹. 1945년 인천에서 ‘한진상사’로 출발해 수송업을 시작한 (주)한진은 대한항공, 한진해운 등을 거느리며 총매출 17조원에 달하는 대그룹으로 성장했다.

한진그룹은 2002년 고 조중훈 회장의 별세 이후 4형제간 ‘독립 경영’을 정착시켰다. 그룹 후계구도를 일찌감치 ‘교통정리’한 데다 확실한 계열 분리를 위해서는 독립경영이 선결돼야 한다는 4형제간 합의에 따른 것이다. 이런 형제경영은 성과로 여실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진 주요 계열사의 ‘성적표’가 이를 반증한다.

선봉은 역시 장남인 조양호 회장이다. 2003년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진두지휘를 맡아 회장에 취임했다.

조 회장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종합 물류기업’이다. 이를 위해 2010년까지 항공 여객운송 세계 10위, 항공 화물운송 세계 1위, 해상운송 세계 3위, 국내 육운 1위라는 포부를 제시한 바 있다. 또한 한진그룹은 이 같은 조 회장의 목표 일환으로 중국 내 ‘제2 한진’ 건설을 목표로 향후 5년 안에 중국사업 매출을 현재 2조원에서 3배 이상 늘린 6조4천억원을 달성하기 위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재계 중심으로…’ 김승연

한화그룹은 지난 1952년 주식회사 한국화약으로 시작됐다. 창업주 고 김종희 회장은 국가기간산업의 빠른 복구를 위해 화약 산업의 육성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판단, 화약사업을 시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한화는 1970년대 한국경제가 발전하는 것과 발맞춰 크게 성장했다. 사업영역도 화약과 기계공업 외에 무역과 건설, 식품, 유통분야로 확장했다.

한화그룹은 1981년 김승연 회장이 취임한 이후 제2의 창업기를 맞았다. 김 회장은 금융, 전자, 유통, 레저, 사회복지 등 3차 산업부문을 중심으로 그룹의 역량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첨단 전자산업에도 진출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던 외환위기 시절에도 한화의 성장은 지속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오히려 급성장을 이뤘다. 2000년 동양백화점 인수, 2001년 대덕테크노밸리 설립, 2002년 대한생명 인수 등을 통해 구조조정 기간동안 위축됐던 사세를 다시 크게 확장했다.

이제는 기존의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뿐 아니라 금융과 유통?레저업을 3대 축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고 있다. 60조원에 달하는 그룹 자산을 바탕으로 한화, 한화석유화학, 한화기계, 대한생명, 한화증권, 한화유통, 한화건설 등 3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재계의 중심에 우뚝 서고 있다.

◆‘형제경영’ 대표주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경영의 대표주자로 손꼽힌다. 오너 일가의 우애 또한 남다르다. 각 계열사를 형제들이 골고루 맡아 성공적인 경영성과로 이끌고, 형제간 의견대립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다.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1946년 창업해 60주년을 훌쩍 넘어버린 금호아시아나는 다가올 미래에도 철저하게 본업인 물류·건설·레저사업 등에 충실 한다는 기본 전제를 세우고 있다. 중심엔 단연 박삼구 그룹 회장이 있다. 대우건설 인수로 단숨에 재계 서열 10위권 안으로 진입한 금호아시아나는 2008년 역시 대한통운 인수 등 M&A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는 형제간에 경영권을 넘기고 지분도 동등하게 갖는 그야말로 완벽한 ‘형제경영’이다. 1984년 그룹 총수에 오른 고 박성용 회장은 재계의 장자 상속 관행을 깨고 65세가 되던 1996년 그룹 창사 50주년을 맞아 동생 박정구 회장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박정구 회장이 65세가 되던 2002년 폐암으로 세상을 뜬 뒤에는 박삼구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5남 박종구를 뺀 4형제는 지분도 계속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공교롭게 4형제는 모두 아들을 한명씩 둬, 창업주 3∼4대에서 형제간, 자녀간 분쟁을 겪는 기업들과 달리 금호아시아나의 ‘형제경영’은 순항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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