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산문집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는 표제에 '시에서 배우는 삶과 사랑'이라고 명명(命名)되어 있는데, 제목 그대로 우리나라와 외국의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읽고, 그 시인들의 삶과 사랑을 한국 시단의 중견 시인 천양희 선생의 미문(美文)으로 그려나간 것이다.

이 '시의 숲'에 초대된 시인으로는 한용운, 김소월, 백석, 임화, 이용악, 박인환, 신석정, 유치환, 천상병과 같은 한국의 유명한 시인은 물론 헤르만 헤세, 파블로 네루다, 마야코프스키, 알프레드 드 뮈세, 수팅, 보들레르, 에밀리 디킨슨, 예세닌, 푸슈킨, 랭스턴 휴즈, 괴테, 로르카, 파울 첼란, 말라르메, 예이츠, 랭보 등과 같은 세계적인 외국 시인들이 그들이다.

천양희 시인이 안내하는 '시의 숲'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우리는 세계적인 시인들의 시 세계를 황홀한 감동으로 맛볼 수 있다. 그들이 겪은 극적인 사랑과 이별, 불타는 삶의 열정으로 길어 올린 예술 작품에 대한 천양희 시인의 섬세하고도 구체적인 안내는 감동적이다. 독자의 마음에 '꽃 피고 새우는' 봄날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프랑스 시인 알프레드 드 뮈세의 '슬픔'을 읽어보자. 이 시는 어떤 한계에 부딪힌 시인의 비통한 심정을 고백한 것이다.

나는 힘과 생기를 잃었다
친구와 기쁨도 잃었다
나의 천재를 믿게 하던 자존심도 잃었다
내가 진리에 눈떴을 때
그것이 나의 벗이라 믿었다
내가 진리를 이해하고 느꼈을 때
이미 그것이 싫어졌다
그러나 진리는 영원하고
진리를 모르고 산 사람들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 셈이다
신이 말씀하시니
우리는 답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내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이따금 울었다는 것이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슬픔이 점령군처럼 쳐들어와 내 마음의 영토까지 빼앗아 간다. 1833년 23세가 되던 해에 뮈세는 여성 작가 조르주 상드를 만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 사랑은 너무 지독해서 지금까지도 시사(詩史)에 남은 유명한 사랑 이야기로 전해진다.

이탈리아 여행 중 베네치아에서 상드가 뮈세를 치료하기 위해 고용했던 의사 파제로와 친교를 맺게 되자 1835년 봄, 그들은 만난 지 2년 만에 결별한다. 뮈세는 그 실연의 충격으로 "나 죽거든, 사랑하는 친구여/내 무덤 위에 버드나무를 심어다오"라는 묘비명과 같은 비가(悲歌)까지 쓰게 된다. (……) "시란 한 방울의 눈물로 진주를 만드는 것"이란 말과 "삶은 잠, 사랑은 그 꿈”이란 말로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뮈세. 그는 랭보나 베를렌 같은 천재의 신화를 확립한 최초의 시인이다. 나는 뮈세야말로 슬픔을 거쳐 충만으로 나아간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 '고통은 위대하다' 부분

뮈세의 시 '슬픔'의 마지막 구절 "이 세상에서 내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내가 이따금 울었다는 것이다"는, 천양희 시인의 표현대로 "슬픔이 점령군처럼 쳐들어와 내 마음의 영토까지 빼앗아 간" 것 같다.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에는 흑인 하류층에 소속된 시인으로 '흑인 민중의 계관 시인으로까지 불렸던 랭스턴 휴즈'의 자유를 추구했던 삶을 비롯하여 30여 년 동안 한 여인만을 가슴에 담아두고 사랑한 예이츠의 순정한 사랑, 윤동주 시인이 너무 좋아하여 첫 시집 <사슴>을 세 번이나 필사하게 했던 '가장 가난하고 높고 외롭고 쓸쓸한' 시인 백석의 삶, 친구 브릭의 아내를 애타게 사랑한 마야코프스키의 이상한 동거, 17년 연상인 미국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을 첫눈에 사랑에 빠져 절절한 사랑을 하다가 헤어진 2년 뒤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예세닌의 비극적인 사랑 등 여러 시인들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작품의 세계를 실감나게 그려놓고 있다.

나는 천양희 시인의 '시의 숲'에 초대된 여러 시인들의 삶과 예술의 세계도 감동적이었지만,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저자 천양희 시인의 사랑과 삶,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인식을 만나는 감동도 대단한 것이었다.

"진정한 사랑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혁명 같은 것이라면 우정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혈맹 같은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21쪽)

"네루다처럼 시와 삶을 빛나게 한 시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삶을 통해서 비로소 그 사람을 본다. 인생을 망각하고 낭비하는 것처럼 큰 죄는 없을 것이다." (40쪽)

"시인의 역할은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59쪽)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전력을 다한다면, 만족스럽다는 것이 부유한 것보다 더 나은 재산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70쪽)

"일상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는 듯 보이지만 삶이 지난할수록 꿈 하나씩 잃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좀 서글퍼지는 것이 사실이다. 걷고 있지만 나아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삶이 쓸쓸하다고 느껴질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시로써 정신의 밥 한 상 차리면서 삶을 살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95쪽)

"날씨가 따뜻해지면 꽃들은 활짝 필 것이지만 지금도 생의 꽃을 피우지 못해 가슴 저린 사람들은 어떻게 이 봄을 건너갈까." (112쪽)

"그래서 나는 아름다움이란 상처가 피워낸 꽃이라 말하고 싶다. 상처를 알고 슬픔을 삭인 사람만이 아름다움을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129쪽)

"시인이 되는 길은 결국 자기를 구원하는 길이다. 구원에는 언제나 고통이 따른다. 누구도

그 고통을 대신해 줄 수 없고, 대신해줄 수 없으므로 시인에게 고통은 축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인은 시라는 위독한 병을 철저히 앓는 자이며, 고통은 희망과 암수 한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44쪽)

"쌀로 지은 밥이 배고픔을 채워 준다면, 시는 고픈 정신을 채워주는 정신의 밥이다. 사람의 영혼이란 기쁨에 너무 굶주리면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그럴 때는 눈을 돌려 시를 읽어 보라. 곧 굶주림이 채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시를 만나는 감동이 바로 기쁨이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이 언어의 미로 위에 숨겨놓은 보석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166쪽)

인용한 위의 글들은 내가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를 읽어가면서 밑줄을 긋고 따로 별표를 해둔 것들이다. 1장에서 3장까지이다. 4장 5장까지 가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나 별표 등을 그려 넣으며 읽는다. 조금이라도 저자의 마음에 더 다가가고 또 그것을 내 것으로 온전히 데려오기 위해서다.

삶과 사랑과 예술(시)에 관한 천양희 시인의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행복했다.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속에는 39개로 된 단락마다 동양화가 이은호가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 있어 글의 내용을 마음에 담는데 편안했다. 책 속에 그려진 나비와 꽃나무와 새를 보면서, 천양희 시인의 '시의 숲' 안내 말씀을 읽으며 내 마음의 봄날을 오랫동안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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