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선 밑진 장사 안에선 남는 장사

‘빠른 대권 승계 차원에서 보면, 이번 사태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완전한 삼성 장악을 위해서는 호재일 수 있다.’ 삼성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한 사정당국 수사를 지켜보는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 분석이다. 삼성 의혹의 핵심이 편법 경영권 승계에서 시작됐고, 이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 어떻게든 오너 일가의 문제가 부상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상 이재용 전무가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의미다. 왜 그럴까. <시사신문>이 ‘삼성 대권’을 앞두고 있는 이 전무의 손익(損益)을 해부했다.


특검 수사 ‘이재용 삼성 지배’ 영향력 미미할 듯
이번 기회에 ‘이재용 사람’으로 조직재편 될까?

▲ 재계에선 이 전무의 ‘삼성 황제’ 등극이 이번 사태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오히려 이 전무의 ‘완전한 삼성 장악’을 위해 호재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7대 대통령 선거가 마무리되는 대로 삼성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한 특검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12월17일 상임이사회에서 추천할 특별검사 후보자를 확정한다. 대선 종료로 마땅한 이슈가 없는 여론의 관심이 ‘삼성 특검’에 쏠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번 특검은 크게 세 가지 의혹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비자금 의혹 ▲불법 로비 의혹 ▲편법 경영권 승계 문제 등이다. 삼성 전략기획실 등 핵심 수뇌부에 대한 직접 조사가 불가피하고, 재계 일각에선 이건희 회장의 직접 소환 가능성까지 높게 점쳐지고 있다. 삼성의 중심이 특검의 칼날에 한바탕 몸서리를 쳐야 할 상황인 것이다.

현재 삼성그룹 전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잇따른 폭로로 ‘오너 일가와 핵심 수뇌부의 불법행위 의혹’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라 있다. 사실로 드러난 것을 가정하고 법조계 일각에선 법적 처벌을 두고 법전 뒤지기가 한창일 정도다. 이런 상황은 재계도 마찬가지다. 핵심 수뇌부 누가, 어떻게, 어떤 처벌을 받을지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벌써부터 후끈하다.

이재용에게는 호재?

이런 맥락에서 자연히 재계의 관심은 ‘삼성 대권’에 쏠린다. 이번 사태 최종 결과에 따라 삼성 대권 승계가 어떻게 마무리될 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특검 수사에서 불법행위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대권 승계는 종착역에 안착할 것이고, 불법행위가 사실로 드러나면 여론의 뭇매가 쏠릴 터다.

하지만 재계에선 이 전무의 ‘삼성 황제’ 등극이 이번 사태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이 전무의 ‘완전한 삼성 장악’을 위해 호재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삼성 스캔들에서 굳이 수혜자를 꼽으라면 이재용”이라고 내다봤다.

왜 일까. 일단 대권 승계 과정이 부적절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현재 이 전무의 삼성 지배권은 공고히 다져져 있는 상태다. 완전한 경영권 승계는 아니더라도 이 전무의 지분만 놓고 보면 이 회장의 영향력은 거의 없다. ‘이재용 시대’가 바로 코앞에 있는 것이다.

실제 이 전무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정점에서 삼성에버랜드 지분 25.10%(9월30일 기준)를 가지고 있다. 이 회장의 3.72% 지분율과 비교하면 그룹의 지배구도가 이미 이 전무에게 넘어간 셈이다.

이런 이 전무 소유 지분이 특검 수사에 따라 휴지조각이 될 일도 희박하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매각 사건으로 법적 처벌이 이루어지더라도 이 전무가 소유한 지분을 반납해야하는 사태는 사실상 벌어지기 어렵다는 얘기다.

더구나 김 변호사의 폭로에서 보듯, 이 전무는 승계를 위한 지분 늘리기 과정에서 본인 스스로 움직였다는 정황도 찾아 볼 수 없다. 특검 수사에서 이 전무가 직접적인 조사를 받거나 그에 따른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전무의 대권 승계는 어떻게 완전한 조직 장악을 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재계에서 이번 사태가 오히려 이 전무에게 호재일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여기에 기인한다.

이 전무는 지난해 삼성전자 전무로 승진하고 CCO(최고고객책임자) 보직을 맡으면서 대내외적으로 위상이 상당히 높아진 상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룹 전체를 진두지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재용 시대’가 확실하게 열리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현재 삼성의 핵심이 ‘아버지의 사람’들로 움직이고 있는 탓에 조직 장악이 쉽지 않을 것이란 배경에서다.

사실 한때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선 이 전무로의 빠른 대권 승계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편법 승계 논란이 오랫 동안 지속되고 있는 이유보다 삼성 내부에서 총수 이상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이학수 부회장을 비롯한 전략기획실 핵심 수뇌부의 직접 장악이 어려운 까닭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때문에 재계에선 이런 맥락을 놓고 이번 사태를 통해 이 전무의 ‘득’이 높을 것으로 전망한다. 자연스럽게 이 전무의 사람으로 이동이 이루어지기에는 이만한 호재도 없다는 것이다.

자연스런 등극 이루어지나

특검 수사를 통해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이에 따른 법적 처벌이 이루어진다면 이 회장의 사람이자 삼성을 쥐락펴락하는 핵심 수뇌부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구나 이 회장에게 화살이 쏠리게 되면 이들 중 누구라도 나서서 총대를 메려고 할 것이란 게 삼성 사정에 밝은 인사들의 주장이다.

어떤 방식이든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상황이 오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회장의 사람에서 이 전무의 사람으로 자연스런 조직재편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 지난해 ‘삼성공화국’ 논란을 몰고 온 ‘X파일 사건’ 직후 이 부회장이 자진해서 퇴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얘기가 나돌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렇지 않겠냐는 의미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이 부회장이 퇴진하면 그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김인주 사장(전략기획실)이 바통을 이어받아 이 전무와 호흡을 맞출 것이란 관측도 재계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 전무와 김 사장의 궁합이 사실 이 전무에겐 부담일 수 있다는 갸웃한 시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학수 방식’의 연장선이라는 것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그대로 이 전무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에서다. 이 전무가 삼성을 완전하게 장악하기 위해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재용 사람’의 발굴과 그에 따른 인사가 불가피해 보이는 대목이다.

아무튼 멀지 않은 시간에 완전한 대권 승계를 눈앞에 둔 이 전무가 ‘삼성공화국’ 논란까지 불러일으킬 만큼 완벽하게 짜여진 조직을 어떻게 자신의 스타일로 재편하게 될지 재계의 설왕설래는 당분간 이어질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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